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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고려충신을 만나는 황해도 무속의 현장, 최영장군당굿
작성일
2013-06-14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7312

고려충신을 만나는 황해도 무속의 현장, 최영장군당굿

고려충신을 만나는 황해도 무속의 현장, 최영장군당굿 - 황해도 무형문화재 제5호 서경욱 보유자

이 세상에 무당으로 살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무속신으로 신격화 된 고려충신 최영장군을 몸주신으로 모신 황해도 무형문화재 제5호 최영장군당굿 서경욱 보유자. 그녀를 만나 무속인으로서의 삶과 황해도 무속현장의 소리를 들어본다.

01 인왕산 국사당에 모셔져 있는 최영장군의 무신도. 1970년 3월 24일에 중요민속문화재 제17-17호로 지정되었다. 최영장군은 무속인을 비롯하여 치성을 드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중요한 인격신으로 받들어지고 있다.

9세에 만난 무속신巫俗神 최영장군

“굿이라고 하면 대개 작두 타는 모습을 떠올리게 되지요. 그래서 무속인을 무섭게 생각하는 분들도 많구요.” 30대 중반에 신을 모시는 무당이 되기 전까지 최영장군당굿 서경욱 보유자도 신내림을 피하기 위해 몸부림쳤다. 그녀는 몸에 신이 내리는 것이 무언지 알 리가 없는 9세에 신神중에서도 고려 말의 장수였던 ‘최영장군’을 처음으로 만났다. 잘 알려져 있듯이 최영장군은 홍건적과 왜구의 침입을 막고 공을 세웠지만, 안타깝게도 개성에서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이후 무속신으로 좌정한 인격신이다. 그 최영장군이 어린 서경욱에게 찾아온 것이다. “자주 제 머리맡에 앉아계셨는데 처음에는 누군지 몰랐어요. 저를 통해서 나라와 백성을 위해 많을 일을 해야겠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여느 무속인들이 그렇듯이 신을 모실 때까지 앓게 되는 무병巫病에 시달렸다. 4남 2녀의 막내딸로 귀여움을 받으며 자라던 그녀는 이름난 만신 우옥주 선생을 스승으로 모시던 훗날 신어머니의 집에 자주 머물며 최영장군신을 몸주신으로 모실 준비를 했다. 그리고 30대 중반에 최영장군을 모시는 내림굿을 받아 만인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복을 나누는 무당의 삶이 시작되었다.

02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2호 최영장군사당. 고려 말 왜구의 침입으로부터 통영을 지켜낸 장군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사당으로 1983년 7월 20일에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03 황해도 무형문화재 제5호 최영장군당굿 서경욱 보유자(가운데)와 보존회원들. 3일 동안 24거리로 진행되는 최영장군당굿은 황해도 지역의 무속의례와 최영장군에 대한 신앙을 두루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유산이다.

황해도 지역의 무속, 최영장군당굿

원나라 원병과 내란 평정 등 혁혁한 공을 세운 최영장군은 무속에서 장군신으로 숭앙崇仰되고 있다. 최영장군의 신격화는 황해도 지역과 서울, 경기도 지역을 비롯하여 전국적으로 두루 나타난다.

“굿하기 전에 장구, 징, 제금을 울려서 주당을 물리고, 잡귀의 범접을 막아 굿청을 정화시키는 신청울림으로 굿을 시작해요.” ‘상산맞이’, ‘초부정·초감흠거리’, ‘소대감거리’, ‘성주거리’, ‘칠성·제석거리’, ‘별상거리’, ‘열정거리’등 최영장군당굿의 거리가 3일동안 이어진다. 특히 잡신을 물리치기 위해 작두를 타는 장군거리(작두거리)에서는 최영장군의 위용이 극대화 된다. 시퍼렇게 날이 선 작두 위에서 내려온 서경욱 보유자는 참석자들이 적어주는 사주종이 하나하나 정성으로 받아들고 축원을 한다.

2011년에 최영장군당굿이 황해도 무형문화재 5호로 지정된 것은 모두 24거리로 구성된 굿거리의 특색과 내용에 충실한 굿춤의 가치때문이다. 최영장군당굿의 악·가·무는 예술분야에서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2012년에 열린 ‘통일기원 이북 5도 무형문화재 축제’에서 최영장군당굿이 대미를 장식했고, 관람객들은 저마다의 염원을 굿에 담아 보냈다.

만인이 함께하는 굿판

개인을 넘어 나라의 평안을 기원하는 ‘국태민안國泰民安굿’은 오래전부터 최영장군당굿보존회가 벌여온 굿이다.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하면 어김없이 호국영령의 넋을 기리는 위령제를 올렸다. “살아생전 최영장군의 업적을 기리고 이북5도 무형문화재 보유자로서 기여하기 위해 열심히 이 굿을 지켜갈 겁니다.” 2006년에는 일본 도쿄 메이지공원에서 태평양전쟁에 끌려가 목숨을 잃은 4만9천여 명의 넋을 달랬다.“전쟁터로 끌려간 사람들의 처절한 고통이 들렸어요. 영혼마저도 타국에 묶여있으니 얼마나 괴롭겠어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넋을 달래고 후손들을 축원하는 것뿐이에요.” 자연보호, 산불방지와 같은 캠페인에도 최영장군당굿보존회가 뜻을 같이 한지 오래되었다. 보유자의 이러한 큰 뜻을 따르는 보존회원이 해마다 늘고있는 것은 당연하다. 최영장군당굿을 통해 평안을 기원하고 국민에게 이북 지역의 무형유산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가는 그녀의 행보가 주목된다.

글. 황경순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무형문화재연구실 학예연구사) 사진.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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