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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국인의 삶의 향기가 서린 술 중요무형문화재 제86호 문배주 이기춘
작성일
2008-10-31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2683



대동강가의 술도가를 떠나며

그 때 나는 열 살 소년이었다. 떠난다는 게 무언지 고향이 무언지 알 수 없었던 나는 무작정 어른들을 따라 덜컹거리는 술도가의 트럭에 몸을 싣고 남쪽으로 내려왔다. 나중에 들으니 그 날을 1·4후퇴라고 했다. 우리의 술도가는 어떻게 되는 건지 간혹 궁금하기도 했지만 누구에게도 물을 수 없었다. 수수 찌는 냄새가 진동하던 대동강가의 술도가가 그리웠다. 그 그리움 때문이었을까. 증조할머니가 빚으시던 문배주가 우리 가족의 가슴에 담겨 함께 남으로 내려왔다는 사실을 자라면서 알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가는 만큼 나의 그리움도 문배주가 익어가듯이 성숙해져 갔다.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단 번에 취할 사랑을 꿈꾸듯이, 대동강가의 석회암층에서 솟아나는 물로 만든 문배주를 꿈꾸었다. 양곡관리법 때문에 마음대로 술을 빚을 수 없었지만, 제삿날 할아버지가 빚으시던 문배주는 아버지에게 이어졌고, 다시 우리만의 전통주를 꿈꾸는 내게 이어졌다. 나의 꿈은 문배주와 함께 커져만 갔다. 문배주 빚기

문배주는 좁쌀과 수수 그리고 누룩으로 담그는 술이다. 밀로 만든 누룩을 부수어 물에 담가 우려낸 누룩물에 진득하게 지은 좁쌀밥을 섞어서 밑술을 만들어 5일 가량 숙성시킨다. 밑술이 숙성이 되면 거기에 질게 찐 수수밥으로 덧술을 하고 하루 뒤 다시 수수밥으로 두 번째 덧술을 한다. 덧술은 술의 맛과 향을 위해 밑술에 더하여 넣는 술밑이나 술밥을 말한다. 두 번째 덧술을 마치면 깨끗한 독에 담아 10일간 발효시켜 증류한다. 증류의 과정은 물에서 맑은 영혼을 뽑아내는 것과 같다. 소나무 땔감으로 지핀 은근한 불로 소주고리 속에서 술이 완전히 익으면 어느새 서서히 이슬이 맺히기 시작한다. 길고 긴 기다림, 그러나 맺히는 이슬을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바라본다. 술을 내릴 때에는 이슬로 맺힌 것이 완전히 냉각된 후에 흘러내리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술의 도수에 차이가 생겨 맛이 달라진다. 증류된 술은 엷은 황갈색을 띠며 40도 정도의 알코올 도수를 갖는다. 배꽃 향기 나는 문배주 이야기

문배나무는 우리나라의 토종 돌배나무다. 문배나무에서 열리는 배의 향기는 일반 배가 도저히 따르지 못할 정도로 진한 향을 낸다. 특이한 것은 문배주는 결코 문배나무의 꽃이나 열매로 담근 술이 아니라는 것이다. 조와 수수만으로 배합 비율을 맞추고 적정 온도를 유지하여 문배나무만의 향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문배주의 오만하지 않은 청초한 향은 마시고 난 후에도 진하게 가슴에 남아 마시는 이의 마음에 길고 긴 여운을 남긴다. 도수는 높지만 마실 때 목구멍이나 혀에 저항감이 느껴지지 않고 부드럽게 넘어가며, 입 안에 배꽃향이 활짝 퍼진다. 그래서 문배주는 귀한 술이다. 중국에 마오타이가 있고, 러시아에 보드카, 프랑스엔 코냑, 영국에 위스키가 있다면 한국에는 야생 돌배꽃 향이 나는 문배주가 있다. 나는 문배주가 자랑스럽다. 임금님께 진상하던 술, 기쁜 일을 축하하기 위해 건배를 나누던 술 문배주는 선조들의 삶의 향기가 서려 있는 우리 민족의 술이다. ▶글| 이지혜 ▶사진| 김민정|국립문화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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