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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상사, 징의 울림을 하늘까지 닿게 하는 홈
작성일
2018-08-31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3295

징은 쇠로 만들어졌지만 그 소리는 날카롭지 않고 웅장하면서도 부드러우며 긴 여운을 가졌다. 징소리는 황소 울음소리, 하늘의 소리, 바람의 소리라고도 불렸다. 모두가 잠든 새벽, 징 최고의 장인 ‘대정이’는 쇠망치로 징을 두들겨 울음을 잡은 후, 징소리가 넓게 퍼져 하늘에 닿기를 염원하며 나이테 문양의 상사를 징에 새겨넣는다. 01. 보물 제1907호 함통6년명 청동북은 통일신라시대 때 제작된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징이다. ⓒ이미지투데이 02. 징에 새겨진 나이테 모양의 홈 ‘상사’ ⓒ국립국악원 03. 징소리의 파형 ⓒ국립국악원

역사

징은 한자로 정(鉦)이라 쓰고 옛 문헌에는 ‘금(金)’, ‘금고(金鼓)’, ‘금정(金鉦)’이라 기록되어 있다. 징이 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다. 그러나 고구려 고분벽화 안악 3호분 <대행열도>에 징과 유사한 형태의 악기를 두 사람이 메고 가면서 연주하는 모습과 불교의식에 중요한 악기인 점 등을 고려해 볼 때 최소한 삼국시대 때부터 사용된 것으로 추측된다. 농악에서는 징의 웅장하고 긴 여운에 기대어 장구, 꽹과리, 북이 화려하고 다양한 리듬을 연주한다. 굿에서는 다양한 가락 연주를 통해 분위기를 이끄는 역할을 한다. 또한 옛 전장(戰場)에서는 북을 치면 군사가 전진하고 징을 치면 후퇴하는 신호기로서 사용되기도 했다. 이처럼 단순한 형태의 징이 다양한 용도로 사용될 수 있었던 것은 웅장하면서도 날카롭지 않고 부드러우면서도 긴 여운을 가진 징소리의 독특함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구조와 제작법

징은 크게, 놋쇠로 만든 몸체와 끈으로 된 손잡이, 그리고 징채로 구성되어 있다. 징 몸체의 바닥은 그 중앙이 가장 두껍고 바깥쪽으로 갈수록 점점 얇다. 징 표면에는 나이테 문양의 얕은 홈이 새겨져 있는데 장인들은 이를 ‘상사’라고 한다. 또한 측면 부분의 전두리는 안쪽으로 약간 모아진 형태를 띤다. 징은 나무봉 끝에 헝겊이나 지푸라기를 두툼하게 감아서 만든 채로 징의 중앙(일명 봉뎅이)을 타격하여 연주한다. 단순하게만 보이는 징이 악기로서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수백 번의 쇠망치질을 통해 징의 울음을 잡는 장인의 손길을 거쳐야만 가능하다. 징은 구리와 주석을 일정비율로 섞은 놋쇠를 이용해 방짜유기 방식으로 만든다. 우선 구리 78%와 주석 22%를 녹여서 바둑알처럼 동글고 납작한 바둑을 만든다. 그리고 망치로 쳐서 적당한 크기로 늘리는 네핌질, 바둑을 늘리는 우김질, 가장자리를 고르게 펴는 닥침질, 다시 불에 달구어 완벽한 형태를 잡는 제질등을 통해 징의 기본적인 형태가 만들어진다. 이제부터가 징의 소리를 본격적으로 잡아가는 과정이다. 장인은 쇠의 강도를 높이기 위해 뜨겁게 달궈진 징을 차가운 물에 담그는 ‘담금질’을 하고 징의 바닥부분을 쇠망치로 쳐서 징소리를 잡는 ‘울음질’을 한다. 울음질은 징을 만드는 사람 중 최고의 장인인 ‘대정이’에 의해 놋쇠덩어리가 악기로 변신할 수 있도록 혼을 불어넣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대정이의 울음질에 의해 소리가 잡힌 징은 회전틀에 고정하고 회전하면서 가질을 통해 표면에 광을 내고, 마지막 징 표면에 나이테 모양의 홈인 상사를 그려 넣어 완성시킨다.

중국의 징(Chinese Gong)은 우리나라 징과 그 형태가 유사하다. 하지만 그 크기가 다양하고 독특한 음색을 가지고 있으며 징 표면에 상사와 같은 모양의 홈을 넣지 않는다. 일본의 경우, 우리나라 징과 유사한 악기는 없고, 일본 궁중음악 연주에 사용되는 쇼코(鉦鼓)라는 악기가 있다. 이 악기에는 원형의 문양이 있긴 하지만 홈을 파지 않고 우리나라의 보물 제1907호 함통6년명 청동북처럼 튀어 나오게 제작한다. 이외에도 징과 형태가 유사한 전 세계 금속타악기 중 상사와 같은 여러 개의 원형 홈을 새겨 넣는 경우를 찾아보기 힘들다.

함통6년명 청동북 (보물 제1907호) 경상북도 지역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해지며, 통일신라 기년명 금고로서 한국 금고의 기본형으로 주목받아 왔다. 이 금고는 표면을 마치 빛의 파장이 둥글게 퍼져나가듯 굵고 가는 동심선대를 돌려 당좌구(撞座區), 중구(中區), 외구(外區)의 3구로 고면을 표현하였다.

징소리의 비밀, 과학으로 풀다

징소리의 특징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황소 울음소리’로 비유되는 징소리는 국보 제29호 성덕대왕신종과 같이, 음량이 커졌다가 다시 작아졌다가를 반복하는 맥놀이 현상이 나타난다. 징에서의 맥놀이 현상은 대정이의 울음질로 인해 약간의 비대칭으로 제작된 울림판이 근접한 두 개의 소리를 함께 발생시키면서 나타나는 것이다.

두 번째, 징은 타악기인데도 일정한 음높이를 가진다. 타악기는 일반적으로 배음(背音) 구조가 일정하지 않아서 사람들이 그 음높이를 인지할 수 없다. 하지만 징의 경우, 징채로 중앙부분을 치면 배음 구조의 음만 발생하고 다른 음들은 거의 발생하지 않아 멜로디 악기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완벽한 음높이를 가진다. 세 번째, 징소리는 채로 쳐서 소리가 울리기 시작하면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음이 높아진다. 황소 울음소리로 표현되는 징소리는 처음 시작되어 점점 음높이가 높아지다가 그 음높이를 유지하면서 묘한 긴장감을 유발시키는 독특함을 가지고 있다. 징채로 징의 중앙 부분을 강하게 타격했을 때 징 울림판의 진동폭이 매우 커서 낮은 음이 발생하다가 진동폭이 점점 작아지면서 음높이 역시 점점 높아지고 일정한 음높이를 유지하게 된다.

위와 같은 우리나라 징소리의 주요특징은 방짜유기 제작방법에 의해서만이 구현해 낼 수 있다. 다시 말해 징의 울음을 잡기 위한 ‘대정이’의 수백 번의 쇠망치질이 독특한 징소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상사, 대정이의 마지막 염원을 간직한 홈

대정이는 수백 번의 쇠망치질을 통해 무겁고 단단하기만 한 놋쇠덩어리를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악기로 재탄생시킨다. 그리고 마지막, 쇠망치질과 담금질로 인해 까맣게 녹이 나 있는 징 표면에 광택을 내기 위한 가질을 하고 나이테 모양의 홈 ‘상사’를 새겨 넣어 마무리한다. 대정이는 쇠망치질로 징의 울음을 잡는 작업을 끝마친 후 상사를 새겨 넣는 이유는 무엇일까? 상사는 징소리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징은 소리를 낼 때 징 표면의 진동이 원형으로 나타난다. 상사가 징의 진동 형상과 유사하기 때문에 그 소리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홈의 깊이가 깊지 않아서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다만 외관상 다소 단순해 보일 수 있는 징의 표면에 원형 문양을 새겨 넣어 화려함을 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대정이가 수백 번의 쇠망치질로 잠들어 있던 징의 울음을 깨운 후, 그 울음이 상사 문양을 타고 펴져나가 하늘과 사람의 마음속까지 닿기를 바라는 염원이 깃들어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04. 대정이의 울음질 모습. 울음질은 대정이에 의해 놋쇠덩어리가 악기로 변신할 수 있도록 혼을 불어넣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무형유산 디지털 아카이브 05. 상사에는 울음이 하늘과 사람의 마음속까지 닿기를 바라는 대정이의 염원이 깃들어 있다. ⓒ위키백과 06. 징소리는 성덕대왕신종과 같이 음량(音量)이 커졌다가 다시 작아졌다가를 반복하는 맥놀이 현상이 나타난다. ⓒ이미지투데이 07. 징은 굿에서 다양한 가락 연주를 통해 분위기를 이끄는 역할을 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글. 정환희(국립국악원 국악연구실 악기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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