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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눈물과 회환으로 쓴 전란의 기록 징비록(국보 제 132호)
작성일
2015-04-01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2657

퇴계 이황에게는 유독 아끼는 제자가 있었다. 퇴계는 그가 하늘이 내린 인재이며 장차 큰 학자가 될 것임을 직감하였다. 그는 훗날 임진왜란을 극북한 명재상 류성룡이 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류성룡은 선조의 특명으로 영의정과 도체찰사(都體察使)로 임명돼 군무를 총괄하게 되는데…하지만 전쟁 상황은 점점 난국으로 치달았다. 군사도 식량도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류성룡은 여러 정책을내놓는다. 훈련도감을 설치해 직업 군인을 양성, 군사력을 강화시키고, 곡식을 수입해 모자란 군량을 채웠다. 왜군이 평양성 근처까지 왔단 말이냐? 당장 행차를 준비하라. 명으로 떠 날 것이다.선조의 명나라 망명을 직언으로 가로막은 류성룡. 그 순간 그의 눈앞에는 백성들의 고통스러운 삶이 아른거렸다. 류성룡은 25세에 문과시험에 급제하여 순조롭게 벼슬길에 나아갔고 대사헌, 경상도 관찰사, 병조판서를 거쳐 좌의정에 오르며 탄탄대로를 걸었다. 하지만 높은 명망만큼이나 큰 무게를 감당해야 했다. ? 성심을 다하겠사옵니다. 아니 되옵니다. 임금이 떠나면 백성이 누구를 위해 목숨을 바쳐 싸우겠습니까? 짐이 믿을 사람은 그대뿐이다.네 학식이 날로 성장하니 참으로 뿌듯하구나. 아닙니다, 전 아직 스승님의 발끝조차 따라가지 못하옵니다.......류성룡은 백성들에게 다가가 손을 잡으며 따뜻한 말로 위로했고, 백성들도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류성룡 뿐이었다. 숨어있던 군사들은 반항하는 백성들에게 활을 쏘았다. 제가 잡혀 군역에 끌려가면 가족들이 굶어죽게 생겼는데 어쩌겠습니까. 네 어찌하여 군졸들을 죽인 것이냐? 헉!! 당장 멈추지 못하겠느냐? 류성룡은 백성들을 지키려 했지만 이미 때는 늦어버린 상황. 죽어가는 백성들을 바라보며 류성룡은 눈물을 쏟는다. 7년이나 계속된 임진왜란으로 거의 모든 고을이 참혹하게 유린됐으며 인구의 절반이 희생됐다. 일본과 강화를 주장해 나라를그르친 류성룡을 파직하노라. 전쟁이 끝나갈 무렵인 1598년, 정적들의 모함에 의해 류성룡은 탄핵되고 만다. 모든 책임을지고 궂은일을 도맡아 했던 류성룡. 선조는 왜 석연치 않은 이유로 류성룡을 내 친 것일까? 결국 류성룡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고향 안동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옥연정사에서 여생을 저술에만 몰두한다. 정무와 군무 수장으로서 피비린 내 나는 전란을 겪은 뒤 그 모진 환란이 다시 없기를 바라는 간절한 바람에서 전쟁의 전말을 기록한 책. 『징비록』이다. “나라가 제대로 되려면 다른 곳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 겨우내 군역을 치렀지만 왜변을 막으라는 어명에 다시 군역에 끌려갈 위기에 처한 백성들이 도망을갔다 붙잡힌 것.

 

글·그림. 유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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