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오랜 그리움이 남은 곳, 드라마 <환혼> 속 부여 가림성
- 작성일
- 2024-04-26
- 작성자
- 국가유산청
- 조회수
- 361
드라마 <환혼>에 등장한 가림성 느티나무
tvN 가상 역사 드라마 <환혼>에는 주인공들이 어린 시절을 함께했던 나무가 있다. 단양곡에 있는 큰 느티나무다. 이 나무는 주인공이 기억을 잃어버리고, 혼이 뒤바뀌는 가운데 옛 기억의 실마리를 찾아주는 역할을 한다. 드라마 속 가장 상징적인 매개체로 등장하는 이 나무는 충청남도의 부여 가림성에 있는 수령 400여 년의 느티나무다. 길이 22m에 둘레 5.4m의 거대한 나무가 홀로 서 있는 모습이 마치 가림성을 지키는 문지기처럼 듬직하다. 드라마 <환혼>뿐 아니라 <서동요>, <호텔 델루나>, <대왕 세종> 등에도 등장했으며, 2021년 8월에는 학술적· 경관적 가치를 인정받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백제의 마지막을 지켜본 가림성
부여는 백제의 마지막 수도다. 660년 나·당 연합군에 백제가 멸망하지만, 남은 이들은 백제의 부흥을 꿈꾸며 저항을 이어나갔다. 그 저항운동의 근거지가 바로 가림성이었다. 가림성은 501년에 축조된 산성으로, 금강 하류 부근 성흥산에 있다. 이 성은 당시 백제의 수도였던 웅진성과 사비성을 지키기 위해 지어졌다. 둘레는 약 1,500m, 성곽 높이는 3~4m로 성의 형태는 산꼭대기를 빙둘러 쌓은 테뫼식1)이다. 성 안에는 우물 터, 군창 터, 남·서·북문 터, 돌로 쌓았던 방어시설인 보루 등이 남아 있다. 이 성은 과거 ‘부여 성흥산성’으로 불렸지만, 2011년부터 ‘부여 가림성’으로 고쳐 부르기 시작했다. 백제 시대 이 지역의 이름이 ‘가림’이었기 때문이다.
가림성은 백제의 성 중 유일하게 축성 기록이 남아 있는 성이라는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동성왕 23년에 위사좌평 백가(苩加)가 가림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다. 그 당시 가림성은 백제의 요충지였기에 고위 관직인 위사좌평을 보내 관리하도록 한 듯하다. 하지만 훗날 성을 쌓은 백가는 자신을 이곳으로 보낸 동성왕에게 앙심을 품고 동성왕을 살해하고 난을 일으킨다. 그 후 무녕왕이 왕위에 올라 난을 평정하고 백가를 죽였다고 전해진다.
산성이라면 높은 산에 있을 듯하지만 가림성은 여행자들이 방문하기 좋은 위치에 있다. 일단 성흥산 중턱까지는 차로 올라갈 수 있고, 차에서 내리면 바로 울창한 숲길이 나온다. 연둣빛 새순을 즐기며 산성 입구를 향해 오르다 보면 충혼사가 나온다. 백제가 멸망한 후 이곳에서 활동한 백제 부흥운동군을 위한 사당이다. 성곽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 가림성을 한 바퀴 둘러볼 수도 있는데 40~50분 가량 소요된다. 성흥산의 고도는 260m여서 이런 낮은 산의 산성이 과연 제 기능을 했을까 의심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막상 가림성을 방문해 보면 그 의문이 풀린다. 가림성 남문의 느티나무 옆에 서면 부여 시내는 물론이고 강경읍을 비롯한 금강 하류 일대가 한눈에 보인다. 산성이 입지하기에 탁월한 조건이었던 것이다.
오랜 그리움을 품은 가림성 느티나무 드라마 <환혼>에서 주인공 낙수 진부연
드라마 <환혼>에서 주인공 낙수 진부연과 장욱은 단양곡에서 혼례식을 치른다. 그리고 단양곡 느티나무 꼭대기에 올라 어린 시절의 약속을 기억하며 사랑을 맹세한다. 이별이 예정되어 있는 짧은 행복이어서 더욱 애틋한 장면이었다. 가림성 느티나무의 또 다른 이름은 ‘사랑나무’이기도 하다. 드라마에서 사랑을 맹세해서가 아니라, 옆으로 퍼진 나무줄기가 마치 반쪽으로된 하트모양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두 장의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이 두 장의 사진을 하나로 이으면 온전한 하트가 완성된다. 그러다 보니 주말이면 가족, 연인과 함께 하트 모양의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인간의 생애는 짧지만 나무의 생애는 인간보다 길다. 시간이 흘러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라져도 나무는 기억하고 있지 않을까? 이곳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사진을 찍고 행복해하던 사람들의 미소를 말이다.
글. 정효정(여행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