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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시대의 장인들, 열정의 평행이론을 펼치다
작성일
2017-01-03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1821

창조를 향한 끊임없는 정진 - 시대의 장인들, 열정의 평행이론을 펼치다 유연하면서도 곧고, 강하면서도 섬세한 우리의 전통 붓과 닮아 있는 두 사람. 춘천과 홍대에 각각 터를 두고 있지만 수십 년간 자신의 분야를 갈고 닦으며 살아온 정진의 삶은 같다. 45년간 도전을 서슴지 않으며 붓 만들기에 매진해 온 박경수 필장과 현대적 감각으로 전통의 뿌리를 재창조하고 있는 캘리그라퍼 김정호 작가는 분야와 세대를 초월한 ‘장인 정신’으로 통하고 있었다.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24호 박경수 필장(좌) 캘리그라퍼 김정호 작가(우)

뿌리를 시작했던 첫걸음에 대해

붓을 새롭게 만들어 낼 때마다 겸손하고 또 겸손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박경수 필장의 호 ‘우겸(又謙)’. 우연인지 캘리그라퍼 김정호 작가의 호 역시 ‘묵묵히’라고 한다. 먹그림이란 뜻의 묵(墨)과 작품을 작업할 때 서두르거나 자만하지 않겠다는 중의적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의 철학이 묘하게 겹쳐 보인다.

박경수 필장 | 필 공예 기법을 사사하고 붓 매기 전통 기법을 이어온 지 반세기가 다 되어갑니다. 아버지(박종식)를 따라 붓을 만들기 시작해, 2013년에 강원도 무형문화재로 인정됐죠. 문화재로서 부끄럽지 않은 작품을 선보이겠다는 마음으로 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인정되기 전 만들었던 붓은 모두 폐기했습니다. 전통에 대한 의지는 고스란히 두 아들에게 이어지고 있어요. 전수자가 없어 척박한 길을 걷게 되는 무형문화재의 현실 속에서 첫째 창선이와 막내 상현이에게 고맙고, 또 감사할 뿐입니다.

김정호 작가 | 저 역시 서예가인 아버지 밑에서 5살 때 처음 붓을 잡았습니다. 서예를 통해 4천 년의 역사를 지닌 필법을 익히고, 대학원에 진학해 서예의 미학을 배웠죠. 이론과 실기를 겸비할 수 있었습니다. 그림을 참 좋아해 한때는 만화가를 꿈꿨던 만큼 서예에 이어 먹그림의 세계도 새로웠습니다. 사군자도 결국 필법에서 시작되니까요. 이제 30대 중반이지만 저만의 캘리를 찾아갈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전통을 익힘으로써 뿌리를 단단히 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가족을 통해 ‘붓’과의 인연을 맺었다는 것 외에도 두 사람의 평행이론은 계속됐다.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도전하는 것 또한 다르지 않다.

캘리그라퍼 김정호 작가

예술을 향유하는 이들과의 무한 소통

일반적으로 캘리그라퍼들이 작업할 때 붓 펜을 사용하는 것과 달리 김정호 작가의 작업실에는 다양한 전통 붓이 눈에 띈다. 어떤 좋은 미술 도구도 붓만 한 것이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처럼 붓에 대한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 있기에 박경수 필장은 명품 붓을 만드는 일에 게으를 수가 없다.

박경수 필장 | 붓에 대한 연구는 만드는 사람을 위함이 아니라 언제나 ‘붓을 사용하는 사람’에 맞춰져 있습니다. 하나의 붓을 완성하기 위해 빗질만 수백 번을 반복합니다. 털의 고르기와 빠짐을 막기 위한 작업은 물론, 붓대를 가볍게 하려고 신소재 카본으로 만든 낚싯대를 응용하기도 했죠. 대나무에 마디가 있으면 붓대를 잡는 위치가 고정되어 붓이 상할 수 있기 때문에 말끔하게 깎아낸 붓대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붓을 쓰는 사람의 손이 편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전통이 오늘을 살기 위해서는 ‘실용’에 대한 부분을 놓치지 않아야죠.

김정호 작가 | 제가 꿈꾸는 캘리 작업 또한 ‘소통’이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상하는 사람과 얼마나 공감할 수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조각과 대중문화, 영상 등의 분야와 계속해서 융합해보는 작업을 진행 중입니다. 영화나 광고에서 캘리가 힘을 얻는 이유는 감성적인 접근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캘리의 진화는 무궁무진하게 열려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무분별해져서는 안 됩니다. 앞서 필장께서 말씀하셨던 것과 같이 전통은 물론 모든 예술이 오랫동안 생명력을 갖기 위해서는 이를 향유하는 사람들과의 끊임없는 교감이 있어야 합니다.

창작자로서의 고집이 있으면서도 예술을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그것을 동기부여 삼아 두 장인은 오늘도 작업실을 떠나지 않는다. 전통과 현대가 같은 ‘장인정신’으로 통하는 순간이다.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24호 박경수 필장

숙명과도 같은 도전의 연속

붓 자체에 화려한 그림을 그려 넣고 남들이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다양한 털로 색다른 작품을 창작하는 박경수 필장. 그의 노력에 화답하듯 김정호 작가는 좋은 붓 자체만으로도 예술가에게 영감을 준다고 한다. 그는 표현력의 한계가 없는 붓으로 다양한 작품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

김정호 작가 | 손끝의 감각이 붓을 통해 되살아납니다. 그 붓끝에서 매번 희열과 실망을 반복하죠. 한 가수가 그러더라고요. “예술가는 자뻑과 자학의 반복이다”라고요. 어떤 분야나 마찬가지입니다. 연습하고 익히다 보면 손보다 눈이 먼저 뜨여 자신의 한계를 들여다보게 됩니다. 그러면 좌절하게 돼요. 30여 년 동안 제가 슬럼프에 빠지지 않았던 것도 한계에 부딪힐 때면 서예에서 먹그림으로, 먹그림에서 캘리로 계속해서 다른 분야에 도전하며 즐겼기 때문인 것 같아요. 배움만큼 자신을 환기하기에 효과적인 것은 없으니까요.

박경수 필장 |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곧은 생각을 하고 있네요. 맞습니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면 공부하는 수밖에 없어요. 아기의 배냇머리로 만든 태모필이나 조류 털로 만든 붓이 문헌에 있는 줄도 몰랐어요. 안 가본 길에 대해 도전하다보니 발견하게 된 거죠. 최근에는 먹물이 결합되어 있는 휴대용 붓을 만들어 특허를 받았어요. 2017년에는 행정자치부의 지원을 받아 춘천 시티투어 프로그램에 붓이야기 전시장을 열게 됐어요. 단순히 붓이 완성되는 과정을 보는 것을 넘어, 붓에 담긴 정신적인 즐거움도 누릴 수 있는 공간이길 바랍니다.

평범함을 거부한 두 남자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작품을 만드는 데 여념이 없다. 그리고 자신의 작품을 자화상 삼아 매일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글‧최은서 사진‧안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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