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트위터 페이스북
제목
조선 풍토에 꼭 맞는 농법
작성일
2019-09-03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3057

정부의 주요 행정 기관 중 하나인 농림축산 식품부의 농업과 관련한 주요한 업무는 농산물의 품질관리와 농업인의 소득을 높이며 농업의 경제력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산하 기관으로 농촌진흥청을 두고 있다. 그런데 이미 15세기에 이러한 목적을 위해 국가사업으로 농업 기술의 과학적 조사와 철저한 관찰 및 실험·실습이 행해지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 풍토에 꼭 맞는 농업 기술을 널리 보급하기 위한 도서가 편찬되었다. 이것은 조선 초 놀라운 과학 혁명을 이루어낸 세종의 의지에 의해 추진된 것이다. 국가가 동원할 수 있는 공적 인원이 적극적으로 투입되어 농민의 실제 경험을 수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조선의 자주적 농업 기술의 역량이 총체적으로 담긴 농업 서적이 탄생하였다. 그것이 조선 역사상 최초의 농업서적으로 역사에 기록된 『농사직설』이다.


21세기 농업서적의 이름도 농사직설?


농업진흥청은 2014년 21세기 과학 한국의 창조 농업 기술 사례를 모아 집약한 최신 농업기술 서적을 편찬하여 농민들에게 보급하였다. 그런데 그 책의 이름이『신농사직설』이다. 21세기에 국고를 쏟아부어 편찬한 농서의 제목에 15세기의 농서 제목이 다시 달린 것을 통해 『농사직설』이 조선의 농사 기술이 집약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농서임을 잘 알 수 있다. 『농사직설』은 왜 책명이 ‘농사직설(農事直設)’일까? 그것은 농민들이 직접 농사지은 체험담을 바탕으로 편찬되었기 때문에『농사직설』이 된 것이다. 『농사직설』 전에 조선에서 통용되던 농서는 13세기 원의 대사농사(大司農司)가 펴낸『농상집요(農桑輯要)』였다. 그러나 내용이 어려워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이에 태종은 우대언(右代言) 한상덕 (韓尙德)의 제언을 받아들여 농상집요의 내용을 이두로 발췌하여 번역한 『농서집요(農書輯要)』를 펴내었다.


01. 1429년 32살의 청년 국왕 세종이 농업을 권장하여 나라의 근본을 튼튼히 하겠다는 청운을 안고 왕명을 내려 편찬한 『농사직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농사직설』을 편찬하게 된 까닭


『농서집요(農書輯要)』가 보급되었지만 결국 『농상집요』의 발췌 번역본이었고 농상집요는 중국 화북 지방의 농법을 소개한 책이어서 그 농법을 우리나라에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랐다. 우리나라 풍토와 토질에 맞는 농사 기술 방법을 보급하는 것이 필요하였다. 이러한 배경하에서 『농사직설』은 세종 11년 1429년 32살의 청년 국왕 세종이 선왕들의 유지를 받들어 농업을 권장하여 나라의 근본을 튼튼히 하겠다는 청운을 안고 왕명을 내려 편찬하였다. 『농사직설』을 편찬하게 된 배경은 정초(鄭招)가 쓴 『농사직설』 서문에 잘 나와 있다.


“…오방(五方)의 풍토가 같지 아니하여 곡식을 심고 가꾸는 법이 각기 적합한 바가 있어, 옛 농서와 다 같을 수 없다 하여, 여러 도의 감사(監司)에게 명하여 주현(州縣) 의 노농(老農)들이 이미 체험한 바를 갖추어 아뢰게 하시었다. 또 신(臣) 정초에게 이를 정리하라 명하고, 또 신(臣)과 종부시 소윤(宗簿寺 少尹) 변효문(卞孝文)에게 살펴 조사하고 참고하라고 하셨다. 그 중복된 것을 버리고 그 절요(切要)한 것만 뽑아서 찬집하여 한 편을 만들고 제목을 ‘농사직설’이라 하였다.” - 세종실록 44권 11년 5월 16일 신유조



『농사직설 』에 기록된 과학적인 영농기술


『농사직설』은 ‘노농(老農)’ 즉 오랜 농사 경험이 있는 농부의 선험을 채록하여 우리나라에 맞는 농사 방법을 엄선하여 기록했다. 세종의 언급에 의하면 “주현(州縣)에 보내어 물어서 그 땅에서 이미 시험한 결과를 모아서... 혹시나 농사에 이로울 만한 것이라면 마음을 다하여 연구하여 거론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고 하였으니 매우 과학적인 농업 서적이다. 『농사직설』이 전하는 영농 방법은 아래와 같다.


첫째, 비곡종(備穀種 종자 준비) 둘째, 경지(耕地 파종전 경작지 일구기와 비료를 주는 시비법(施肥法), 소몰이법) 셋째, 종마(種麻 마심기) 넷째, 종도(種稻 벼심는 방법, 김매기, 시비법) 다섯째, 종서속(種黍粟 기자와 조재배법) 여섯째, 종직(種稷 피 재배법) 일곱째, 종대두 소두녹두(種大斗小斗菉豆 콩과 팥, 녹두의 재배법) 여덟째, 종대소맥(種大小麥 보리와 밀 재배법) 아홉째, 종호마(種胡麻 깨 재배법) 열 번째, 종교맥(種蒿麥 메밀 재배법)



경작 농기구로 쟁기·낫·써레·곰배·쇠스랑·미리개·번지·고무래·따비·호미 등을 언급하고 있고, 비료 종류로는 인분·우마분·재거름·녹비(綠肥, 생나무 참갈잎 비료), 외양간거름에 대한 정보를 상세히 담고 있다.

이러한 『농사직설』은 특히 농토가 척박하여 농사 기술이 뒤떨어진 함길도와 평안도에 하삼도(下三道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의 영농 기술을 전해주어 후에 실시되는 공법(貢法)에 의거한 균등한 수세를 징수하는데 무리가 없도록 하였다.


『농사직설』은 우리 풍토에 꼭 맞는 자주적 농법을 세종의 애민정신으로 백성들에게 보급하고자 편찬된 역사에 길이 이름을 남길 역사적 가치가 있는 조선 최초의 과학적 농서이다.


02~03. 조선시대 농기구들(2번 고무래,3번 써래). 조선시대에는 농업 생산량을 높이기 위해서는 농기구의 보급이 필요하다는 인식 아래 여러 정책을 펼쳤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



글. 송영심 (중동중학교 교사, 『음식 속 조선야사』 저자)




 

 

만족도조사
유용한 정보가 되셨나요?
만족도조사선택 확인
메뉴담당자 : 대변인실
페이지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