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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고원에 솟은 천마의 귀’명승 제12호 진안 마이산馬耳山
작성일
2012-04-17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3607

 

말귀의 형상을 한 산
진안은 소백산맥과 노령산맥 사이에 있는 고원에 위치하고 있다. 진안, 무주, 장수지역에 해발 300에서 500m의 고도를 이루고 있는 진안고원은 호남의 지붕이라 일컬어지는 곳이다. 이렇게 높은 고도에 마치 평야지대와 같이 평평한 지형을 보이는 곳이 바로 진안이다. 마이산은 지붕과 같은 고원지대에서 또다시 솟아오른 매우 특이한 바위산이다. 마이산은 강의 발원지로도 유명하다. 남쪽 사면에서는 남해로 흘러가는 섬진강의 수계가 시작되고, 북쪽 사면에서는 중부지방을 휘돌아 서해로 향하는 금강의 수계가 발원한다.

멀리서 보이는 마이산의 모습도 기이하지만, 근거리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산의 세부는 더욱 신기하다. 마이산은 중생대 말기인 백악기에 지층이 갈라지면서 두 봉우리가 솟아 오른 것이라고 한다. 모래와 자갈이 섞여서 형성된 사질역암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우뚝 솟은 탑 모양의 산형을 지니고 있다. 가까이에서 보면 모래와 자갈이 섞여 하나의 커다란 바위덩어리를 형성하고 있는데, 마치 모래와 자갈을 시멘트로 혼합하여 인공적으로 타설해 놓은 것과 같은 특이한 형상을 하고 있다. 마이산은 화강암질 편마암이 주변의 화강암류 분출에 따라 솟아 오른 뒤, 그 전면의 오목한 곳에 쇄설물이 퇴적되어 이루어진 것이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높았던 화강암질 편마암지역이 침식에 약하여 높이 350m 내외의 진안고원이 되고, 상대적으로 낮았던 침식에 강한 마이산 역암지역이 더 높게 잔존하여 지형의 역전현상이 일어난 것이라고 한다.

마이산의 바위 표면에는 마치 큰 공룡 알이 박혀 있던 자국과도 같은 둥글고 큰 구멍이 숭숭 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타포니tafoni, 또는 풍화혈風化穴이라고 하는데, 물이 암석의 틈으로 침투하여 부피를 팽창시킴으로써 암석을 뜯어내는 빙정의 쐐기작용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마이산 산봉우리와 비슷한 구성을 하고 있는 탑이나 돔과 같은 모양의 지형은 마이산의 동남쪽으로 10여 개소가 약2km에 걸쳐 분포하고 있다.

 

역사와 전설이 있는 명산
마이산은 특이한 생김새와도 같이 다양한 인문적 의미를 풍부하게 지니고 있는 산이다. 마이산에 얽혀 있는 전설과 상징은 매우 다양하다. 이러한 문화적 의미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것은 마이산이 여러 가지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오랜 세월 동안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온 마이산은 금강산과도 같이 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 계절별로 마이산을 부르는 이름이 다른데, 봄에는 짙은 안개 속에 뚜렷이 솟아 오른 두 봉우리가 바다 위에 떠 있는 돛대와 같다 하여 돛대봉이라 하며, 여름에는 하늘로 우뚝 솟은 것이 용의 뿔과 같다하여 용각봉이라 한다. 가을에는 단풍으로 치장한 살찐 말의 귀와 같다 하여 마이봉이라 하고, 겨울에는 백설로 덮인 대지에 먹물을 찍는 붓끝과 같다 하여 문필봉이라 불렸다. 또한 마이산은 시대별로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어졌다. 신라 때에는 서다산, 고려시대에는 용출산이라 불렀다고 하며, 조선시대에는 태조가 속금산이라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그리고 태종 시대 이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는 마이산이란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마이산에는 이렇게 많은 이름만큼이나 다양한 전설이 전해진다. 속금산이란 명칭에 대한 전설은 이러하다. 태조 이성계가 고려의 무장으로 운봉에서 왜구를 무찌르고 개선하는 길에 마이산을 보았는데 그 모습이 꿈속에서 받은 금척(금빛이 나는 자)을 묶어 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마치 마이산이 오행의 금행金行을 묶은 듯 생겼다고 하여 속금산으로 명명했다고 한다. 그 후 이성계는 30일 동안 마이산에서 기도하며 건국의 대의를 품었다고 한다. 이러한 전설은 조선의 창업을 기리는 노래로 궁중의 연희악이나 종묘제례악에 사용되었던 ‘몽금척요’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 몽금척요는 1393년(태조2) 삼봉 정도전이 지은 가사로 마이산에 관한 구절이 나온다. “산의 사면은 모두 돌로 우뚝 솟아 돛대와 같은데, 그 아름다움이 그지없다.”하며 마이산의 모습을 찬미하고 있다. 마이산은 조선의 개국과 밀접한 인연을 지닌 산이라 할 수 있다.

태조 이성계에 관련된 전설 외에도 다양한 문화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마이산은 이 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또 하나의 특별한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수많은 돌을 이용해 기이한 형태로 돌탑을 쌓아놓은 탑사의 풍경이다. 마이산 남측 입구부분에는 많은 돌탑과 함께 탑사가 건립되어 있다. 돌탑은 접착제를 쓰지도 않고, 시멘트로 굳혀 놓은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뾰족하게 쌓아 놓은 돌탑들은 100여 년이 넘는 동안 쓰러지지 않고 견고하게 유지되어 오고 있다. 이 탑은 이갑룡(1860~1957)처사가 세운 것이라고 한다. 이갑룡 처사는 신비한 능력의 소유자였다고 하며, 돌탑을 세우는데 있어 음양의 이치를 바탕으로 하고, 불교적 의미를 담아 108기의 탑군으로 구성하였으며, 팔진도법의 배열을 적절히 사용했다고 한다. 돌탑이 갖는 상징적인 의미 외에도 탑사의 돌탑들은 마이산의 암봉과 매우 잘 어울려 마이산 특유의 경관을 연출하고 있다.

 

마이산의 신비와 명승적 가치
마이산 탑사에는 신비한 현상이 많다. 특히 날씨가 추운 한겨울에 마이산 탑사의 돌탑 아래 정화수를 떠놓으면 역고드름이 생긴다고 한다. 이 고드름은 보통 고드름 같이 위에서 아래로 물이 흐르는 방향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물그릇 안의 물이 얼면서 고드름이 반대로 위를 향해 솟아오르는 것과 같은 모습으로 결빙된다는 것이다. 과학적으로 충분히 설명될 수 있는 현상이라고 하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신비한 모습일 수밖에 없다. 또한 수마이봉에는 특별한 약수가 있다. 수마이봉은 남측 방향에서 보면 마치 코끼리의 형상을 띤 것처럼 보인다. 이 수마이봉의 중턱에는 화암동굴이 위치하고 있는데, 동굴 안에는 사시사철 석간수가 흘러나오고 있다. 이 석간수를 마시고 기도를 드리면 아들을 얻는다는 전설이 있어 예전에는 많은 여성들이 치성을 드리려 찾아왔다고 한다.

마이산 부근에는 진안 은수사 청실배나무(천연기념물 제386호)와 진안 마이산 줄사철나무 군락(천연기념물 제380호)과 같은 귀중한 식물자원이 인접하여 있다. 또한 마이산에는 은수사, 금당사, 북수사, 이산묘 등이 인근에 위치한다. 이와 같은 자연유산과 전통문화유산들은 마이산의 명승적 가치를 한층 높여주는 요소들이다.

말귀의 형상이라는 마이산은 경사가 매우 가파르다. 수마이봉은 곧게 서 있어 사람들이 쉽게 등반할 수 없지만, 암마이봉은 조금 완만하여 등산이 가능하며 이미 등산로가 개설되어 있다. 마이산에는 암마이봉과 수마이봉 사이로 고갯길이 계단으로 조성되어 있다. 북쪽의 마이산 도립공원 관리사무소 방향에서 올라가면 탑사로 넘어가는 고갯길의 정상에 오르기 전에 우측으로 난 등산로가 있다. 여기서 암마이봉 정상까지의 거리는 얼마 되지 않아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 코스다. 사람들은 이 곳을 짧은 시간에 너무나 많이 이용하였고, 그 결과 암석 표면에 얇게 형성된 토양층이 크게 피해를 받아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결국 암마이봉의 빼어난 경관을 지키기 위해 복구사업을 시행하고 등산로를 폐쇄한 바 있다. 복구를 위해 시행한 복원공사가 제자리를 잡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훼손 이전의 상태로 완벽히 되돌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훼손된 명승은 계속해서 사람들의 흥미를 불러올 수 없다. 파괴된 자연은 더 이상 이용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아름다운 명승을 지속가능하게 보존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다.

 

 

글·사진·김학범 한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
사진·문화재청, 이미지투데이, 진안군청 소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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