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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설명

제목
[궁궐의 현판과 주련-창덕궁_궁문]
등록일
2010-07-12
주관부서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1812








1. 궁문宮門









1-h-1 돈화문敦化門

 

위치와 연혁 : 창덕궁의 남쪽 정문이다. 남아 있는 궁궐의 대문으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실록에 따르면 1405(태종 5)년 창덕궁을 짓고 나서 몇 년 후인 1412(태종 12)년 5월에 세웠다.<원전 1> 1451(문종 즉위)년에 지금과 같은 규모로 중창(重創)했다. 임진왜란 때 불타 버린 것을 1608(광해군 즉위)년에 다시 세웠다.
 

뜻풀이 : ‘돈화(敦化)’는 ‘교화를 돈독하게 한다’는 뜻이다. 이 말은 『중용(中庸)』에서 처음 나왔다. 『중용』 30장에서 “만물이 함께 길러져 서로 해치지 않으며, 도가 함께 이루어져 서로 어그러지지 않는다. 작은 덕은 냇물의 흐름이요 큰 덕은 교화를 돈독하게 하니[敦化], 이는 천지가 위대해지는 것이다.”라고했다. <원전 2>

중국 후한 말기의 대표적 유학자인 정현(鄭玄, 127~200년) 1)은 이 대목을 풀이하면서 “작은 덕은 냇물의 흐름이어서 새싹들을 적셔 주니 제후에게 비유한 것이다. 큰 덕은 교화를 돈독하게[敦化] 하여 만물을 두텁게 자라게 하니 천자에게 비유한 것이다.”<원전 3>라고 하였다. 당나라의 학자 공영달(孔穎達, 574~648년) 2)은 소(疏)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공자께서 『춘추(春秋)』를 지으신 것은 제후의 작은 덕으로써 말하자면 냇물의 흐름이 새싹들을 적셔 주는 것과 같고, 천자의 큰 덕으로써 말하자면 인애(仁愛)가 두터워서 만물을 변화·생성시키는 것이다.”<원전 4>라고 했다.

즉 ‘돈화’는 원래 『중용』에서 “공자의 덕을 크게는 임금의 덕에 비유할 수 있다”는 표현으로 쓰였고, 여기에서 의미가 확장해 ‘임금이 큰 덕을 베풀어 백성들을 돈독하게 교화한다’는 뜻을 가지게 되었다.



 

제작 정보 : 1412(태종 12)년 9월에 돈화문의 문루(門樓)에 동종(銅鍾)을 걸었는데 이 때 당대의 이름난 문인인 변계량(卞季良, 1369~1430년) 3)이 종의 명문[鍾銘]을 지었다. 그러나 변계량의 문집인 『춘정집(春亭集)』에는 이 글의 제목을「광화문종명(光化門鍾銘)」이라고 잘못 써 놓았다.






1-h-2 금호문金虎門

 

위치와 연혁 : 창덕궁의 서쪽 궁장에 있는 문이다. 승정원(承政院)의 승지나 홍문관(弘文館)의 교서관(校書館) 등 궁중 관서 벼슬아치들이 다니던 문이다. 한성의 역사가 담긴 책 『한경지략(漢京識略)』의 「창덕궁(昌德宮)」 조에 따르면“서쪽이 금호문인데, 편액은 성임(成任, 1421~1484년) 4)이 썼다. 조정의 신료[朝臣]들은 모두 이 문으로 출입하는데, 사헌부의 대관(臺官) 5)은 정문인 돈화문으로 출입한다. 해가 저물어 문을 잠그면 당직 관리가 반드시 가서 확인한다.”<원전 5>고 하였다.



 

뜻풀이 : ‘금호(金虎)’는 ‘금 호랑이’라는 의미이다. ‘금(金)’은 오행 사상에서 서쪽을 가리키고, ‘호(虎)’ 또한 서방(西方) 백호(白虎)를 가리키므로 서문의 이름으로 지은 것이다. 『회남자(淮南子)』6) 가운데 하늘과 땅을 포함한 만물의 형성 과정을 신화적으로 설명한 「천문훈(天文訓)」 편에 “서방은 금(金)이다. 임금으로는 소호(少昊)이고 … 신으로는 태백(太白)이며, 짐승으로는 백호요, 음으로는 상(商), 날로는 경신(庚辛)일에 해당한다.”<원전 6>라고 하였다. 즉 백호는 서방을 상징하는 동물인 것이다.






1-h-3 단봉문丹鳳門


 

위치와 연혁 : 창덕궁의 동쪽에 있는 문으로 돈화문의 동편 궁장에 있다. 『한경지략』 「창덕궁」 조에, “남쪽의 오른편이 단봉문이다. 동쪽으로 건양문이 있고, 이 문 동쪽으로는 창경궁이다.”<원전 7>라고 했다. 단봉문은 본래 종친부의 왕족및 친·외척과 상궁이 출입하던 문으로 무관인 선전관(宣傳官)이 개폐를 관리했다. 이 문은 함부로 여닫고 드나들 수 있는 문이 아니었다. 1476(성종 7)년 6월에 병조(兵曹)의 사령(使令) 정연부(鄭延夫)가 문이 잠긴 후에 제멋대로 열자, 이를 교대시(絞待時: 교수형)의 율로 다스린 일이 있다. 또 정조 때 홍국영(洪國榮, 1748~1781년) 7)이 숙위소(宿衛所)를 창설하고 숙위대장이 된 다음 한밤중에 이 문을 드나들어 문제가 된 일이 있다.

뜻풀이 : ‘단봉(丹鳳)’은 ‘붉은 봉황새’란 의미이다. 단봉에는 여러 가지 뜻이있다. 글자 그대로는 머리와 날개 끝이 붉은 봉황새를 말하지만, 조서를 전달하는 사자(使者)를 가리키기도 하며, 도성과 조정을 일컫기도 한다. 이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지은 이름인 듯하다. 중국에도 ‘단봉’으로 이름 지은 건물이 많이 있다.





1-h-4 요금문曜金門

 

위치와 연혁 : 창덕궁의 서북쪽 담장에 난 문이다. 요금문은 궁중의 왕족을 제외한 내시, 상궁들이 병들어 죽었을 때 퇴궐시키던 문이다. 무관인 선전관이 개폐를 관리한다. 희빈(禧嬪) 장씨(張氏, ?~1701년)의 무고로 인현왕후(仁顯王后,1667~1701년) 8)가 쫓겨날 때 이 문을 지난 일이 있다.

 

뜻풀이 : ‘요금(曜金)’은 ‘금빛이 빛난다’는 의미이다. ‘요(曜)’는 빛난다는 뜻이고 ‘금(金)’은 오행에서 서쪽과 가을을 상징하므로 서문의 이름으로 지은 것이다.



 

제작 정보 : 원래 현판의 글씨는 성종 때 판결사(判決事) 신자건(愼自健,1443~1527년) 9)이 썼다. <원전 8> 그의 글씨를 구하려는 사람들이 문전성시를 이룰 정도로 서예에 뛰어났고, 성종도 그의 글씨에 감탄해 요금문 편액을 쓰게 했다고 전한다. 지금의 현판은 중건 이후에 다시 제작된 것으로 판단된다.






1-h-5 건무문建武門


 

위치와 연혁 : 농산정의 북쪽 담장에 딸린 문이다. 이 문의 바깥으로 성균관대학교 운동장과 금잔디광장이 보인다.

 

뜻풀이 : ‘건무(建武)’는 무(武)를 세운다는 의미이다. ‘무(武)’는 오행에서 북방의 현무(玄武)를 뜻하므로 북문의 이름으로 사용한 것이다.

 

제작 정보 : 편액이 문의 안쪽에 달려 있다. 필사자를 알 수 없고, 칠이 되어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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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현. 자는 강성(康成). 유가 경전연구에 힘써, 옛 문장들을 새롭고 쉽게 풀었다. 훈고학의 시조로 존경을 받았다.

2) 공영달은 당초기의 학자이다. 문장·천문·수학에 능통했다.

3) 변계량. 자는 거경(巨卿),호는 춘정(春亭). 고려 말·조선초의 문신이다. 문장이 뛰어나『태조실록』 편찬,『고려사』 개수작업에 참여했다.

4) 성임은 자는 중경(重卿), 호는 일재(逸齋), 안재(安齋), 시호는 문안(文安). 벼슬이 이조판서에까지 올랐다. 시문에 능했고 글씨로 이름이 높았다.

5) 사헌부 대관은 고려·조선 시대에 탄핵, 감찰 등을 담당한 관료다.

6) 『회남자』는 중국 전한(前漢)의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이 저술한 책으로 도가와 음양오행,유가, 법가 사상 등이 반영되어 있다.

7) 홍국영은 영조때 등용되어 벽파가 세손(정조)을 해하려는 음모를 막아 신임을 얻었다. 그러나 정조 즉위 후 실권을 잡자 반대파 못지 않은 세도를 휘둘렀다.

8) 인현왕후 민씨는 숙종의 계비이다. 희빈 장씨가 낳은 아들을 세자로 책봉한 문제로 1689년 기사환국(己巳換局)이 일어났을 때 폐위되어 궁에서 쫓겨났다가 1694년 복위하였다.

9) 신자건의 자는 표직(杓直),호는 송재(松齋),본관은 거창(居昌)이다. 관직에서 물러나 서예에 전념했다. 왕희지(王羲之)의 필법을 깊이 터득하였다.

 


<원전 1> 『태종실록(太宗實錄)』 12년 5월 22일(乙巳), “都城左右行廊成. 自闕門至貞善坊洞口,行廊四百七十二間, 進善門之南, 建樓門五間, 名曰敦化.”

<원전 2> 『중용』, “萬物竝育而不相害, 道竝行而不相悖. 小德川流, 大德敦化, 此天地之所以爲大也.”

<원전 3> 위 구절에 대한 정현의 주, “小德川流,浸潤萌芽, 喩諸侯也. 大德敦化, 厚生萬物, 喩天子也.”

<원전 4> 위 구절에 대한 공영달의 소, “孔子所作春秋, 若以諸侯小德言之, 如川水之流, 浸潤萌芽, 若以天子大德言之, 則仁愛敦厚, 化生萬物也.”

<원전 5> 『한경지략』 「창덕궁」, “西曰金虎門, 額成任書, 朝臣多由此門出入, 而臺官則必由敦化正門出入. 金虎門下?後, 入直注書, 必往考門?.”

<원전 6> 『회남자』 「천문훈」, “西方金也, 其帝少昊, 其佐?收, 執矩而治秋, 其神爲太白, 其獸白虎, 其音商, 其日庚辛.”

<원전 7> 『한경지략』 「창덕궁」, “南右曰丹鳳,東曰建陽, 此門以東, 昌慶宮也.”

<원전 8> 『한경지략』 「창덕궁」, “又西曰曜金,成宗朝, 命判決事愼自健書門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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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재청에서 발간한 [궁궐의 현판과 주련 2] 에서 발췌한 내용 입니다.
* 이글의 저작권은 문화재청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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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의_문화재청 대변인실 (042-481-4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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