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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설명

제목
[궁궐의 현판과 주련-경복궁]
등록일
2010-01-08
주관부서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3326




알려드립니다

  그동안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호응 속에 연재되었던「조선 왕릉의 비밀」연재를 마치고 2010년도에는「궁궐의 현판과 주련」을 연재합니다.


조선조 유교문화의 정수인 궁궐의 건물은 공간적 구조와 각 건물의 역할과 명칭에는 유교적 세계관과 도덕관이 반영되어 있으며, 이러한 유교적 이념을 표현해 놓은 것이 바로 현판과 주련입니다.


각 궁궐에는 경복궁, 창덕궁과 같이 각각의 이름이 있으며, 궁궐 내에 있는 전각들도 저마다의 이름이 있습니다. 궁궐 건축물의 이름이 걸려 있는 판을 현판(懸板)이라 부르며, 현판에는 각 건축물의 쓰임새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또한 경복궁과 창덕궁, 창경궁 등의 각 건물 기둥에는 한시의 문구를 새긴 주련들이 있습니다. 기둥에 대구가 되는 글귀를 써 붙였다 하여 주련(柱聯) 이라고 하는데, 주련은 단독으로 존재하는 경우가 거의 없고 대체로 짝을 이룹니다.


궁궐의 현판과 주련은 옛 경전과 각종 고전을 읽거나 해석해야만 이해할 수 있으며, 그 철학적 의미까지 새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반인들이 그 뜻과 의미를 깊이 있게 이해하기란 참으로 쉽지 않았습니다.


이에 문화재청에서는 일반인들도 쉽게 궁궐의 현판과 주련을 이해할 수 있도록 2007년도에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에 연구 용역을 의뢰하여 연구보고서와 함께 동 보고서를 바탕으로「궁궐의 현판과 주련」을 발간한 바 있습니다.


금번 연재하는「궁궐의 현판과 주련」은 2007년도에 발행된 동 책자를 바탕으로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 종묘, 칠궁 등의 순서로 연재될 예정입니다.


아무쪼록 이번 연재를 통하여 조선의 국가적 이념과 궁궐 생활 문화를 이해하고, 나아가 선조들의 멋과 운치를 느끼시길 바라며, 아울러 궁궐 답사의 훌륭한 길라잡이 역할이 되기를 소원 합니다.


아울러, 독자여러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궁궐의 현판과 주련」(2007 문화재청 발간)에 실린 연세대학교 철학과 이광호 교수님의 머리말을 소개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머리말 : 궁궐의 현판과 주련을 내며..
 

조선조 500년은 유교를 이념으로 한 유교 국가였다. 유교의 범위는 시간적으로는 고대에서 근현대까지 이어지며, 공간적으로는 중국을 중심으로 하여 한자 문명을 수용한 동아시아 국가 전역을 포함한다.


유학이 중국에서 발원하였다지만 유학의 형성과 발전에는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의 여러 국가와 민족들이 상호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유학의 형성과 발전 과정에서 보면 조선조 사회는 대단히 중요한 위치에 있다. 조선왕조는 유학의 이념을 전국적으로 시행하기 위하여 정치 사회적으로 전력을 경주하였기때문에 조선조 사회는 유학 사상의 이념을 현실화하기 위한 하나의 전형적 시험장이었다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이다. 그런 만큼 조선조의 사상과 문화 전반의 이해는 유학 사상에 대한 기초적 이해를 전제로 한다. 하물며 왕과 사대부를 중심으로 유교적 정치의 모든 것이 기획되고 집행되던 궁궐을 이해하는 데에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근대 사회 이후 서구 문명의 동진과 함께 유교 문화의 종주국이던 중국의 정치와 문화가 몰락하기 시작하며, 유학은 동아시아 문화의 후진성에 대한 총체적 책임을 지게 되었다. 그 결과 근대 100여년 동안 유교 문화는 전반적인 부정과 비판의 화살을 피할 수 없었다.


유학의 이념은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사대부들을 실현의 주체로 하고, 왕을 권력의 정점으로 삼아 덕치주의의 이상을 실현하는 것이었다. 백성을 근본으로 삼되, 권력의 핵심이 왕이었기에 모든 정치적 결정은 궁궐에서 이루어졌으며, 이러한 의미에서 궁궐은 조선조 문화의 절대적 공간이었다. 그래서 궁궐 건물의 공간적 구조와 각 건물의 역할과 명칭에는 유교적 세계관과 도덕관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유교적 이념의 기초가 인류의 보편적 이성인 천명에 기초한 덕치주의, 음양오행에 기초한 자연관, 민심을 천심으로 삼는 민본주의라면 궁궐의 현판에는 이러한 유교적 이념이 고스란히 실려 있다. 이처럼 현판은 그 건물의 고유 이름표이면서 해당 건물의 특성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현판의 뜻을 알지 못하고서는 궁궐 문화를 제대로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다.


주련(柱聯)은 한시 구절이나 단편적인 산문 등을 널빤지에 양각 또는 음각으로 새기거나 써서 전통 한옥의 기둥에 걸어 놓은 장식물이다. 주련의 내용은 인격 수양에 도움이 되는 것, 수복강녕(壽福康寧)을 기원하는 것, 아름다운 풍광을 읊은 것 등 다양하다. 여기에 쓰이는 글귀는 옛날부터 전하는 시문을 많이 이용하는데, 때로는 새롭게 창작한 것을 새겨 넣기도 한다. 주련의 글씨는 선대(先代)의 유명 서가(書家)나 당대의 명필들이 쓴 것을 새겨서 예술 작품으로서의 가치도 지닌다.


우리 선인들은 이러한 주련을 개인의 집이나 누정(樓亭), 사찰, 궁궐 등 생활 공간의 곳곳에 걸어 놓아 수시로 보고 감상하면서 인격 수양에 힘쓰고 멋과 운치를 누렸다. 전국 곳곳의 고택이나 유적지, 사찰, 궁궐 등에 널려 있는 주련은 선인들이 일상 속에서 멋과 운치를 누리고 수양에 힘쓴 생활 문화의 자취이다. 특히 우리 궁궐에는 여러 건물에 주련이 걸려 있는데, 오랫동안 전문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여 대련(對聯)으로 되어 있는 주련들이 짝이 바뀐 것이 많고, 일부는 한 짝이 분실된 것도 있어 찬란한 궁궐 문화에 비해 매우 아쉬운 점이 많았다.


금번에 문화재청에서 현판과 주련의 보존과 관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심도있는 조사 연구를 수행하게 한 것은 늦은 감이 있으나 대단히 큰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한자로 된 문화 유산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인구가 거의 사라지는 마당에 고건축물의 현판과 주련을 해석하고 정리하는 것은 전통 문화의 보존과 이해를 통한 발전적 계승이라는 측면에서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중요한 사업이다. 이 책을 토대로 우리의 궁궐 문화를 깊게 이해하면, 동아시아의 보편적 문화이던 유교 문화를 우리의 고유 문화로 토착화시킨 선인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현대 문화가 가진 물질 만능주의의 병폐를 바로잡을 수 있는 유교적 덕치주의, 인문주의 정신과의 만남의 길도 열릴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1.경복궁景福宮




경복궁景福宮, 지금에 이르기까지

조선을 세우고 도읍을 한양으로 정한 뒤 처음으로 만든 궁궐이다. 1395년(태조 4년)에 근정전(勤政殿)·사정전(思政殿)·융문루(隆文樓)·융무루(隆武樓)·근정문(勤政門)·강녕전(康寧殿)·연생전(延生殿)·경성전(慶成殿) 등의 건물을 짓기 시작하여 이듬해 완공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불탔으며 그 후 오랜 동안 공궐(空闕)로 방치되어 있다가 1867년(고종 4)에 중건하였다. 1917년에 창덕궁 대조전(大造殿)을 비롯한 내전 일곽이 불에 타자, 경복궁의 교태전(交泰殿) 권역의 건물을 헐어다 재건에 썼다. 이때에 철거된 전각은 교태전·강녕전·연길당·경성전·연성전·인지당·흠경각·함원전·만경전·홍복전 등 400여 칸에 달하였다. 그 후 일인들은 광화문을 비롯하여 여러 건물들을 철거하거나 이건하였고, 조선총독부 청사를 비롯하여 공진회 건물 등 낯선 건축물을 지었다. 또 각 지역의 석탑 등의 석조물을 반입하여 요소에 배열하고 일반에게 공개하도록 하였다. 1968년에는 6·25전쟁 때 문루가 불탔던 광화문 육축1)의 석대를 궁 남쪽에 옮겨 시멘트로 문루를 세웠다. 1996년에는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하였으며, 이후 복원 작업을 추진하였다. 1995년에는 강녕전이, 1999년에는 자선당 등이 복원되었으며, 2001년 10월에는 흥례문이 복원되어 일반에게 공개되었다. 이어 을미사변이 일어났던 건청궁이 2006년 복원되어 2007년 개방되었으며, 여러 전각들이 복원과 개방을 준비하고 있다.

경복景福의 뜻풀이

‘景福’은 ‘큰 복’이란 뜻으로 ‘景’은 ‘크다’, ‘福’은 ‘복’을 의미한다. 『시경(詩經)』에서는 이 말이 여러 군데에 나오지만 정도전 2)은 특히 『대아(大雅)』「기취(旣醉)」편에 나오는 것을 취하여서 이름을 지었다. 이름을 지은 의미를 정도전은 임금에게 이렇게 아뢰었다.
“신이 분부를 받자와 삼가 손을 모으고 머리를 조아려 『시경(詩經)』 「주아(周雅)」
3)에 있는 ‘이미 술에 취하고 덕에 배가 불러서 군자의 만년에 큰 복[景福]을 빈다.’라는 시(詩)를 외우고, 새 궁궐을 경복궁이라고 이름 짓기를 청하오니, 전하와 자손께서 만년 태평의 업(業)을 누리시옵고, 사방의 신민으로 하여금 길이 보고 느끼게 하옵니다. 그러나 『춘추(春秋)』에, ‘백성을 중히 여기고 건축을 삼가라.’ 했으니, 어찌 임금이 된 자로 하여금 백성만 괴롭혀 자봉(自奉)하라는 것이겠습니까? 넓은 방에서 한가히 거처할 때에는 빈한한 선비를 도울 생각을 하고, 전각에 서늘한 바람이 불게 되면 맑고 그늘진 것을 생각해 본 뒤에 거의 만백성의 봉양하는데 저버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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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육축(陸築)은 성이나 문의 아래돌로 만든 축대 부분이다.
2) 조선 개국의 1등 공신으로 활약한 정도전은 한양 천도를 주도했고, 성리학의 이념에 따라 도시 계획을 짜고 궁궐과 주요 전각의 이름을 지었다. 1398년 제 1차 왕자의 난 때 태종 이방원에게 참수되었다.
3) 주아는 『시경』의 「대아」편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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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재청에서 발간한 [궁궐의 현판과 주련1] 에서 발췌한 내용 입니다.
* 이글의 저작권은 문화재청에 있습니다.
* 사진과 글의 무단 전재나 복사를 금합니다.
* 문의_문화재청 대변인실 (042-481-4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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