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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기고

제목
문화재의 뒤안길(92) - 농경사회 지팡이 '살포' (서울경제, '21.5.24)
작성자
강석훈
게재일
2021-05-24
주관부서
대변인실
조회수
192

 

문화재의 뒤안길(92) (서울경제, '21.5.24)

 

농경사회 지도·통솔하는 권위의 지팡이 '살포'

글/강석훈 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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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물 제930호로 지정된 ‘이경석 궤장 및 사궤장 연회도 화첩’은 원로대신 이경석이 70세가 넘은 것을 기념해 왕에게 하사받은 물품으로 구성돼 있다. /사진 제공=문화재청

 

[서울경제] 조선 현종 9년(1668)에 왕이 원로대신 이경석(1595~1671)에게 내린 의자(?) 1점과 지팡이(杖) 4점 그리고 이를 하사받는 장면을 그린 그림 등 총 6점의 유물이 보물(제930호)로 지정돼 있다.

조선 시대에는 70세가 넘은 신하에게 공경의 뜻으로 이러한 도구를 왕이 직접 선물로 주는 풍습이 있었다. 이때는 반드시 잔치를 열어 의정부 대신을 참석하게 하고 예문관이 교서를 낭독하는 가운데 악사와 무희들이 연희를 펼쳤다.

왕이 하사한 물건 중 지팡이 2점을 보면 나무 끝에 작은 삽이 달려 있다.

이는 농경사회의 치수(治水)를 주관하는 통치자의 권위물인 ‘살포’다.

 살포는 논에 물을 댈 때 쓰는 도구로 한 해 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권위의 지팡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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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물로 지정된 ‘살포’는 농경시대 권위의 상징을 보여준다. /사진 제공=문화재청

 

 

가야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고대 고분 발굴 현장에서도 끊임없이 살포가 출토되는 것은 이것이 단순한 농기구가 아닌 우리 역사 속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통치의 ‘지휘봉’임을 말해준다. 살포는 실제 농촌에서도 다양한 사회적 기능을 담당했다. 민속 조사 보고서에 드러난 구체적 사례도 있다.

충남 청양에서는 주민들이 두레패를 구성할 때 회의를 거쳐 총책임자를 선정하는데 그를 좌상(座上)이라고 불렀다.

좌상은 마을에서 유일하게 살포를 쥘 수 있는 자였다.

농사일에 직접 참여하지 않지만 두레 진행 방식과 순서를 결정하고 현장 지도와 일꾼을 수시로 통솔하는 등 두레의 전반에 관여하며 마을의 주요 노동력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지도자의 역할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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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물 제930호 ‘이경석 궤장 및 사궤장 연회도 화첩’은 70세가 넘은 원로대신을 위해 왕이 열어준 연희의 모습을 보여주며, 지팡이 형태의 ‘살포’는 고대로부터 이어온 권위를 상징한다. /사진 제공=문화재청

 

 

살포는 2m 정도로 길어서 논에 들어가지 않고도 도랑을 내거나 물꼬를 트고 막을 수 있었다.

어느 동네로 물을 더 댈 것인가 하는 결정권이 삽자루 하나에 달려 있었던 셈이다.

두레패의 현장 보조인 ‘공원’, 노동자인 일꾼, 흥을 돋우는 풍물꾼 등 모든 조직 체계가 좌상의 뜻에 따라 움직였다. 좌상이 살포를 지니고 두레패를 지휘한 것은 그가 농사의 물관리에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했음을 보여준다.

 

살포는 철기 시대 이후 본격적인 농경 체제를 이루기까지 왕과 국민을 가릴 것 없이 물을 다스리는 문제가 얼마나 중대한 사안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시대를 관통하는 유물이다.

고고학·역사학·민속학 등 학계의 긴밀한 협력을 토대로 심도 있는 연구가 이뤄질 분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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