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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천년이 가는 색, 심연으로 향하는 옻칠
작성일
2021-01-27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1108

천년이 가는 색, 심연으로 향하는 옻칠. 칠공 문화재수리기능자 신봉곤. 지난해 경주에서 열린 국제문화재산업전에서 오묘한 푸른 빛이 도는 그림 한 점이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독특한 옻칠의 색을 볼 수 있는 <금강전도>라는 제목의 작품으로 무려 8년에 걸쳐 완성했다. 옻칠은 재료를 구하고 색을 만드는 인고의 시간을 견뎌야 하는 작업이라 극기(克己)의 작품활동이기도 하다. 특히 이 <금강전도>는 기존의 옻과는 달리 자연에서 얻은 광염색체로 만들어 더욱 신비로운 빛을 발한다. 이 작품을 만든 이는 칠공 문화재수리기능자* 신봉곤 선생으로 손에 옹이가 박히도록 평생 옻을 향한 열정의 길을 걸어왔다. * 칠공 문화재수리기능자 옻 등의 전통 재료를 이용한 칠, 칠의 보수와 그에 따른 업무

유구한 세월 명맥을 이어온 전통 안료

옻칠은 안정된 특성을 가진 화합물로 존재할 뿐 아니라 외부 습기를 흡수하거나 방출하여 항상 일정한 수분을 머금어 유지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무로 만든 생활 용구나 금속기류 등에 옻칠을 하면 표면에 견고한 막을 형성할 뿐 아니라 광택이 나고 오랫동안 사용해도 변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옻칠은 내구성이 뛰어난 천연 도료로 인정받고 있다. 옻칠은 다른 도료와는 달리 특이한 효소 반응에 3차원 구조의 고분자를 형성하고 있다. 또한 자연 상태에서 존재하는 여러 도료 중에서 가장 안정된 특성을 가진 화합물이기도 하다.


우리 선조들에게 옻은 일상과 밀접한 도료였다. 집을 비롯하여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가구와 식기 등을 나무 소재로 만들었던 시절에 나무의 내구성을 강하게 하고 방수, 방충 효과를 내는 것이 바로 옻칠이었다. 쓰임에 필요충분조건을 가졌던 옻칠은 기능 이외에도 칠 기술이 표현하는 수려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어 과거에는 가장 예술적인 색으로 평가받으며 시대를 풍미하기도 했다.

01.한국적인 색감을 담은 옻칠 부채

고려시대에 불교와 더불어 세밀한 자개 문양과 두꺼운 옻칠이 올라간 고급품들이 유행했다면, 조선시대에는 나뭇결이 은은하게 드러나는 옅은 옻칠이 각광받았다. 자연과 조화를 추구했던 선비들이 바로 이런 은은한 아름다움이 담긴 옻칠에 열광했던 까닭이다.


상당수의 전통 안료가 아쉽게도 명맥이 끊어져 버렸지만 옻칠은 여전히 우리 일상에 가까이 있다. 예로부터 귀하게 쓰인 옻칠은 그릇이나 가구에 바르면 빛과 윤기가 나고 오래가는 효과가 있어 미적인 효용성과 기능성을 동시에 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옻칠을 해서 작품을 만드는 것은 여간 까다로운 작업이 아니다. 옻나무의 진을 채취하기가 어려운 데다, 옻칠을 여러 번 하는 것 역시 장인의 손길이 필요해서다. 이런 인고의 작업을 묵묵히 이어나가며 옻칠의 가치를 전하는 장인 신봉곤 선생의 일상은 온통 옻칠에 물들어 있다.

02.옻칠을 알리고자 전시 활동도 열심히 하는 신봉곤 선생 03.인고의 작업과정을 거치는 섬세한 옻칠 작업

최고의 색을 만들고자 감수한 인고의 시간

통영에서 공방을 운영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신봉곤 선생은 자연스럽게 옻칠의 세계에 들어섰다. 일찍부터 색과 관련된 작업을 하면서 색이라는 것이 햇빛에 쉽게 손상된다는 사실에 아쉬움을 느꼈던 신봉곤 선생은 쉽게 변하지 않는 색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다양한 시도를 하며 혼자 고민하고 색채에 대한 연구를 이어가던 신봉곤 선생은 1987년부터 나전장 김태희 선생에게 본격적으로 사사받기 시작해 3년을 꼬박 김태희 선생에게서 부지런히 배우고 익혔다. 시작할 때 이미 어느 정도 작품활동을 하는 수준에 미쳐 있었던 덕분에 신봉곤 선생의 배움은 일취월장이었다.


이후 천연 소재가 가진 에너지중성조합의 혼합에 대해서 알고 싶었던 신봉곤 선생은 송진과 관련된 제조 과정을 배웠다. 송진은 옻칠에 들어갔을 때 광을 내는 역할을 하는 재료로 이 과정에서 소나무의 에너지원을 연구하며 관련 자료를 만들 수 있었다. 이는 광염색체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져 오늘의 신봉곤 선생을 있게 했다. 신봉곤 선생은 어렵고 복잡한 과정을 거치더라도 색 자체의 중요성을 높이 사서 색을 직접 만들어서 사용한다. 뿐만 아니라 천연색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색을 찾기 위해서 색에 대한 연구를 계속 하고 있다.


“색의 재료를 주로 자연에서 재취합니다. 천연적으로 발생되는 에너지의 색이 사람의 손을 거쳐서 고유의 색을 드러냅니다. 자연에서 얻은 재료를 이용해서 만든 색은 오래 가죠. 저는 광염색체에 매료되어 만옥, 청옥, 백옥 등 광물질이 많은 색소를 사용합니다. 이러한 것을 옻과 결합해 염색을 한 후 30~35도에서 햇빛을 쬐면 여러 가지 색이 발색합니다. 제가 하는 작품에 다양한 색을 표현할 수 있는 것도 이런 재료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광염색체를 사용한 색은 수백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 이를 단청 등에 적용할 수도 있는데 문화유산 관련 작업에는 더 없이 좋은 재료라고 한다. 특히 옻칠은 몇 차례에 걸쳐 칠하는 지에 따라서도 그 빛깔이 달라져 정성이 더해질수록 오래가고 아름다운 색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게 신봉곤 선생의 설명이다. 특히 한국의 옻은 점도율이 우수해서 가치가 높다. 일본에서 사용하는 옻도 사실은 우리나라에서 가져간 나무지만 토양과 기후, 빛 에너지가 달라서 우리 옻의 우수성을 따라올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우리 옻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이 잘 알려지지 않은 것에 안타까움을 가진 신봉곤 선생은 이를 홍보하는 일에도 열정을 쏟고 있다. 이는 혼자의 힘으로는 가능하지 않기에 문화재와 관련된 작업에 종사하는 많은 이들이 힘을 모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04.고풍스러운 문양을 새긴 옻칠 도장 05.밑그림부터 옻칠을 사용하는 신봉곤 선생의 작품 06.일상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제품에 활용한 옻칠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가 동참해 만드는 한국의 색

일평생을 오직 옻칠에만 매진하며 살아온 신봉곤 선생. 그의 손에서는 검은 옻칠이 지워질 날이 없었고 힘든 작업의 훈장처럼 온통 옹이가 박혔다. 그런 신봉곤 선생이 요즘 매진하는 일은 우리나라의 에너지와 기술, 미학을 세계에 알리는 작업이다. 그동안 작업한 내용들을 바탕으로 만든 자료들을 집대성해서 책을 집필하고 있다. 무엇이든 기록하지 않으면 사라지기 마련이라 신봉곤 선생은 일생의 작업을 기록으로 남겨서 후세에 전할 수 있었으면 한다. 이를 위해 신봉곤 선생은 바쁜 시간을 쪼개 대한민국문화재예술가협회에서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여러 장르의 미술계가 호흡을 같이하면서 한국의 전통 안료를 복원하고 더 많이 사용하며 그 가치를 알리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 결과물을 책으로 만들어 천연 재료의 중요성을 깨닫고 옻칠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해 자연스럽게 옻칠 문화가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남은 시간 신봉곤 선생이 해야 할 일이라고 전한다. 수려한 아름다움을 머금고 있는 우리의 전통 빛깔, 옻칠의 우수성을 알리고자 온전히 작업에 몰두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신봉곤 선생에게서는 옻칠처럼 묵직하고 깊은 빛이 스며 나오고 있다.



글. 김영임 사진. 김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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