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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사랑

제목
협업에 기초한 생산과 소비 품앗이 VS 공유경제
작성일
2018-01-30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5093

협업에 기초한 생산과 소비 품앗이 VS 공유경제 - 사람들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사회자본(social capital)1)을 연구하고 취재하면서 몰두하는 주제 중 하나가 품앗이다. 품앗이는 두레·계와 함께 우리 민족의 역사를 관통하는 핵심 사회자본이다. 필자의 머릿속에는 지금도 품앗이라는 단어가 맴돌고 있다. 만일 품앗이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품앗이의 경제적 가치는 얼마나 될까? 품앗이는 미래에 어떤 모습일까? 질문은 끝없이 이어진다. 01. 고성농요. 품앗이로 이루어진 농업 집단의 상부상조의 생활양식이 반영되어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02. 주거공유 서비스, 차량공유 서비스 등 현대의 공유경제는 일손이 아니라 다양한 재화와 재능 및 지적재산의 공유를 의미한다. ⓒ셔터스톡 03. 『김홍도필 풍속도 화첩』 중 벼타작 ⓒ문화재청
1)사회자본(social capital)이란,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자본으로 관계자본으로도 일컬어진다. 금이나 다이아몬드와 같이 화폐로 환산이 가능한 물질자본이나 지식이나 정보에서 파생하는 인적 자본에 이어 제3의 자본으로 일컬어진다. 주로 공감·이해·동료의식 등에 기초해 돈으로는 사기 힘든 특성을 지닌다.

품앗이의 의미와 전통

‘품앗이’는 일손을 의미하는 ‘품’과 주고받으며 갚는 행위 등이 포함된 ‘앗이’가 결합된 합성어다. 혼자서 살 수 없는 인간에게 있어 관계의 바탕이고 생존의 원리이기도 하다. 품앗이에서 ‘품’과 ‘앗이’를 좀 더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보통 ‘품’이라면 사람이 제공하는 일손을 뜻한다.

하지만 품은 일손 그 이상을 의미한다. 한 개의 품을 주고받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품은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양해, 배려를 포함할 뿐 아니라 정(情)이라는 감정까지 포함하고 있다.

그럼 ‘앗이’는 어떨까? 혼자가 아니라 최소한 두 사람 이상의 관계에서 등장하는 것이 앗이다. 품앗이에서 앗이는 호혜성을 전제로 한다. 호혜성은 쌍방 간에 도움이 되는 품을 주고받되 가능한 한 저울의 추가 기울지 않음을 뜻한다. 만일 한쪽이 일방적으로 도움을 주고 다른 한쪽은 일방적으로 받게 된다면 호혜성은 깨지게 된다. 자칫 의무관계나 권력의 상하관계로 변질되는 것이다. 균형 잡힌 방식으로 도움을 주는 것이 호혜성의 기본이다.

품앗이는 품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으로 구성된다. 또한 전혀 모르는 남남 간이 아니라 서로가 잘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능하다. 품앗이가 가장 보편적으로 이뤄지는 공간이 마을이고 농사와 관련성을 갖는 것도 이 때문이다. 농사에서의 품앗이는 일손 교환이 목적이다. 그것도 동일한 작업을 할 때 최대한 등가적인 방식으로 품앗이를 하게 된다. 남성은 남성과 품앗이를 하고 여성은 여성과 품앗이를 한다. 이것은 최대한 호혜성과 등가성을 맞추기 위함이다.

 

새로운 방식으로 발전된 현대의 품앗이 전통

농사의 품앗이는 농기계의 확산과 저출산·고령화 등으로 일손을 교환하는 자체가 어려워지면서 크게 줄었다. 2017년 발표된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2016년 우리나라 농촌에서 이뤄진 품앗이 시간은 평균 13.4시간이었다. 1960~1970년 연간 100시간 이상 품앗이를 했던 것과 비교하면 큰 폭으로 감소했다.

품앗이는 도시화와 산업화 속에서 사라진 과거의 유산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익명성이 강조되는 도시나, 사람이 자본에 고용돼 일을 하는 상황에서는 분업이 품앗이보다 더욱 강조되었다. 하지만 농사의 품앗이는 크게 줄었지만 그 자체는 사라진 것이 아니다. 새로운 방식으로 변형된 것으로 이해하는 게 타당하다. 도시화·산업화 속에서 확산된 관계방식이 바로 혈연·지연·학연이다. 혈연·지연·학연의 관계방식은 마을이라는 경계를 벗어나 훨씬 규모화된 양상을 보인다. 혈연·지연·학연은 내부의 정관이나 규칙에 의해서 작동되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혈연·지연·학연의 관계방식이 발달할 수 있었던 것도 우리나라의 오랜 품앗이 전통이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품앗이는 구성원들 사이의 관계를 한층 발전시키는 데 기여를 했다. 오늘날 사회정의를 훼손하는 혈연·지연·학연을 청산을 하기 위해 많은 시도를 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 품앗이를 하면서 끼리끼리 뭉치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미덕으로 간주하기에 더욱 그렇다. 창조적 파괴가 절실해진다.

04. 김장 때가 되면 가까운 친지나 이웃 간에 김장 날이 서로 중복되지 않도록 의논하여 품앗이로 서로 돕는 김장 품앗이는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공유경제의 사례이다. ⓒ유네스코 05,06. 금산농바우끄시기는 부리면 어재마을 일대 여러 마을이 모여 행하는 마을 공동체적인 집단 의식이다. ⓒ문화재청
07. 국내 차량공유 서비스의 대명사인 ‘쏘카’ ⓒ연합콘텐츠 08. 타임뱅크’는 자신의 여유 시간을 활용해 다른 사람을 도우면 자신이 필요할 때 동일한 시간만큼 찾아 쓸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타임뱅크코리아

품앗이의 재조명

품앗이는 우리만의 전통일까. 그렇지는 않다. 품앗이는 영어로 ‘코뮤날 셰어링 오브 레이버(communal sharing of labor)’, 일본어로 ‘데마가에(手間替え)’, 중국어로 ‘비안공(工)’ 등으로 불린다. 세계 각국에서도 품앗이가 역사적으로든 현실적으로든 존재함을 알려주는 근거다. 품앗이는 홀로 살 수 없는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존재방식이다. 4~5년 전 일본에서는 『사토야마자본주의(里山資本主義)』2)라는 책이 크게 히트 치면서 대성공을 했다. 도시화·산업화를 거쳐 저출산·고령화를 우리보다 앞서 경험했던 일본에서 불가피하게 이윤추구의 상업 자본주의가 미래에는 바뀔 수밖에 없음을 간파하고 대안으로서 ‘사토야마자본주의’에 주목했던 것이다. 필자는 이에 대한 적절한 번역은 ‘산촌자본주의’가 아니라 ‘마을자본주의’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 산촌자본주의가 굴러가는 핵심원리가 바로 품앗이다. 이 책에서는 품앗이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도쿄 같은 곳에서는 ‘정부가 나쁘다’라든지 ‘반드시 어떻게든 도와주지 않으면 곤란하다’라고 말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 우리가 시골의 품앗이라고 부르는 것은 돈이 아니라 사람의 힘을 나누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이웃에게 해주고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이웃이 해준다. 나는 못 만드는 시간을 만들어준다. 나를 위해 못 만드는 시간을 만들어줬다면 나는 일을 통해 그것을 다시 갚는다.” 이 책에서는 품앗이에 대해 “아직 이 훌륭한 습관이 남아 있는 동안에 재평가해서, 21세기를 개척할 새로운 지혜로 갈고 닦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미국에서는 2000년경부터 ‘마을네트워크(villag to village network)’가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마을 네트워크는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한 후 서로에게 필요한 품을 시민들이 자율적으로 교환하는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에서는 모든 서비스가 등가적이라는 전제하에 도움을 주고받는다. 장보기·운전대행·가사·집고치기·간병 등의 다양한 서비스가 네트워크 시스템상에서 등가교환되고 있다. 품앗이의 진화된 모습이라고도 볼 수 있다. 사실 미국이라는 국가는 마을이라는 단위보다는 커뮤니티가 발달된 곳이다. 이곳에서 커뮤니티 네트워크가 아니라 마을 네트워크라고 말하는 것은 호혜성과 선의에 기초해서 선물을 주고받는 마을의 강점에 주목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타임뱅크(Timebank)’도 주목할 만하다. 1998년 영국에서 시작된 지역화폐인 ‘타임뱅크’는 자신의 여유 시간을 활용해 다른 사람을 도우면 자신이 필요할 때 동일한 시간만큼 찾아 쓸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타임뱅크’는 어떤 사람의 한 시간은 모든 사람에게도 똑같은 등가적 가치를 갖는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여기에서도 남을 돕는 방식은 매우 다양하다. 아이돌보기·청소·책읽어주기·말벗되기·시장보기·악기연주·티칭·바느질 등 다양한 서비스의 교환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 ‘타임뱅크’는 영국과 미국은 물론, 전 세계 곳곳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는 거대한 품앗이연결망이 탄생한 것을 의미한다.

마을네트워크’와 ‘타임뱅크’에서 주목해볼 수 있는 것은 품앗이의 진화이고 공유경제의 방식으로서 품앗이가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사실이다.‘마을네트워크’와 ‘타임뱅크’는 친분이 있는 사람과 마을 단위의 제한된 서비스만을 주고받는 전통적인 품앗이를 뛰어넘는다. 서로 친분이 없는 사이도 가능하고, 마을을 벗어날 뿐 아니라 훨씬 더 다양한 품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때로는 종교·이념·언어·인종 등을 뛰어넘어서 각자의 재능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것으로 무한한 확장성을 내포한 게 곧 품앗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수년 전부터 품앗이에 대한 재조명이 활발하다. H2O품앗이운동본부는 국내의 품앗이를 재조명하고 품앗이운동을 전개할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품앗이를 전 세계에 알리는 데 적극 나서고 있다. 게다가 각 지역별로 품앗이모임이 조직되고 활발한 활동이 전개되고 있다. 육아·교육·헌혈·반찬만들기 뿐 아니라 재능기부 등의 형태로 품앗이가 전개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도 공유경제가 생활 속으로 스며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품앗이’는 인류의 공유경제를 지탱하는 자랑스러운 유산임이 틀림없다. 품앗이를 재조명하고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2) 모타니 고스케와 NHK가 쓴 『사토야마자본주의(里山資本主義)』는 우리나라에서 2015년 『숲에서 자본주의를 껴안다』라는 제목으로 동아시아출판사에서 번역 출판됐다.


글. 김기홍(농민신문 차장기자, 사회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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