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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실크로드를통해 전해진 서역의 음식 - 호떡
작성일
2018-01-08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3947

실크로드를통해 전해진 서역의음식 호떡 - 밀가루 반죽에 설탕을 넣어 기름에 부친 호떡은 한국에 살던 중국 사람들이 자장면처럼 생계를 위해 만들어서 팔던 음식이다. 이 소박한 간식거리 속에는 2000년에 걸친 아시아의 긴 역사가 담겨 있다. 실크로드를 통해 서역에서 중국으로 전해져 우리에게 오기까지, 문화 교류와 전쟁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아낸 호떡은 오늘도 맛있는 진화를 멈추지 않는다. ⓒ게티이미지

일본 승려 엔닌이 당나라에서 쓴 기행문인 『입당구법순례행기』 ⓒ이뮤지엄

호떡은 오랑캐의 떡이라는 뜻

달콤하고 고소한 호떡 냄새가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계절이다. 뜨거운 철판에 반죽을 동글게 한 주먹 툭 떼어놓고 꾹꾹 눌러 납작하게 구워지는 호떡을 보노라면 군침이 절로 꿀꺽! 노릇노릇 잘 구운 호떡을 한 입 베어 물면 쫀득한 반죽 속에 황금빛 설탕 꿀이 주르르 흐르면서 엄동설한의 추위도 스르르 녹아버릴것만 같다.

겨울철 특히 즐겨 먹게 되는 호떡.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끈한 호떡은 가격이 저렴하고 맛이 좋아 어른, 아이 모두 좋아하는 간식이다. 하지만 호떡이 우리 입으로 들어오기까지 꽤나 긴 역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호떡은 우리나라 전통 길거리 음식이나 혹은 중국에서 전해진 시장 음식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유래를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 전통 음식도, 중국 고유의 음식도 아니다. 그 뿌리는 호떡이라는 이름 속에 숨어 있다. 중국에서 후삥(胡餠)이라고 부르는 호떡의 ‘호(胡)’는 오랑캐를 뜻한다. 중국인들은 서역(西域), 지금의 중앙아시아와 아랍 사람을 일컬어 호인(胡人)이라고 불렀다. 이름에서 보듯 호떡은 오랑캐인 호인들이 만들어 먹던 떡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쌀보다 밀이 더 많이 생산되는 중앙아시아 지역의 흉노족, 선비족, 돌궐족 등 오랑캐들은 쌀 대신 밀가루를 반죽해 화덕에 굽거나 기름에 튀겨 먹었다고 한다. 기원전 2세기 무렵 한나라 때 흉노족의 왕자가 처음으로 한나라에 호떡을 전했다. 후한서(後漢書) <오행지(五行志)>에는 서역의 풍속에 빠져 지낸 영제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서역의 옷을 입고 호떡을 먹었으며 서역의 음악과 춤에 심취했는데, 황실의 친척과 장안의 귀족들이 모두 그 모습을 따랐다고 한다. 호떡의 유행은 당나라 때까지도 이어졌다. 일본 승려엔닌이 당나라에서 수행할 때 쓴 기행문인 「입당구법순례행기」를 보면 입춘을 기념해 황제가 절에 특별 선물로 호떡을 보냈다는 기록이 나온다. 당나라 때 안녹산의 난으로 피난길에 오른 양귀비가 죽기 전에 먹었던 마지막 음식도 호떡이었다고 한다. 고기와 채소가 들어간 중국의 호떡은 그 옛날 군것질거리가 아니라 황제 일행이 사먹기에 전혀 손색이 없는 고급 요리였던 것으로 보인다.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으로 전해지다

호떡은 기원전 2세기 한나라 때부터 당나라를 거쳐 12~13세기 송나라 때까지 거의 1500년이 넘도록 중국에 거세게 불었던 바람, 호풍(胡風)의 상징이다. 이러한 호풍은 실크로드(Silk Road)와 관련이 깊다.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의 비단과 도자기가 서역으로 전해졌을 뿐만 아니라 인도와 중앙아시아, 아랍의 향신료와 식품, 그리고 기술과 문화가 동서양으로 퍼졌다.

실크로드를 통해 중앙아시아에서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오기까지 먼 길을 걸어온 호떡. 우리나라에 처음 전해진 시기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화교(華僑)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부터 호떡도 본격적으로 들어온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8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청나라가 조선에 육군 3,000여 명을 파견했는데 자국인의 상권을 확보하기 위해서 수십 명의 청나라 상인들도 같이 들어왔다. 이후 청나라가 망한 뒤에도 본토로 돌아가지 않고 남은 상인들이 생계를 위해 음식점을 열고 만두와 호떡같은 음식을 팔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들은 점차 우리나라 사람들 입맛에 맞게 조리법을 변형해서, 호떡안에 조청이나 꿀, 흑설탕 등을 넣어 팔았다. 인천 제물포에서 처음 만들어 팔기 시작한 한국식 호떡은 화교들이 모인 서울 명동 중국 대사관 주변이나 종로 거리 등으로 차츰 퍼졌다.

호떡-후삥(胡餠)이라고 부르는 호떡의 ‘호(胡)’는 오랑캐를 뜻한다. 이름에서 보듯 호떡은 오랑캐인 호인들이 만들어 먹던 떡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 쿨리들을 대상으로 유행

우리나라에 호떡이 더욱 널리 퍼지면서 크게 유행한 것은 1920년대다. 일제강점기 당시 한반도에 대형 건설 현장이 늘어나면서 동원할 값싼 인력이 필요했다. 이에 따라 중국인 쿨리(苦力, 짐꾼·광부·인력거꾼 등 하급 노동자를 일컫는 말)들이 한국으로 대거 건너왔다. 가난한 그들에게 호떡은 가장 팔기 좋은 음식이었다. 당시 쿨리가 많은 곳에는 어디에나 호떡집이 있었고, 값이 싸고 쉬 상하지도 않는 호떡을 한 보따리씩 싸들고 다니는 쿨리들이 많았다.

쿨리가 몰리는 항만도시나 대도시를 중심으로 차이나타운이 형성됐으며 호떡집도 늘어나, 우리 전통 음식점인 설렁탕집보다도 호떡집이 더 많았을 정도였다. 호떡집 앞에는 항상 사람들이 몰렸는데, 부산하고 소란스러운 것을 의미하는 “호떡집에 불났다”라는 표현도 여기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쿨리를 대상으로 팔리던 호떡은 쿨리들이 한국을 떠난 뒤에도 우리 입맛에 맞게 다양하게 변형되면서 우리나라의 국민 간식으로 자리 잡았다.

70~80년대에는 먹을거리가 풍부한 지금보다 호떡집이 훨씬 많았다. 그때는 가난한 고학생들이 학비를 벌기 위해 한 철 수고를 아끼지 않는 아르바이트거리이기도 했다. 개조된 드럼통과 호떡 판은 그런 낭만과 추억거리를 뒤로하고 어느새 가족을 부양하는 치열한 생계수단으로 떠올랐다.

호떡은 전쟁의 역사와 함께하기도 했다. 한국전쟁때는 부산으로 피난 온 피난민들이 호떡 안에 여러종류의 곡물씨앗을 넣어 먹기 시작했다. 그것이 유래가 되어 1980년대 후반 남포동에서 각종 견과류를 넣어 판매하면서 씨앗호떡이 탄생되었다. 남포동 거리에서 처음 시작되어 유명해진 씨앗호떡은 이후 서면, 해운대와 같은 상업지구로 점차 퍼져나가 현재는 부산을 대표하는 토속음식이 되었다. 씨앗호떡은 지름이 약 9~10cm정도 크기에 건포도, 해바라기씨, 땅콩 등의 견과류로 속을 가득 채워 달콤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부산의 씨앗호떡 외에도 군산의 중동호떡, 아산의 삼색호떡, 속초의 찹쌀씨앗호떡, 당진의 황가네호떡 등 지역별로 유명한 호떡집들이 많다.


입맛 따라 호떡도 골라 먹는 시대

지금의 기름에 구운 촉촉한 식감의 호떡 이전에는 화덕에서 구운 호떡도 있었다. 반죽을 화덕에 구우면 공갈빵과 비슷한 식감을 가지는데 공갈빵만큼 부풀지는 않고 안에 녹은 설탕은 일반 호떡과 비슷했다. 다만 화덕에서 굽는 호떡은 화덕 시설이 필요하기에 현재의 호떡을 만드는 포장마차로는 만들 수 없었다. 그런 이유로 호떡의 주류에서 밀려난 것으로 보인다.

호떡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점점 진화하고 있다. 호떡의 기본인 흰 반죽에 계피 맛 나는 흑설탕 소는 이미 구식이다. 예전엔 보통 직사각형으로 잘라놓은 두꺼운 종이를 반으로 접어서 호떡을 집어 들고 먹었다. 그러다 보니 뜨거운 설탕물이 흘러나와 입술을 데이거나, 손과 옷을 더럽힐 수 있기 때문에 요즘은 기름기와 흐르는 설탕물을 막기에 훨씬 유리한 종이컵으로 대체하는 곳이 많아졌다. 또한 흑설탕이 흘러내리는 것을 막기 위해 땅콩 등 견과류를 부숴 넣는 것이 유행이다. 이렇게 하면 설탕물이 덜 흐르면서 먹을 때 아작아작 씹히는 맛도 더 좋아진다.

녹차가루를 넣고 반죽해 색깔도 녹색인 녹차호떡, 옥수수 가루를 넣은 옥수수호떡도 생겨났다. 웰빙 바람을 타고 길거리 음식인 호떡도 건강을 강조하는 변형들이 등장한 것이다.

이외에도 피자 소스와 치즈를 넣은 피자호떡, 칼로리를 줄인 다이어트호떡, 찹쌀가루를 섞어서 바삭한 맛을 강조한 ‘찹쌀호떡’, 흑미 반죽으로 브랜드 네임까지 걸고 파는 ‘깜돌이 호떡’, 좀 더 얇고 겉껍질이 바삭한 ‘청주 졸졸호떡’, 당면과 야채를 넣은 ‘잡채호떡’, 볶음 김치를 넣은 ‘김치호떡’까지 호떡의 변신은 끝이 없다. 홈쇼핑에서도 다양한 호떡을 팔 만큼 호떡의 퓨전화는 빠르게 번져가고 있다. 한편, 호떡 체인점도 등장했다. 황가네호떡, 왕호떡 등은 독자 적 반죽 비법 등을 바탕으로 체인점을 운영 중이다. 입맛 따라 얼마든지 골라 먹을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만들기 쉬워 보여 주방에서 밀가루만 폴폴 날리다가 실패하던 일도 옛이야기가 되었다. 대기업 식품 브랜드에서 호떡 믹스를 출시하면서 집에서도 누구나 맛있는 호떡을 만들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옷깃을 여미고 종종걸음 치게 되는 겨울, 거리에서든 집에서든 호떡은 수많은 이야깃거리를 안고 달콤하게 우리를 유혹한다.

 

글‧편성철(지역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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