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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류 평화의 감수성을 키우는 남한산성과 인도 라자스탄주의 구릉 요새
작성일
2019-12-27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1389

인류 평화의 감수성을 키우는 남한산성과 인도 라자스탄주의 구릉 요새 인도 라자스탄주의 구릉 요새와 남한산성은 인류의 전쟁 역사를 담고 있는 성곽유산으로서 각 2013년과 2014년에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인도 라자스탄주의 구릉 요새는 8세기부터 18세기까지 번성했던 라지푸트(Rajput) 번왕국(藩王國)의 문화를 증언하는 유산으로 천연지형을 활용한 탁월한 군사 요새라는 가치를 인정받았고, 남한산성은 동아시아 무기 발달과 축성술의 변화가 담긴 군사 문화유산으로 조선의 주권 수호를 위해 축조된 유일한 산성 도시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비슷한 듯 서로 다른 이들 세계유산이 담고 있는 스토리를 따라가 보자


광대하고 메마른 타르 사막에 인도의 어떤 지역보다 화려하고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는 거대한 요새들이 있다. ‘라자스탄 구릉 요새(Hill Forts of Rajasthan)’로 불리는 치토르가르(Chittorgarh), 쿰발가르(Kumbhalgarh), 사와이마도푸르(Sawai Madhopur), 잘라와르(Jhalawar), 자이푸르(Jaipur), 자이살메르(Jaisalmer) 등 라자스탄(Rajasthan) 주에 있는 여섯 곳의 구릉 요새들이다.


서울의 동쪽 광주에도 해발 490m의 산세와 광주산맥 주맥의 아름다운 굴곡을 따라 병풍처럼 둘러싼 남한산성이 있다. 성벽에서 내려다보면 멀리 서울 시내와 성남시가 훤히 눈에 들어온다.


1. 인도 라자스탄주 메헤랑가르성 Ⓒ박제광 2. 남한산성 동문 좌익문 Ⓒ박제광


조선 왕실의 보장처, 남한산성

한창 나당전쟁이 벌어지던 신라 문무왕 12년(672)에 당나라에 맞서기 위해 남한산 주위에 둘레 4,360보의 성곽을 처음 쌓았다. 당시엔 주장성(晝長城)이라고 불렀다. 그 후 조선 시대 임진왜란이 한창이던 선조 28년(1595)에 성을 쌓았고, 광해군 13년(1621)에 다시 증축했다. 이후 인조 2년(1624)에 인조에 의해 다시 개축했다. 병자호란 이후 숙종 12년(1686) 봉암외성과 숙종 19년(1693) 한봉외성, 그리고 숙종 45년(1719) 옹성, 영조 28년(752) 신남성 돈대 등을 축조하여 성의 방어력을 높였다.


남한산성은 험준한 지형에 성벽을 쌓아 많은 적이라도 쉽게 공략할 수 없는 군사 요새이다. 산봉우리와 계곡을 가로지르고 능선을 따라 쌓은 곡선의 성벽은 공격해오는 적에 대한 방어가 용이한 구조였다. 또 7세기부터 19세기에 이르는 우리나라의 성곽 축성기술의 발달과 전쟁에 따른 무기 체제의 변화가 잘 반영되었다. 이후 전쟁을 겪으면서 중국과 일본으로부터 전해온 성곽 제도의 영향과 신식 화기 도입에 따라 축성술이 변화되어 군사 방어력이 강화되었다. 원성 외에 외곽 방어시설로 외성과 돈대가 설치되고, 옹성, 포루, 암문, 여장 등을 설치하는 등 최적의 방어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지속해서 변화했다.



인도 무굴제국도 넘보지 못한 타르 사막 속에 세워진 요새

인도에는 약 250여 개의 요새와 성곽이 존재한다. 그중 100여 개 이상이 인도 서북부 라자스탄 주에 있다. 파키스탄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인도 라자스탄 주는 인도에서 가장 이국적이고 신비한 모습을 간직한 땅이다. 광활하고 척박한 사막 위에 우뚝 서 있는 거대한 성은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이곳은 주변 국가로 통하는 군사 요충지이기에 치열한 전투가 빈번히 벌어졌다. 라자스탄은 라지푸트(Rajput) 전사 집단에 의해 지배되었다. ‘라자스탄’도 ‘라지푸트들의 땅’이라는 의미이다. 이들 라지푸트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성을 쌓고 작은 왕국을 세워 군림했다. 라지푸트(Rajput) 번왕국(藩王國)이다. 이들은 전사로서 매우 용맹해서 후에 인도 전역을 통일한 무굴제국도 이들을 어찌하지 못했다고 한다.


구릉 요새의 대표적인 성곽 치토르가르 성(Chittorgarh Fort)은 시소디아(Sisodia) 왕가의 옛 수도였다. 8~16세기 메와르 왕조 라지푸트가 구릉에 쌓은 성곽도시이다. 해발 고도 1,100m의 쿰발가르 성(Kumbhalgarh Fort)도 15세기 라나 쿰바(1433~68년)가 건립된 성곽도시로, 길이가 20㎞에 달해 인도에서 가장 길고 세계에서 세 번째로 길다고 한다. 자이살메르 성(Jaisalmer Fort)은 1156년 라지푸트의 자이살이 건립했고, 마하라자의 궁전(Maharaja’s palace)과 7개의 자이나 사원이 있다. 메헤랑가르 성(Meherangarh Fort)은 15세기 중엽에 착공하여 19세기 초에 완성했다. 125m의 높은 언덕에 웅장하게 들어선 이 성은 한눈에 보기에도 인근 왕국들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란탐보르 성(Ranthambore Fort)은 산림 한가운데 위치하여 숲을 이용한 구릉 요새이다. 성안의 함미르(Hammir) 궁전 유적은 인도에서 현존하는 최고의 궁전으로 손꼽힌다.


군사요충지에 천연 지형을 활용해 쌓은 성곽 도시




비슷하나 또 다른 세계문화유산

남한산성과 인도의 구릉 요새는 모두 적의 공격을 막기 위해 자연지형을 활용해 쌓은 군사 요새이다. 또한 적침에 맞서 싸운 전쟁의 아픈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유사하다. 남한산성은 383년 전 조선이 청나라의 침략에 맞서 47일간 항전했던 전쟁터로서 전쟁의 아픔을 기억하고 있는 장소이다. 이후 조선의 왕들은 남한산성에 자주 행차하고, 성곽을 정비함으로써 자주의식을 고취하고자 했다. 산성 내 수어장대의 현판 ‘무망루(無忘樓)’, 온조왕 위패와 이서 장군을 모신 숭렬전, 삼학사와 김상헌의 위패를 모신 현절사 등 관련된 유적들이 있는데, 다시는 치욕을 당하지 않겠다는 조선의 자주정신과 충절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인도의 구릉 요새도 비슷한 아픔이 있다. 쿰발가르 요새는 수없이 많은 전쟁을 이곳에서 치렀으며, 함락당한 적도 있었다. 치토르가르 성에도 전쟁까지 불러온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비운의 왕비 파드미니(Padmini)의 슬픈 사연이 담겨 있기도 하다. 1303년 델리의 술탄 알라우딘 할지는 파드미니 왕비의 미모에 반해 치토르가르 성을 공격했다. 성이 점령당할 위기에 처하자 파드미니와 라지푸트 부인들은 화려한 옷으로 갈아입고 불타오르는 장작더미 속으로 뛰어들기 시작했는데 그 수가 무려 16,000여 명에 이르렀다. 이것이 바로 인도의 유명한 죽음 의식인 조하르(Johar, 치욕보다 명예로운 죽음)이다. 또 메헤랑가르성에는 자야폴(Jayapol)이라 불리는 정문이 있다. 1806년 마하라자 만싱(Maharaja Man Singh)이 자이푸르와 비카네르 왕국의 공격을 막아 승리한 것을 기념해 세운 승전문이다. 이처럼 인도의 구릉 요새들은 대규모의 기념비적 성격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두 세계유산은 또 다른 특징이 지닌다. 남한산성은 유사시 왕실이 피난하는 임시수도의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종묘·사직과 행궁을 갖춘 성곽도시이자 방어를 위한 군사 요새였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유사시 국가 및 지역방위를 위해 사용된 피난성의 특징을 지닌다. 그렇기에 남한산성은 성곽의 축성과 관리운영, 방어체제에서도 독특한 특성을 보이고 있다. 이후 병자호란의 경험을 토대로 국가 방어전략이 변화했다. 남한산성은 산성의 군사적 기능과 읍성의 행정적 기능을 결합하여 4,000명 이상의 백성들이 삶을 영유하는 성곽도시로 변했다.

반면 인도의 구릉 요새는 태생부터 왕족인 토후들이 거주했던 곳으로, 수도 역할을 위해 건립된 성곽도시이다. 성곽 안에는 왕족과 주민·병사들의 거주 공간을 비롯한 도시 촌락이 발달했고, 사원이나 종교 건축물 등이 자리 잡았다. 성벽은 왕궁과 도심지, 시장, 역사 깊은 사원 등의 건물들을 에워싸고 있다.


인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도 한다. 남한산성이나 인도의 구릉 요새 모두 천연 요새로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였기에 오랫동안 전쟁에서 승리의 기쁨과 패배의 아픔을 함께 간직하고 있고, 국가·지역주민과 함께 발전해 온 소중한 군사유산이다.


“전쟁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생기는 것이므로 평화의 방벽을 세워야 할 곳도 인간의 마음속이다.”라는 유네스코 헌장 문구처럼 이들 세계유산이 인류의 갈등과 반목을 해소하고 평화를 지켜내려는 의지와 평화의 감수성을 키우고 향유하는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


글. 박제광(건국대학교박물관 학예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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