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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왕세자, 학문의 길로 나아가다
작성일
2021-02-26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1273

왕세자, 학문의 길로 나아가다 ‘군사(君師)’는 고대 유교 국가에서 임금을 부르는 여러 이름 가운데 하나였다. ‘임금은 정치 지도자인 동시에 사상과 학문의 지도자여야 한다’는 뜻에서 붙은 이름이 군사였다. 이후 유교가 더욱 체계화되어 국가 이데올로기로서 기능하게 되자 임금은 사상·학문의 지도자보다는 유교의 보호자이자 후원자 역할을 떠맡게 되었다. 유교의 보호자로서 임금은 유교적 교양을 갖춘 사람이어야만 했다. 유교 국가였던 조선 왕조의 왕자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세자에 책봉되면 8~14세에 성균관에 입학하면서 공자를 모신 성균관(成均館)의 대성전(大成殿)에 참배하고 스승을 맞이하는 예식을 치렀다. 이는 장차 임금 자리에 오를 세자가 유교의 보호자가 되겠다는 다짐의 상징적 예절이기도 하였다.

세자의 스승과 공부의 벗

조선 왕조 27명의 임금 가운데 세자 자리를 거치지 않은 임금은 태조, 세조, 성종, 중종, 명종, 선조, 인조, 헌종, 철종, 고종 등 10명이었다. 나머지 17명은 세자 시절을 거쳤다. 이 가운데 성인이 된 후 세자가 된 정종, 태종, 세종, 효종, 영조 등 5명을 제외한 12명(문종, 단종, 예종, 연산군, 인종, 광해군, 현종, 숙종, 경종, 정조, 순조, 순종)은 세자로서 교육을 받았다. 세자에 대한 실제 교육은 입학 훨씬 이전부터 이루어졌다.


임금의 큰아들이 태어나 ‘원자(元子)’라는 칭호를 받게 되면 보양청(輔養廳)이 설치되었다. 이후 원자의 나이가 3~4세가 되어 글을 배울 수 있게 되면, 보양청을 강학청(講學廳)으로 바꾸고 글을 가르쳤다. 원자가 세자로 책봉된 후 비로소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 별칭: 춘방(春坊))과 세자익위사(世子翊衛司, 별칭: 계방(桂坊))가 설치되었다. 춘방은 세자의 강학, 즉 교육을 담당하고 계방은 그 호위를 맡았다.


춘방과 계방의 관료 구성은 〈표 1〉에서 보듯 형식과 내용 면에서 많은 점이 고려된 것이었다. 첫째, 최고위 관직자인 영의정이 세자의 사(師), 좌의정이나 우의정 가운데 한 사람이 세자의 부(傅)가 됨으로써 세자 교육의 정치적·형식적 위상을 높였다. 둘째, 왕실이나 관료 집단에 대해 사림(士林)의 사상적·학문적 우위가 뚜렷해진 조선 후기의 인조 24년(1646)에 찬선, 진선, 자의 세 관직을 신설하고 이름난 재야의 학자 즉, ‘산림(山林)’을 초빙·임명하여 세자의 교육에 참여하게 하였다.


세자 교육의 상징적·학문적 위상을 높이려는 의도였다. 셋째, 춘방의 관료 대부분은 다른 관직을 겸하고 있었지만, 찬선, 보덕, 필선, 진선, 문학, 사서, 설서, 자의 등 7명은 오직 세자 교육만을 담당했다. 이들은 세자와 함께 공부하며 때론 스승이 되고, 때론 벗이 되어 세자 교육의 실질적 효과를 높였다. 넷째, 계방의 관원은 주로 재상급 관료와 공신의 자제 가운데에서 선발하여 세자의 인맥과 학문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되게 하였다. 숙종 이후에는 계방 관원도 세자의 공부에 참여함으로써 역할이 더 강화되었다. 세자 교육에는 최고 관직자, 최고의 산림 학자, 재능 있는 관료, 재상과 공신의 자제 등이 참여했다. 이렇듯 세자 교육은 명실상부 최고의 교육이 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었다.

01.왕세자가 성균관에 입학하는 의례를 정리한 왕세자입학도 ©국립고궁박물관 02.왕세자입학도에 정리된 의례 내용 ©국립고궁박물관

서연(書筵), 무엇을 어떻게 배웠나?

세자가 춘방, 계방의 관원들과 함께하는 공부를 서연이라했다. 세자의 스승 대우를 받는 좌우부빈객 이상이 참여하는 법강(法講)에서는 유교 경전, 소대(召對)에서는 역사를 주로 공부하였다. 별소대(別召對)와 야대(夜對)는 세자가 필요할 때마다 춘방·계방의 관원을 불러 모아 여는 서연이었다. 또 세자가 11세가 넘으면 가끔(원칙으로는 한 달에 두 차례) 춘방·계방의 모든 관원과 고위 관료들이 모이고 때론 임금도 참석하여 세자의 공부를 점검하였는데, 이를 회강(會講)이라 하였다.


학업의 대체적인 순서는 정해져 있었다. 조선 후기 임금 가운데 모범생이었던 정조(正祖)의 경우는 〈표 2〉와 같은 순서로 공부했다. 공부 방법은 이러했다. 먼저 세자가 전날 배운 부분을 읽고 뜻을 해석한다. 그 다음, 새로 배울 부분을 춘방 관원이 먼저 읽고 세자가 따라 읽는다. 이어 춘방 관원이 뜻을 해석해 주면 세자가 따라 해석한 뒤, 다시 세자 혼자서 읽고 뜻을 해석한다. 이후 서연 참석자들이 돌아가며 그날 배운 부분의 뜻과 교훈, 자기 생각 등을 말한다.


세자는 이에 대해 자신이 느낀 점이나 생각을 질의·응답하며 토론한다. 공식 기록으로만 보면 매우 딱딱하고 엄격한 것 같지만, 홍대용(洪大容)의 『계방일기』를 보면 더러 잡담과 세상 이야기를 화제로 삼기도 하였다. 이런 과정을 통해 세자는 작게는 자신의 학문을 성취하고 나아가 유교적 성군(聖君)이 될 수 있는 자질을 키울 수 있었다.

〈표 1〉 세자시강원, 세자익위사 직제(『속대전』 기준) 세자시강원(춘방) 세자익위사(계방) 품계 정1품  관직 세자사(世子師) - 영의정 인원 1 관직 세자부(世子傅) - 좌우의정 중 1인 인원 1 품계 종1품 관직 세자이사(世子貳師) - 좌우찬성 중 1인 인원 1 품계 정2품 관직 좌우빈객(左右賓客) 인원 좌,우 각1 품계 종2품 관직 좌우부빈객(左右副賓客) 인원 좌,우 각1 품계 정3품 관직 찬선(贊善) 인원 1 품계 종3품 관직 보덕(輔德), 겸보덕(兼輔德)* 인원 각1 품계 정4품 관직 필선(弼善), 겸필선(兼弼善), 진선(進善) 인원 각1 품계 종5품 없음 정5품 관직 문학(文學), 겸문학(兼文學) 인원 각1 좌우익위(左右翊衛) 좌,우 인원 각1 정6품 관직 사서(司書), 겸사서(兼司書) 각1 좌우익찬(左右翼贊) 좌,우 인원 각1 품계 종6품 세자시강원(춘방) 없음 관직 좌우위수(左右衛率) 좌,우 인원 각1 품계 정7품 관직 설서(說書), 겸설서(兼說書), 자의(諮議) 인원 각1 좌우부수(左右副率) 좌,우 인원 각1 품계 정8품 세자시강원(춘방) 없음 관직 좌우시직(左右侍直) 좌,우 인원 각1 품계 정9품 세자시강원(춘방) 없음 관직 좌우세마(左右洗馬) 좌,우 인원 각1 합계 세자시강원(춘방)인원 20 세자익위사(계방) 인원 14 * 보덕과 겸보덕은 영조 22년(1746) 정3품 당상관으로 승격됨.〈표 2〉 정조의 강학 순서 연도 1752 나이 1 서연 9월 22일생 연도 1755 나이 4 서연 효경소학초해 연도 1756~1757 나이 5~6 서연 동몽선습(童蒙先習) 연도 1758 나이 7 서연 소학(小學) 연도 1759 나이 8 서연 세손 책봉, 소학(小學) 연도 1760 나이 9 서연 대학(大學), 논어(論語) 연도 1761 나이 10 서연 관례, 입학, 맹자(孟子) 소대 십팔사략(十八史略) 연도 1762 나이 11 서연 가례, 맹자(孟子) 소대 십팔사략(十八史略) 연도 1763 나이 12 서연 중용(中庸) 소대 십팔사략(十八史略) 연도 1764 나이 13 서연 서경(書經) 소대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 연도 1765 나이 14 서연 시경(詩經) 소대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 연도 1766 나이 15 서연 시경(詩經) 소대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 연도 1767 나이 16 서연 시경(詩經) 소대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 연도 1768 나이 17 서연 맹자 소대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 별소대 주문초선 연도 1769 나이 18 서연 대학, 논어 소대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 별소대 성학집요, 주자서절요 연도 1770 나이 19 서연 중용, 서경, 시경 소대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 연도 1771 나이 20 서연 대학연의 소대 당감(唐鑑) 별소대 송감(宋鑑) 연도 1772 나이 21 서연 심경(心經), 근사록(近思錄) 소대 당감(唐鑑) 연도 1773 나이 22 서연 예기(禮記), 어제조훈 소대 속강목 연도 1774 나이 23 서연 성학집요(聖學輯要) 소대 주자서절요 연도 1775 나이 24 서연 어제자성편, 어제경세문답 별소대 황명통기(皇明通紀)


글. 김도환(前 한양대 연구교수,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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