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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가 조선의 패션 리더다” 신윤복의 그림으로 보는 조선 패션
작성일
2021-08-31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2058

“내가 조선의 패션 리더다” 신윤복의 그림으로 보는 조선 패션 몸에 꼭 맞는 짧은 저고리와 푸른색의 풍성한 치마. 치마 밖으로 살짝 내민, 날렵한 모양의 외씨버선을 신은 한쪽 발. 보는 이들의 숨을 멈추게 할 만큼 고혹적인 매력이 넘치는 그녀의 패션. 바로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풍속화가 혜원 신윤복이 그린 〈미인도〉의 주인공이다. 01.보물 〈미인도〉, 19세기 초반, 비단에 채색, 114.2cm×45.7cm ©간송미술관 02.국보 《혜원전신첩》 중 〈야금모행〉, 19세기 초반, 종이에 채색, 각 28.2cm×35.6cm ©간송미술관 03.국보 《혜원전신첩》 중 〈주사거배〉, 19세기 초반, 종이에 채색, 각 28.2cm×35.6cm ©간송미술관

하후상박, 그 시절의 트렌드

흑단 같은 머리카락을 곱게 빗어 틀어 올린 풍성한 얹은머리와 계란형의 갸름한 얼굴, 반듯하고 환한 이마, 초승달 같은 눈썹에 쌍꺼풀이 없는 새초롬한 눈매와 육쪽마늘 같은 예쁘장한 코 그리고 앵두를 닮은 살짝 다문 입술은 여인의 미모가 얼마나 완벽한지를 알려준다. 혜원이 그린 이 여인은 과연 누구일까? 정확한 정보가 알려진 것은 없지만 신윤복의 〈미인도〉를 연구한 학자 대부분은 그녀의 신분이 기생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녀가 입고 있는 저고리 천이 자주색으로 깃과 고름, 곁마기의 색을 달리하고 옥색의 소매 끝동을 달아 멋을 부렸다. 그런데 얼핏 보아도 불편할 정도로 상체에 꽉 끼고 기장은 매우 짧다.


이와는 달리 푸른색의 치마는 속옷을 여러 겹 겹쳐 입어 매우 풍성하게 부풀어 있다. 실용적이기보다는 멋 내기용 복장인 것이다. 이런 차림새는 ‘하후상박(下厚上薄, 치마는 풍성하고 저고리는 꽉 조이게 입는다)’이라 하여 조선 후기에 크게 유행했던 패션 경향이다. 당시에도 여인들의 옷차림은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덕무는 여인들의 복식에 대해 아래와 같은 비판적인 글을 남겼다.


옷깃을 좁게 깎은 적삼이나 폭을 팽팽하게 붙인 치마는 의복이 요사스럽다. (···)
새로 생긴 옷을 시험 삼아 입어 보았더니, 소매에 팔을 꿰기가 몹시 어려웠고, 한 번 팔을 구부리면 솔기가 터졌으며, 심한 경우에는 간신히 입고 나서 조금 있으면 팔에 혈기가 통하지 않아 살이 부풀어 벗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소매를 째고 벗기까지 하였으니, 어찌 그리도 요망스러운 옷일까! 대저 복장에 있어서 유행이라고 부르는 것은 모두 창기(娼妓)들의 아양 떠는 자태에서 생긴 것인데 세속 남자들은 그 자태에 매혹되어 그 요사스러움을 깨닫지 못하고 자기의 처첩에 권하여 그것을 본받게 함으로써 서로 전하여 익히게 한다.
아, 시례(詩禮)가 닦이지 않아 규중 부인이 기생의 복장을 하도다! (···)
- 이덕무, 「사소절」, 『청장관전서』


이 글의 내용을 보면 기녀들의 패션 스타일이 여염집 규수는 물론이고 사대부가의 여성 사이에서도 크게 유행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사회 현상은 이전 시대에는 보기 어려운 문화의 역전 현상이다. 위에서 아래, 즉 사대부가의 규방에서 천민인 기녀들의 공간으로 전달되던 여성문화가 이제는 아래에서 위로 전해지게 되었고, 그 중심에는 장안에서 이름을 날리던 기생들이 있었다. 그들이 조선의 유행을 주도하는 패션 리더이자 ‘셀럽’의 위치에 오른 것이다.


사회 변화를 읽어내고 해석하는 패셔니스트들

신윤복이 그린 풍속화에는 조선의 여성 패션계를 이끌던 기생 외에도 유행을 선도하던 조선 남성들의 다양한 패션도 잘 묘사되어 있다. 그의 그림에는 사대부 양반부터 하급관리까지 다양한 신분의 남성들이 등장하는데, 그중 최고의 멋쟁이는 별감이다. 별감은 궁궐 내에서 왕과 왕족 가까이 있으면서 잡무를 담당하던 하급 관직이다. 이들은 최고권력자 주변에서 일하는 자신의 지위를 악용해 양반 못지않은 권세를 누렸으며, 사치를 부리고 조선 후기 한양의 유흥문화를 주도했다.


별감이 애용했던 패션 아이템은 혜원의 그림 속에 잘 묘사되어 있다. 《혜원전신첩》에 실린 〈야금모행(夜禁冒行)〉, 〈기방난투(妓房亂鬪)〉, 〈주사거배(酒肆擧盃)〉에는 붉은색 겉옷을 입고 노란색 초립을 쓴 인물이 나오는데 그가 바로 별감이다. 별감은 붉은색 겉옷 안에 푸른색 비단옷과 주황빛 배자를 겹쳐 입었는데, 대담한 보색 대비의 패션도 무난히 소화하고 있다. 특히 붉은색 홍포(紅袍)는 별감만이 입을 수 있었던 옷으로 화려하고 당당한 모습 덕에 어디에 있든지 그들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알려주었다. 별감은 소위 ‘기부(妓夫)’가 되어 기생의 뒷배를 봐주고 기생집을 관리, 운영하던 실세였으며 조선 후기 한양 유흥가의 주역이었다.


시대를 뛰어넘어 꾸준히 사랑받는 명작에는 당대를 관통했던 사회의 변화를 읽어내고 해석하는 작가만의 독창적인 시선이 담겨 있다. 혜원 신윤복은 조선시대 어느 화가보다 색과 선을 사용하는 데 탁월했다. 그가 선택한 선명한 천연색과 속도감 강한 날렵한 선묘(線描) 덕에 자칫하면 조잡하고 유치하게 표현될 수도 있는 다양한 욕망의 민낯도 해학과 풍자라는 묘수로 포장되어 세련미가 넘치게 되었다. 한양 멋쟁이의 삶과 욕망을 상징과 기호로 담아낸 혜원이 없었다면 알지 못했을 조선 뒷골목의 생생한 풍경을 마주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글, 자료. 백남주(미술사학자, 독립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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