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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설명

제목
6ㆍ25 전쟁과 민주화 문화유산 등 7건 국가등록문화재 등록
등록일
2020-08-12
주관부서
근대문화재과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1810

- 6ㆍ25 전쟁 70주년 / 4ㆍ19 혁명 60주년 계기 관련 문화재 등록 -


- 알려지지 않은 항일의병 유물, 대한제국기 군복 등 12건은 문화재 등록 예고 -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은「영주 부석교회 구 본당」과 올해 주요 추진 과제인「6·25 전쟁 70주년 및 4·19 혁명 60주년 계기, 관련 문화유산 집중 발굴·등록」과 관련하여 그간 조사하고 검토해온「6·25 전쟁 군사 기록물(공군 전투비행단)」, 「보병과 더불어 악보」, 「근대기 제작 진전 봉안 어진」, 「연세대학교 4월혁명연구반 4·19 혁명 참여자 조사서」, 「연세대학교 4월혁명연구반 4·19 혁명 계엄 포고문」, 「4·19 혁명 부상자 명단 (고려대학교 4·18 학생 의거)」 등 총 7건을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한다. 


  또한, 「이긍연 을미의병 일기」, 「대한제국애국가」, 「동해 북평성당」 3건과 대한제국기 군복「전(傳) 대원수 상복」, 「참장 예복」, 「보병 부령 상복」, 「보병 정위 예복」, 「보병 부위 예복」, 「보병 부위 예복 및 상복(황석)」, 「기병 정위 예복 및 상복」, 「헌병 부위 예복 및 상복(홍철유)」, 「군위 부위 예복」9건 등 총 12건을 등록예고한다.


  국가등록문화재 제789호 「영주 부석교회 구 본당」은 건립 당시의 건축적 상황들을 잘 이해할 수 있으며, 특히, 흙벽돌을 이용하여 축조한 벽체와 목조로 된 첨탑 등이 비교적 원형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희소성과 진정성 면에서 국가등록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국가등록문화재 제790호 「6·25전쟁 군사 기록물(공군 전투비행단)」은 전쟁 당시 공군 제10전투비행단과 관련된 유물로 제10전투비행단 종합보고서, 비행기록수첩·출격 표시 작전지도, 10비 군사일지, 조종사 출격일지, 김영환 장군 명패 총 6건 8점이다.


  ① 제10전투비행단 종합보고서는 비행단의 작전·정보·교육·기상 등 작전 요소를 망라하여 도면과 문서로 정리한 유물로, 국군과 북한군의 상황을 알 수 있는 자료다. ② 비행기록 수첩·출격 표시 작전지도는 참전 조종사(임상섭)가 1952년부터 1953년까지 작전을 수행한 지역을 수첩에 기록하고 지도에 표시한 유물로, 당시 연습·출격기록을 알 수 있는 자료다. ③ 10비 군사일지는 1951년부터 1955년까지 2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부대의 주요 활동을 일자순으로 기록한 것으로, 당시 비행단의 활동상황을 살펴볼 수 있다. ④ 조종사 출격일지는 참전 조종사(이배선)가 1952년부터 1953년까지의 출격일시·목표지점·임무·작전지도ㆍ마음가짐 등을 일자별로 상세히 기록한 것으로, 전투조종사의 활약을 살펴볼 수 있다. ⑤ 김영환 장군 명패는 초대 제10전투비행전대장 시기(1951.8.~11.10.)에 조종사 일동이 제작한 것이다. 김영환 장군은 비행전대장 재직 당시 무장공비가 잠입한 합천 해인사 폭격명령을 거부해 문화유산을 지켜낸 공적으로도 알려져 있다. 해당 유물들은 6·25전쟁 시 공군의 작전수행 상황을 알 수 있는 자료로서 희귀하며, 역사·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국가등록문화재 제791호 「보병과 더불어 악보」는 6·25 전쟁 당시 마산으로 피난했던 작곡가 이상근(1922∼2000)이 종군작가로 참전한 유치환의 전쟁 서정시집 ‘보병과 더불어’를 토대로 6·25전쟁 기간 중(1952.8.3.~8.21) 관현악과 합창이 함께하는 칸타타 형식으로 작곡한 친필악보다. 전쟁을 직접 경험하고 그 경험을 작품으로 완성하여 전쟁 당시를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어 역사적인 가치를 지닌다.


  국가등록문화재 제792호 「근대기 제작 진전 봉안 어진」은 당시 가장 중요하게 여겨온 왕실 회화로서 조선왕조의 정통성과 권위를 표상하는 것으로, 태조어진(홍룡포본)·원종어진·순조어진·순종어진의 총 4건 4점이다. 6·25 전쟁이 일어나자 부산으로 소개(疏開)하였으며 전쟁 직후 보관창고 화재로 부분적으로 훼손되었으나 용안의 일부와 곤룡포·신발·용상·채전 등의 색채와 문양 등이 잘 보존되어 역사·예술·학술면에서 가치가 크다.
  * 소개(疏開): 적의 공습이나 화재 따위에 대비해 분산시키다
  * 채전(彩牋): 무늬가 있는 바닥의 카펫


  ① 태조어진(홍룡포본)은 함경남도 영흥의 준원전(濬源殿)에 봉안되어 있던 태조어진을 1900년도에 이모(移模)한 것으로, 조선 초기 중년기 태조의 모습이라서 희소하다. ② 원종어진은 인조의 아버지인 원종(추존왕)의 어진으로서 왕자군(王子君)만 사용할 수 있었던 백택(白澤)이 달린 흑단령(黑團領)을 입은 모습으로 17세기 초반의 공신상의 형식을 취하고 있어 특이하다. ③ 순조어진은 절반 이상이 불에 타 얼굴을 확인할 수 없으나, 표제가 남아있어 순조어진임을 알 수 있다. ④ 순종어진은 일제강점기에 제작되었지만 조선왕조의 제작 전통에 따라 진전 봉안용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조선왕조의 마지막 어진 제작 양상을 보여주고 있는 귀한 자료이다.
  * 이모(移模): (사람이) 글씨나 그림을 본떠 그림
  * 백택(白澤): 왕자나 군의 관복(흉배)에 새긴 상상의 동물문양
  * 흑단령(黑團領): 조선 시대 벼슬아치가 입던 깃이 둥근 검은색 옷
  * 진전(眞殿): 역대 임금과 왕비 초상화를 모시던 건물
  * 봉안(奉安): 받들어 모셔 둠


  국가등록문화재 제793-1호 「연세대학교 4월혁명연구반 4·19혁명 참여자 조사서」는 4·19 혁명 당시,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4학년 학생들 주도로 ‘4월혁명연구반’이라는 조사반을 구성하여 작성한 구술기록 자료다. 대상별 총 9건으로, ① 데모사항조사서(서울지방), ② 데모사항조사서(대구, 부산, 마산) ③ 부상자 실태조사서(서울지방), ④ 부상자 실태조사서(대구, 부산, 마산), ⑤ 연행자 조사서(서울지방), ⑥ 사후수습사항 조사서(서울지방), ⑦ 연행자와 사후수습사항 조사서(대구, 부산, 마산), ⑧ 4·19 데모 목격자와 인근주민의 조사서(서울지방), ⑨ 교수데모실태조사서(서울지방)로 구성되어 있다.


  주요 설문항목은 정치에 대한 관심, 그 당시의 심정 등을 묻고 있어 조사 대상별 정치의식, 사회의식 등이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드러나 있다. 특히, ‘데모사항조사서’에는 참여 동기‧경과‧시간‧장소‧해산 시까지의 충돌(경찰과 충돌, 깡패, 부상, 살상, 공포) 등이 매우 자세히 기록되어 있으며, 서울뿐만 아니라 대구 2·28, 마산 3·15 시위 참여자를 대상으로 구술 조사한 자료로서 현재까지 유일하다. 해당 유물은 4·19 혁명 당대 시위에 참여한 학생들과 시민들을 찾아다니며 직접 질문하여 작성한 설문지로 현장의 실증적인 기록물이다.


  국가등록문화재 제793-2호 「연세대학교 4월혁명연구반 4·19 혁명 계엄 포고문」은 연세대학교 ‘4월혁명연구반’에서 관련기관에 의뢰하여 수집한 자료로 당시 비상계엄포고문 12종, 훈시문 1종, 공고문 3종, 담화문 2종 등 총 19종이다.
4월 19일 오후 5시 계엄선포문을 시작으로 집회 해산, 등교 중지, 통행금지, 언론‧출판 통제 등의 포고문과 공고문이 연이어 발표되다가 4월 26일 대통령 사임 발표 이후 점차 통제가 와해된 내용을 일자 및 시간 순으로 알 수 있다. 4월 혁명기 비상계엄 하의 사회상과 국가의 대국민 관리‧통제 내용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료로 가치가 있다.


  국가등록문화재 제794호 「4·19 혁명 부상자 명단(고려대학교 4ㆍ18 학생 의거)」은 4·19 혁명 하루 전에 일어난 ‘4·18 고려대 데모’를 중심으로 시위에 참가한 고려대학교 학생 부상자 명단 초안 2종과 이를 정리한 정서본 1종이다. 초안(1)은 부상자 명단이 학과‧학년‧번호‧이름‧장소‧맞은 정도 항목에 따라 작성한 것으로 필체와 필기도구가 다양하다. 초안(2)는 1면 위에 ‘4월 18일 부상자 명단’이라고 쓰여 있는데, 같은 필체로 보아 한 사람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정서본은 ‘4·19 의거 시 부상한 학생’이라는 제목으로 초안 내용을 수정 또는 보완해 재정리한 것이다. 해당 유물은 4월 18일 고려대 학생들이 국회의사당까지 시위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정치깡패의 습격을 받은 정황(부상 장소, 맞은 도구, 맞은 정도 등)을 자세히 알 수 있어 ‘4·19 혁명’을 이해하는 데 역사적으로 가치가 크다. 


  문화재청은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된 문화재를 해당 지방자치단체, 소유자(관리자) 등과 협력하여 체계적으로 보존‧관리해 나갈 것이다.


  한편 위에 등록되는 문화재들과 별도로, 이번에 등록이 예고되는「이긍연 을미의병 일기」는 안동의병 중 한사람이었던 이긍연(李兢淵, 1847∼1925)이 을미사변 이후인 1895년 12월 1일부터 1896년 10월 11일까지 직접 보고들은 내용을 사실적으로 기록한 것으로, 의진의 결성부터 투쟁활동, 해산까지의 과정과 군사력, 문중 간의 이해관계 등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해당 유물은 을미의병의 활동 전모를 담고 있는 대표적이며 상징적인 자료라는 점에서 중요하며, 특히, 70~80명가량 의병 성명이 등장하여, 의병장 이외에 의병활동 정황을 알 수 없는 현재 시점에서 가치가 매우 높다.


  「대한제국애국가」는 대한제국 시기 애국가 제정의 필요성에 의해 군악대 지휘자로 초빙되어 온 독일 음악가 프란츠 폰 에케르트(Franz von Eckert, 1852~1916)가 작곡한 것을 1902년 발행한 것으로, 관악합주용 총보와 한글 및 독일어로 번역한 가사가 실려 있으며, 제작 경위를 밝히는 민영환(閔泳煥, 1861~1905)의 서문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해당 유물은 제국주의 열강들의 경쟁 속에서 대한제국의 위상을 높이고, 나라의 주권을 지키려는 전기를 마련하고자 했던 외교 노력을 담고 있어 귀중한 가치를 지닌다.
  「전(傳)대원수 상복」, 「참장 예복」, 「보병 부령 상복」, 「보병 정위 예복」, 「보병 부위 예복」, 「보병 부위 예복 및 상복(황석)」, 「기병 정위 예복 및 상복」, 「헌병 부위 예복 및 상복(홍철유)」, 「군위 부위 예복」은 대한제국 시기 제작된 근대 서양식 군복 유물이다. 대원수가 착용하였을 것으로 전해지는 상복부터 장관급인 참장, 영관급인 부령, 위관급인 부위·정위의 예복과 상복 등이 병과별로 다양하게 남아 있으며, 상의의 의령장(衣領章), 수장(袖章)의 줄 개수와 다른 색 천 부착 등의 방법으로 계급과 병과를 구별하여 당시 군복의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 의령장(衣領章): 예복 상의의 옷깃에 관등을 표시하는 것(장관은 3개, 영관은 2개, 위관은 1개의 별을 부착)
  * 수장(袖章): 군인이나 경찰관 등이 정복의 소매에 관등을 표시하는 장식
  * 병과(兵科): 보병‧포병‧기병 등 군대 안에서 임무를 나눔 또는 그 임무
  * 부위‧정위: 대한제국 당시 위관 계급의 하나(정위‧부위‧참위 순)


  「전(傳)대원수 상복」은 흑색 융(絨)으로 제작된 근대 서양식 군복으로, 좌우에 각각 별 5개가 자수되어 있는 의령장(衣領章)과 소매에 11줄의 수장(袖章), 앞여밈 단추 9개 등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 융(絨): 면사를 평직 또는 능직으로 짠 후 보풀이 일게 한 직물


  「참장 예복」은 좌우 각각에 별 3개가 자수된 의령장(衣領章)과 참장 계급을 나타내는 7줄의 수장(袖章)이 있는 흑색·청색 융 제작 예복, 흑색과 청색 융으로 제작되고 상부에 이화문이 있는 예모, 금사광직으로 제작된 대례견장으로 구성된 총 1건 4점의 유물이다.


  「보병 부령 상복」은 부령 계급을 나타내는 5줄의 수장(袖章)이 있는 흑색 융으로 제작된 상복 상의로, 좌우 흉부를 가로질러 매듭장식이 있는 늑골복(肋骨服) 형태인 것이 특징이다.


  「보병 정위 예복」은 좌우 각각 별 1개가 자수된 의령장(衣領章)과 정위 계급을 나타내는 3줄의 수장(袖章)이 있는 더블 브레스티드 형태의 예복, 흑색과 홍색의 융으로 제작된 예모(禮帽, 모자), 금사광직으로 제작된 대례견장으로 구성된 총 1건 4점의 유물이다.
  * 더블 브레스티드: 상의 좌우 앞판을 겹쳐 잠그는 여밈 방식


  「보병 부위 예복」은 좌우 각각 별 1개가 자수된 의령장(衣領章)과 부위 계급을 나타내는 2줄의 수장(袖章)이 있는 흑색·홍색 융 제작의 상의, 흑색·홍색의 융으로 제작된 예모, 금사광직으로 제작된 대례견장 등으로 구성된 총 1건 6점의 유물이다.


  「보병 부위 예복 및 상복(황석)」은 1896년 민영환의 추천으로 육군 참위가 되어 근무하다가 1898년 부위로 진급하여 복무한 황석(黃淅, 1849-1938)이 착용하였던 군복이다. 예복은 좌우 각각 별 1개가 자수된 의령장(衣領章)과 부위 계급을 나타내는 2줄의 수장(袖章)이 있는 흑색 융으로 제작된 상의를 비롯하여 입전모(立前毛)·식대(飾帶)·도대(刀帶) 등 5점이 남아 있으며, 상복은 흑색 융으로 제작된 상의와 상모, 소례견장 등 5점이 남아있다. 이외에도 하의 2점과 멜빵, 외투 등이 남아있어 다양한 종류가 현존하는 흔하지 않은 유물 구성을 지니고 있다.
  * 입전모(立前毛): 주로 예복의 모자 위에 꽂는 장식용 털
  * 수장(袖章): 군인이나 경찰관 등이 정복의 소매에 관등을 표시하는 장식
  * 식대(飾帶):  예복을 착용할 때 사용한 장식용 띠
  * 도대(刀帶):  칼을 차도록 만든 띠


  「기병 정위 예복 및 상복」은 좌우 각각 별 1개가 자수된 의령장(衣領章)과 정위 계급을 나타내는 3줄의 수장(袖章)이 있는 예복·상복 상의를 비롯하여 예모, 대례견장과 소례견장으로 구성된 총 2건 8점의 유물이다.


「헌병 부위 예복 및 상복(홍철유)」은 1900년 육군무관학교를 졸업하고 1905년 11월에 정3품 통정대부, 헌병대 육군헌병부위로 근무하였던 홍철유(洪哲裕)가 착용하였던 군복 2건 8점이다. 예복 상의는 다색(茶色) 융을 기본으로 하여 제작되었으며 부위 계급을 나타내는 2줄의 수장(袖章)과 각각 별 1개가 자수된 의령장(衣領章)이 있는 것이 특징이며, 예모와 입전모 등이 남아 있다. 상복으로는 계급을 나타내는 2줄의 수장(袖章)이 있는 다색(茶色) 융으로 제작된 상의가 있다.
  * 다색(茶色) : 검은빛을 띤 주황색


  「군위 부위 예복」은 좌우 각각 별 1개가 자수된 의령장(衣領章)과 부위 계급을 나타내는 2줄의 수장(袖章)이 있고 흑색·짙은 녹색의 융으로 제작된 상의를 비롯하여 흑색·짙은 녹색의 예모, 입전모, 대례견장으로 구성된 총 1건 5점의 유물이다.


  「동해 북평성당」은 1959년 건립한 시멘트 블럭 건물로 6.25전쟁 이후 시대적 배경 속에서 건축적 상황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사례로 성당 본당으로서의 건축적 양식과 구조적 특징이 비교적 잘 반영되어 있고, 원형보존 상태가 양호하여 강원 영동지역에서 갖는 천주교사적 의미와 함께 국가등록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번에 등록 예고한 「이긍연 을미의병 일기」, 「대한제국애국가」,「전(傳) 대원수 상복」, 「참장 예복」, 「보병 부령 상복」, 「보병 정위 예복」, 「보병 부위 예복」, 「보병 부위 예복 및 상복(황석)」, 「기병 정위 예복 및 상복」, 「헌병 부위 예복 및 상복(홍철유)」, 「군위 부위 예복」, 「동해 북평성당」등 12건은 30일간의 예고 기간 중 의견을 수렴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최종 등록될 예정이다.



종합보고서.jpg

< 「6·25전쟁 군사 기록물(공군 전투비행단)」- 종합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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