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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설명

제목
[궁궐의 현판과 주련-경복궁_흥례문, 유화문]
등록일
2010-02-01
주관부서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2717



 

2. 흥례문 興禮門 및 궐내각사 권역








2-h-1 흥례문興禮門






위치와 연혁 : 광화문과 근정문 사이에 있는 남쪽 문이다. 본래 홍례문(弘禮門)이었으나, 중건할 때 청나라 건륭제(乾隆帝, 1711~1799년)의 이름인 홍력(弘曆)을 피하고자 흥례문으로 바뀌었다.<원전 1>

흥례문은 1395(태조 4)년에 경복궁창건 당시 근정문의 남쪽에 위치하는 문으로써 마당 중앙에는 어구와 석교를 두고 오문(午門)으로 불리다가 후에 흥례문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세종실록(世宗實錄)』 세종 9년 2월 19일의 기사에 홍례문이라는 이름이 최초로 나오는것으로 보아, 이 문이 늦어도 1427(세종 9)년에는 이름이 바뀐 것을 알 수 있다. <원전 2>

지금의 흥례문과 그 권역은 조선총독부 건물이었던 옛 중앙청을 철거한 다음 2001년에 복원하여 다시 세운 것이다.

 

뜻풀이 : ‘흥례(興禮)’란 ‘예를 일으킨다’는 의미이다. 인, 의, 예, 지, 신의 다섯덕목 가운데 예(禮)가 오행상 남쪽과 연관되므로, 이와 같이 이름지은 것이다.


 

제작 정보 : 이 현판은 2001년 설치하였다. 서예가인 소헌(紹軒) 정도준(鄭道準)이 쓰고 중요무형문화재 제106호 각자장(刻字匠) 기능 보유자인 철재(鐵齋) 오옥진(吳玉鎭)이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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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1> 『태조실록』 권8, 태조4년 9월 29일(庚申), “午門三間, 在殿門之南, 東西行廊 各十七間. 水閣三間, 庭中有石橋御溝, 水所流處也. 門之左右行廊, 各十七間, 東西角褸, 各二間.”

<원전 2> 『세종실록』 권35, 세종 9년 2월 19일(丁丑), “鼓初嚴, 兵曹勒諸衛陳儀仗於殿庭如常儀, 有司陳綵輿於弘禮門外. 宗室文武群官及使者以下集朝堂, 俱就次各服朝服.”



2
-h-2 유화문維和門



위치와 연혁 : 흥례문에 딸린 서쪽 행각에 있는 문으로, 서쪽의 궐내각사(闕內各司)로 들어가는 입구다. 1867(고종 4)년, 경복궁을 중건할 때에 만들었다. 흥례문 일곽에서는 조회뿐만 아니라 국문이나 교서 반포 등이 이루어졌으므로, 궐내각사와 빈청의 관원들이 원활히 움직일 수 있는 문이 필요했는데 그 역할을 유화문이 한 것이다.
 

 
 

뜻풀이 : ‘유(維)’는 어조사이며, ‘화(和)’는 ‘온화함’, ‘조화로움’ 을 뜻한다. 예를 실천함에는 조화로움이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논어(論語)』 「학이(學而)」에 “예를 행하는 데에는 화(和)가 귀하다.” <원전1>라는 말이 나온다.



 

제작 정보 : 현판은 2001년 설치하였으며, 흥례문과 같이 정도준이 쓰고 오옥진이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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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1> 『논어』 「학이」, “禮之用, 和爲貴. 先王之道, 斯爲美, 小大由之. 有所不行, 知和而和,不以禮節之, 亦不可行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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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재청에서 발간한 [궁궐의 현판과 주련1] 에서 발췌한 내용 입니다.
* 이글의 저작권은 문화재청에 있습니다.
* 사진과 글의 무단 전재나 복사를 금합니다.
* 문의_문화재청 대변인실 (042-481-4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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