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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귀퉁이, 조형성이 가장 높은 숨은 곳
작성일
2018-03-30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2835

귀퉁이, 조형성이 가장 높은 숨은 곳 한때 ‘엣지(edge) 있다’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엣지’는 ‘귀퉁이’라는 뜻인데 ‘엣지 있다’는 각이 잘 잡혀 보기 좋다는 뜻으로 유행했다. 이 말은 귀퉁이의 가능성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이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산물이다. 그 전까지 귀퉁이는 버려진 공간으로 인식되었다. 중앙 쪽을 형성하고 남은 변두리 내지는 못 쓰는 조각 공간이었다. 이런 인식을 뒤집은 것은 포스트모더니즘이었다. 이런 귀퉁이에 공간적 잠재력이 숨어있다는 것을 밝혀낸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귀퉁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은 우리조상이었다. 한국 전통건축에는 귀퉁이를 활용한 예들이 많이 있다. 각 경우마다 대응되는 미학 개념까지 있다. 크게 셋이다. 01. 부석사 무량수전은 여말선초의 건물이라 옆으로 좀 긴데 45도에서 보면 새가 날아오르는 것 같은 곡선의 미학을 발견할 수 있다. ⓒ임석재

팔작지붕의 추녀, 하늘과 땅이 만나는 꼭짓점

첫째, 팔작지붕의 추녀이다. 정면과 측면의 두 처마선이 만나는 귀퉁이 부분이다. 팔작지붕은 용마루 끝에서 수직 박공이 내려오다 중간쯤에서 양옆으로 활짝 펴지는 지붕 형식이다. 추녀는 측면 처마와 정면 처마가 만나는 지점이다. 끝이 살짝 올라가있다. 귀퉁이의 멋을 제대로 보여준다. 왜 올렸을까. 하늘과 땅이 만나는 꼭짓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박공은 하늘을 향하는 수직선이다. 처마는 땅을 따라 퍼지는 수평선이다. 수직 기운과 수평 기운이 만나는 지점이 추녀 꼭짓점이다. 하늘로 오르는 박공의 수직 기운이 처마의 수평선을 끌어올린 형국이다. 반대로 처마의 수평 기운이 박공의 수직선을 끌어내리려다 따라 올라간 형국이다.

‘천지인(天地人)’이라는 우리의 전통적인 인간관이 들어있다. 우리는 인간의 존재를 하늘의 기운과 땅의 기운이 만난 합작품으로 정의했다. 천지인의 삼분합일(三分合一) 사상은 건물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하늘과 땅 사이에서 인간의 존재를 담아내는 것을 건물이라고 본 것이다. 인간을 천지인의 삼분합일로 보았으니 건물도 그렇게 된다. 건물 자체가 이렇게 정의되는 것은 추상적 관념이다. 건물 어딘가에 물리적 증거를 남기고 싶었을 것이다. 추녀가 가장 좋은 지점이다. 이를 살리는 지붕 형식을 고안했다. 팔작지붕이 나왔다.

팔작지붕의 추녀는 귀퉁이를 시각적으로 가장 훌륭하게 형상화한 부분이다. 날아갈 듯 경쾌한 곡선으로 나타난다. 비밀은 처마선 두 장을 거느린다는 데에 있다. 꼭짓점을 정점으로 삼아 춤추듯 부드러운 곡선이 정면과 측면으로 퍼져 나간다. 이것을 빚어낸 것은 단연 우리조상들의 내재적 흥과 뛰어난 균형감이었다. 과하게 올라가지 않고 밋밋하게 일자로 끝나지도 않는다. 팔작지붕은 45도에서 보면 가장 좋다. 추녀 꼭짓점이 만들어내는 곡선을 감상하기에 가장 좋은 지점이다. 나는 부석사 무량수전이 특히 좋다. 여말선초의 건물이라 옆으로 좀 길다.

앞에서 보면 심심할 수 있다. 45도에서 보면 다르다. 새가 날아오르는 것 같은 곡선의 미학이다. 이것을 화엄에 비유하면 지나친 것일까. 부석사는 의상대사가 창건했다. 그는 한국 화엄학의 창시자이다. 수도의 침잠에 들었던 의상이 깨달음을 얻어 화엄의 기세로 춤을 한판 벌이는 형국이다.

추녀 목조건축물에서 지붕의 형태가 팔작·우진각 또는 모임지붕일 경우, 처마와 처마가 일정한 각도로 만나는 부분에 경계를 이루듯이 걸치는 건축부재

02. 서산 개심사 해탈문. 해탈문은 산사 삼문(三門) 가운데 일주문과 천왕문에 이어 나오는 세 번째 문로 우각 진입은 해탈문을 대신한다. ⓒ문화콘텐츠닷컴 03. 안동 도산서원 정우당. 담 모서리를 틈새로 열었다. ⓒ임석재 04. 종묘 정전 담 모서리 돌쌓기. 모서리를 기준으로 돌의 크기를 다르게 했다. ⓒ임석재 05. 도산서원 상고직사와 홍의재가 만나는 모서리 측문 ⓒ임석재

모서리의 틈새 - 이쪽과 저쪽은 불이(不二)이다

둘째, 모서리의 틈새이다. 한국의 공간에서는 모서리를 열어놓는 경우가 종종 있다. 중정이 대표적이다. 건물 네 채가 사각형 마당의 한 변씩을 차지하고 앉는 구도이다. 모서리를 닫지 않는다. 사찰 대웅전 앞마당이 그렇고 서원 명륜당 앞마당이 그렇다. 배산임수의 남향에서 겨울의 북서풍을 막으려면 적어도 북쪽 두 모서리만이라도 닫으면 좋을 텐데 절대 닫는 법이 없다. 왜 그랬을까. 불이 사상이 답이다. 세상 만물에는 딱 떨어지는 이분법이 없다는 불교의 가르침이다. 불이 사상을 공간에 적용한 것이 틈새의 미학이다. 두 장의 벽이 만나는 모서리가 입을 꽉 다물고 있는 모습을 마음 편해하지 않았다. 아예 담을 치웠고 건물 네 채로 담을 대신해서 중정을 형성했다.

사적 제170호 안동 도산서원은 모서리의 틈새에서 최고봉이다. 가장 절묘하고 은근하게 구사했다. 때로는 담을 어긋나게 하고 때로는 문을 내서 모서리에 틈새를 냈다. 여러 영역으로 나눈 뒤 각 영역을 담으로 둘렀는데 틈새는 영역 사이에 발길을 이어주는 바느질 같은 것이다. 정문만으로는 부족한 것이 한국인의 정서이다. 대표로 상고직사(서원을 운영하고 관리하는 건물)와 홍의재가 만나는 모서리를 보자. 담과 담이 만나고 건물까지 끼어들어 다소 복잡한 곳이다. 모서리에 슬그머니 구멍을 하나 뚫어 측문을 냈고 그 앞에 계단을 부채 펼치듯 깔았다. 막힌 혈을 뚫듯 숨통을 트듯 틈새의 활약은 대단하다.

궁궐과 종묘는 달랐다. 왕실 건축에서는 담의 모서리를 열어놓을 수 없는 일이었다. 궁궐과 종묘에서는 담의 모서리를 꽁꽁 닫았다. 그러나 모서리는 여전히 인식했던 것 같다. 구조만 따지면 담을 쌓던 대로 그냥 쌓으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우리 궁궐은 아예 돌의 크기부터 다르게 했다. 모서리를 주춧돌보다도 더 긴 큰 돌 하나로 막은 것이다.

 

우각(隅角) 진입 - 해탈은 소박하게 온다

셋째, 사찰의 우각 진입이다. ‘우각(隅角)’이란 모서리의 각진 부분이란 뜻이다. 사찰에서 대웅전 앞 중정의 앞쪽 모서리 두 곳 가운데 한쪽을 열어 이곳으로 진입하게 만든 것이 우각 진입이다. 우각 진입은 해탈문을 대신한다. 해탈문은 산사 삼문(三門) 가운데 일주문과 천왕문에 이어 나오는 세 번째 문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문을 지나면 해탈을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건축적으로는 주불전에 이르는 삼문 가운데 마지막 문이 된다. 주불전 속의 불상 앞에 나아가기 전에 속세의 때를 마지막으로 벗고 해탈에 이른다는 상징성이 있다.

사찰에서 해탈문은 누하진입이 가장 많다. 대웅전 앞 중정을 이루는 네 채의 건물 가운데 가장 앞쪽에는 보통 범종이나 누각을 세운다. 이 누각의 1층 기둥 열 사이에 길을 내서 대웅전으로 인도하는데 기둥 열 자체가 문이 되는 것이다. 이보다 조금 드문 경우가 중정의 모서리를 열어 틈새를 만드는 우각 진입이다. 두 방식은 깨달음에 대한 시각에서 차이가 있다. 누하진입은 어두컴컴한 누각 밑의 기둥 사이를 지나다가 갑자기 탁 트인 중정으로 나오면서 한 번에 대웅전 전경을 보게 된다.

이는 깨달음에 이르는 돈점이교(頓漸二敎) 가운데 돈교를 상징한다. 깨달음은 벼락 치듯 온다. 우각 진입은 이와 반대로 은근하게 접근한다. 모서리 틈새를 통해 중정 사정이 조금씩 눈에 들어온다. 모서리 틈새라 사선 방향에서 대웅전 측면을 보며 진입한다. 이때 마주치는 것이 추녀의 꼭짓점이다. 이는 돈점이교 가운데 점교이다. 깨달음은 조금씩, 은근히 온다. 해탈의 순간은 화려(華麗)하지도 장엄(莊嚴)하지도 않다. 소박하게 온다. 귀퉁이는 어차피 주인은 아니기 때문이다.

 

글. 임석재(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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