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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전통과 현대 사이, 간극을 메우다 디지털 문화유산 연구가 안재홍
작성일
2018-01-30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3972

전통과 현대 사이, 간극을 메우다 디지털 문화유산 연구가 안재홍 - 최근 모 전자업체는 인공지능 가전을 선보였다. 광고 속 가전들은 서로 대화를 하고, 사용자의 목소리에 반응한다. 모두 4차 산업혁명 덕분이다. 언론은 앞으로 더 대단한 일이 많이 일어날 거라고 말한다. 카메라가 처음 발명됐을 때 우리는 추억을 간직할 수 있게 됐듯, 기술의 혁신은 늘 인간의 욕구와 맞물려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낸다. 문화유산도 예외는 아니다. 기술 발전의 흐름에 따라 문화재를 발굴하는 과정도, 복원하는 방법도 많이 달라졌다. 01. 안재홍 교수는 3차원 컴퓨터그래픽 및 인터랙티브 기술을 활용한 디지털유산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수행하며 관련 학과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02. 안재홍 교수가 저술한 『디지털 유산』은 문화유산의 3차원 기록과 활용에 대해 살펴보는 책이다.

가장 현대적인 것으로 옛것을 지키다

2009년, 이탈리아의 중부 지방에서 대지진이 발생했다. 진원지는 중세 가톨릭의 성당과 유적들이 즐비한 지역으로, 지진을 겪으며 곳곳이 무너지고 부서졌다. 이 지진으로 피에트라니코의 성모상도 박살이 났다. 15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유물로 지금으로부터 600년 전부터 이어져 오던 성모상이었다. 지진이 난 후 그 지역의 문화유산 감독관과 수석 복원가는 성모상의 복원을 고민했다. 그리고 전통적인 재료와 방법론 대신 디지털 기술의 적용을 결정했다. 물리적으로 조작해야 할 필요성을 줄이고, 더 이상의 손상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곧 다양한 배경지식을 가진 전문가들로 팀이 꾸려졌다. 이들은 먼저 3차원 스캐닝 기술을 통해 각각의 파편 조각을 컴퓨터 데이터로 만들었다. 그 후 함께 논의하며 재조합에 대한 가설을 세우고, 가상 재조립을 완료했다. 문제는 다음이었다. 성모상 조각을 붙여놓고 보니 내부가 텅 비어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조각들은 충격에 약할 것임이 분명했다. 디지털 전문가들은 이 문제를 3차원 프린팅 기술로 해결했다. 성모상 안의 비어 있는 형상을 그대로 추출해 3차원 프린팅 기술로 지지대를 만들었다. 복원가들은 이 지지대 위로 실제 조각을 이어 붙였고, 마침내 성모상은 빈틈없는 완전체가 됐다. 모두 복원 프로젝트에 디지털 기술을 접목시킨 덕분이었다.

"이탈리아 성모상은 디지털 문화유산을 설명하기에 아주 좋은 사례입니다. 새로운 기술적 접근을 통해 현대적인 복원 프로젝트가 어떻게 계획되고 실행되는지를 잘 보여주죠. 이 프로젝트는 10여 년 전에 있었던 일로, 이미 유럽연합에서는 문화유산의 디지털화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학회에서는 공학박사, 정부 정책가, 기술 개발자, 박물관 관계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문화재를 중심으로 한자리에 모여요. 그곳에서 성과를 발표하거나 기술을 소개하기도 하고, 서로 열띤 질문을 주고받죠. 10여 년 전 처음 그 모습을 접했을 때, 굉장한 문화적 충격에 빠졌던 기억이 납니다.” 안재홍 교수는 학창 시절 역사과목을 가장 싫어했던 공학도였다. 당연히 문화재에도 관심이 없었고, 관련 지식도 부족했다. 그러나 우연한 기회에 자신의 전공 분야가 문화유산과 융합되는 현장을 접했고, 디지털 문화유산을 좀 더 깊게 연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길로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했다.

03. 디지털과 문화유산, 그 사이를 연결해줄 디지털 문화유산 연구가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안재홍 교수. 04. 안재홍 교수가 근무하고 있는 카이스트 디지털 헤리티지 연구실 05. 3차원 스캔 데이터로 기록하고 시각화한 공룡발자국 화석 ⓒ안재홍

디지털, 문화유산을 꽃피우다

디지털 문화유산이란 융합학문이다. 문화재의 복원부터 기록, 분석 등 다양한 분야에 디지털 기술이 활용된다. 디지털과 문화재, 이 두 분야의 결합만으로도 엄청난 파생 분야가 생겨나는 것이다. “첨성대를 예로 들면, 경주 지역 지진 때문에 첨성대도 이탈리아의 성모상처럼 붕괴의 위험을 안고 있어요. 이때 디지털 기술을 통해 지진에는 안전한지, 혹시 지진에 의해 조금씩 기울어져가고 있는 건 아닌지 등을 측정할 수 있어요.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의 경우, 수장고에 있는 문화재를 3차원 데이터로 만들어 웹상에 올려두기도 했어요. 많은 사람들이 무료로 다운받아 감상하고 활용할 수 있죠. 3차원 프린터만 있으면 실물로 똑같이 만들어 연구에도 활용할 수 있죠. 그 밖에 복잡한 미술품의 해외 대여 시, 훼손되지 않도록 맞춤형 포장재를 만드는 등 조금만 생각하면 많은 부분에 활용할 수 있어요.”

디지털 기술은 천연기념물인 공룡발자국을 정밀 기록하는 데에도 활용됐다. 국내 공룡발자국의 경우, 자연유산임에도 불구하고 무방비로 방치된 것이 많았으며, 해마다 훼손되고 있는 실정이었다. 발자국이 주로 바위에 있기 때문에 육안으로 식별이 어려운 것도 많았다. 안 교수는 이러한 공룡발자국을 시각화하기 위해 화석지 전체를 스캔했다. 그러자 얕아서 잘 보이지 않던 발자국까지 확연하게 드러났다. 공룡이 걸어간 방향이나 전체적인 보행렬까지 확인할 수 있는 자료였다. “공룡발자국을 3차원 데이터로 만든 것이 처음이었어요. 기존에는 발자국을 기록할 때 사진으로 찍은 뒤, 비닐을 깔아 유성 펜으로 따라 그리곤 했어요. 아무리 잘 그려도 공룡발자국의 입체적인 형상까지는 표현할 수 없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디지털 기술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할 수 있었어요. 이 자료들은 공룡의 걷는 패턴, 공룡의 무게 등을 연구하는 자료로 활용됐습니다.”

이처럼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면 정확도를 높일 수 있다. 3차원 실측 기술을 통해 평면이 아닌 입체적인 부분까지 정확한 기록이 가능한 것이다. 특히 문화재는 직육면체처럼 규격화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이러한 기술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지금은 문화재를 3차원 데이터로 기록해두는 추세이다. 세계문화유산인 석굴암 역시 안 교수의 손에 의해 이미 3차원 스캐닝을 완료했다. 디지털 기술이 전통방법을 대체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더 나은 방법을 모색하고 보완하는 것이다. 이전에는 문화재의 발굴부터 보존과 기록, 전시가 독립적이었다면, 이제는 각 단계들에 디지털 기술이 결합되어 연구자로 하여금 그동안 하지 못했던 질문을 하게 만든다. 원본의 가치를 훼손시키지 않되, 다양한 파생 분야로 문화재 연구에 꽃을 피우는 일, 그 중심에 디지털 기술이 있다.

 

디지털 기술의 ‘쓰임’을 고민하는 사람

디지털 문화유산의 활용 분야는 한계가 없다. 정확한 데이터를 가지고 어떤 연구를 할 것인지 고민하는 것은 연구자의 몫이다. 안재홍 교수는 이 두 가지 분야를 연결하고, 어떻게 하면 더 많은 파생 분야를 낳을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디지털과 문화유산, 양쪽을 모두 이해하고, 각 분야에서 어떤 기술을 필요로 하는지 알면 결합할 수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이 두 분야에 너무 큰 간극이 존재해요. 어떤 기술을 어디에 활용할 수 있는지를 서로 알지 못하죠. 너무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그 사이를 연결해줄 누군가가 필요하죠. 디지털 문화유산 연구가란 그런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국내에는 디지털 문화유산 분야가 아직까지 생소한 편이다. 복원 영상이나 콘텐츠 제작에 치중될 뿐 이 분야를 연구하는 연구자도 극히 드물다. 때문에 안 교수는 국내에 디지털 문화유산 분야를 알리고 체계화하는 데에 열정을 쏟고 있다. 디지털 문화유산 개론서를 펴내는 것은 물론 문화재의 3차원 스캐닝 시 지켜야할 표준 매뉴얼 제작에도 참여했다. 그 밖에 문화재나 디지털 관련 전문가들과 협업하며 실질적인 프로젝트도 진행한다. 그의 노력들이 계속해 쌓인다면 앞으로 한국의 디지털 문화유산도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전통과 현대는 이미 너무나 달라져있다. 처음부터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융합할 수 있는 접점을 찾는 것부터가 디지털 문화유산 연구의 시작일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전통과 현대 사이의 간극은 새로운 가치들로 빈틈없이 채워져 있을 것이다. 돈이 되는 콘텐츠가 아닌, 문화유산 연구자로서 당연히 던져야할 질문을 품는 사람, 그것이 디지털 문화유산 연구가의 사명이자 안재홍 교수의 모습이었다.


글. 이혜민 사진. 김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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