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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 해의 끝과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
작성일
2017-12-01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1049

한 해의 끝과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 - 2017년도 이제 마지막 한 달을 두고 있다. 한 해를 잘 마무리하고 새로운시작을 맞이하기 위해 사람들은 어김없이 보신각 앞에 모여들어 타종에 참여한다. 그뿐만 아니라 국가나 사회적으로 주요한 메시지가 담긴 자리는 자연스럽게 종소리로 그 문을 열고 있다. 종에 얽힌 설화는 물론 제작법, 구성요소 등을 자세히 들여다보고자 한다

Q. 종을 만드는 과정을 알고 싶어요.

종을 만드는 방법을 주물이라고 하는데 그 원리는 높은 열로 녹인 쇳물을 미리 만든 주형틀(거푸집) 속에 부어 응고시킨 후, 원하는 모양을 갖추는 것입니다. 세부적인 주물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납형주물(蠟型鑄物)방식을 예로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 안거푸집을 흙으로 빚어 대강의 종 형태를 만듭니다.
② 그 위에 만들고자 하는 종의 두께만한 밀랍(蜜蠟)을 골고루 입히고 부드러운 밀랍 위에 원하는 문양을 새기는 등 세밀하게 원형을 만든 뒤, 틀 고정쇠를 박습니다.
③ 밀랍의 원형 위에 부드러운 진흙을 고르게 덮어씌워 겉거푸집을 만듭니다.
④ 겉거푸집이 단단하게 굳어지면 통째로 불에 구워 겉거푸집과 안거푸집 사이의 밀랍을 완전히 녹여 제거합니다.
⑤ 밀납이 제거된 빈 공간으로 뜨거운 쇳물을 부어 넣습니다.
⑥ 쇳물이 식은 뒤 진흙으로 된 겉거푸집을 제거하면 주물로 제작된 종이 드러납니다.
⑦ 최종 수작업으로 표면을 곱게 다듬으면 모든 작업은 끝납니다.

Q. 우리나라 종이 중국이나 일본 종과 다른 특징은 무엇인가요?

한국 종은 중국이나 일본의 것과 비교했을 때 우아하고 안정된 외형을 지니고 있으며 특히 소리가 매우 은은하고 맑습니다. 한국 종은 최정상부에 종을 매달기 위한 장치로 허리를 잔뜩 구부린 한 마리의 용, 단룡(單龍)을 사용하는 데 비해, 중국이나 일본의 범종은 쌍룡(雙龍)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또한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 종에서만 볼 수 있는 것으로 종의 정상부분에 있는 대나무 형태의 원통(음관)을 꼽을 수 있습니다. 학계에서는 이것을 만파식적(萬波息笛, 이 피리를 불면 나라의 모든 근심과 걱정은 해결되고, 쳐들어오던 적군은 물러갔다고 함) 설화와 연관하여 신라의 3대 국보 중 하나였던 신령스런 피리(神笛)의 형태를 형상화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편, 한국 종에는 종의 최상부를 한 바퀴 감는 띠(견대,肩帶) 바로 아래쪽 네 곳에 유곽이라고 부르는 네모난 테두리가 있는데 그 속에 3단 3열로 총 9개의 유두가 달려있습니다. 그러나 중국 종에서는 그런 것을 찾아볼 수 없으며, 일부 일본 종에서는 볼 수가 있지만 한국 종처럼 규격화되거나 유두의 숫자가 일정하지 않습니다. 이런 특징으로 인해 한국 종은 코리안 벨(Korean Bell)이라는 ‘학명’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세계적으로 그 독창성과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① 종뉴 ② 음통 ③ 천판 ④ 견대 ⑤ 상대 ⑥ 유두 ⑦ 유곽 ⑧ 당좌

Q. 용뉴, 유곽, 비천상 등 범종의 구성요소에 대해 알고 싶어요.

전형적인 신라의 범종은 다음과 같은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① 종뉴(鍾紐): 종을 매다는 고리로, 용모양을 하고 있기에 용뉴라고도 합니다.
② 음통(音筒): 대나무 모양의 관으로 용통 또는 음관이라고도 합니다.
③ 천판(天板): 종뉴와 음통이 있는 종의 최상부의 넓고 평평한 부분을 말합니다.
④ 견대(肩帶): 천판 바깥쪽을 빙 돌아가며 있는 띠장식을 말합니다.
⑤ 상대(上帶): 종의 몸체 상부에 있는 무늬 띠입니다.
⑥ 유두(乳頭): 연꽃 봉오리 형태로 돌출된 장식으로 연뢰라고도 합니다.
⑦ 유곽(乳廓): 유두를 둘러싸고 있는 네모난 고리띠를 말하는데 연곽이라고도 합니다.
⑧ 당좌(撞座): 종을 치는 자리입니다. 당(撞)이라는 글자는 ‘치다’라는 뜻입니다.

기타 구성요소로는 종의 몸체에 새기는 각종 문양이 있습니다. 통일신라 때까지는 하늘을 날면서 악기를 연주하는 주악비천상이나 부처에게 공양물을 올리는 공양상이 주류였으나 고려시대 이후로는 부처나 보살이 주로 등장합니다. 또한 견대나 종구(鐘口, 종의 아가리) 부분에는 당초문(唐草文)이라고 하는 덩굴풀문양과 보상화문(寶相華文)이라는 상상 속의 꽃문양도 자주 등장합니다.

경주 에밀레종 비천상

Q. 성덕대왕신종, 일명 에밀레종 설화의 최초 기록이 언제부터였는지 궁금합니다.

종을 주조할 당시 어린아이를 넣었다는 에밀레종 설화는 거의 모든 국민들이 알고 있습니다. 이런 종류의 설화를 통칭하여 인신공양설화라고 하는데 중국과 한국 같은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흔히 접할 수 있는 소재의 설화입니다.(예를 들어 심청전도 인신공양설화의 변형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 에밀레종 설화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 삼국유사나 삼국사기가 아니라 일제강점기 때가 되어서야 보인다는 것입니다. 1925년 8월 5일자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의 창작문예란에 염근수라는 작가가 ‘어밀네 종’이란 동화를 발표했는데 얼마 후 이 동화를 뼈대로 하여 현대적인 희곡이 만들어졌고 극장에서 연극으로 공연되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이후에 급속도로 에밀레종 설화가 대중 속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이는 아마도 동아시아에서 흔한 소재였던 인신공양설화가 성덕대왕신종이라는 특정 대상물과 결합한 뒤 상호 간에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와 비슷한 예로 낙화암의 삼천궁녀설화를 들 수 있는데 이 역시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진 대중가요 때문에 대중들의 머릿속에 각인된 사례입니다.

 

글‧최동군(문화재 전문작가) 사진‧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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