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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순양의 기운을 벼려 삿됨을 베다, 사인검(四寅劍
작성일
2016-02-02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5854

날을 벼리다 순양의 기운을 벼려 삿됨을 베다 ‘사인검(四寅劍)’간지의 인(寅)자가 네 번 겹치는 때에 만들어진 사인검은 재앙을 막고 사귀를 베는 주술용 칼이자 왕실의 안녕과 군신 간의 의기를 다지는 용도로 제작된 칼이다. 날카롭게 벼려진 사인검의 날엔 선조들의 철학과 염원이 생생하게 서려 있다.

01-02 조선 중기 왕들의 호신용 사인검

 

왕실의 안녕과 국태민안(國泰民安)의 염원을 날에 담다

조선의 대표적 도검 중 하나인 인검(寅劍)은 태조7년인 서기 1398년 무인년에 처음 사인검(四寅劍)이 제작된 이래 조선왕조 내내 전승되어온 주술적 목적의 벽사(辟邪)용 칼이다. 우리 칼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사인검이란, 이름은 물론 ‘인년, 인월, 인일, 인시에 만드는 칼’이라거나 ‘재앙을 물리치는 칼’이라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인검은 유명도만큼 본의가 왜곡된 부분이 많아 잘못 알려진 속설과 억측이 난무하고 있는 칼이기도 하다. 인검에 대한 문헌은 민간의 문집 등에 남겨진 선조들의 기록이나 한시 등 기록이 있고 「조선왕조실록」에는 인검 관련 기사가 6편 9절 분량이 기록되어 있는데, 「실록」의 인검은 사인검, 삼인검의 두 가지 칼만을 의미한다. 2016년 현재 공식적으로 소재가 파악된 인검은 30여 점정도로 대부분 국공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소재가 파악된 개인과 문중이 소장하고 있는 유물까지 포함한다면 약 50여 점정도가 확인된다.

인검은 12년마다 만드는 것이 원칙이나 상황에 따라 제작하지 않거나 중단하는 경우도 있었다. 흉년, 재정 부족 등의 국가 상황을 들어 반대하면 제작을 중단하거나 만들지 않았다. 또한 경인년(흰 호랑이해)에 만드는 사인검이 특별히 귀하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속설일 뿐이다. 「실록」에는 특별한 인년을 선호한 근거와 기록이 없으며 선조들의 문집에도 없다. 동양철학과 역술계통에서는 경인년을 길한 해가 아닌 사나운 기운이 발동하는 해로 여긴다. 흰 호랑이해가 특별하다는 생각은 백호에 대한 현대 한국인들의 감성적 호감에서 비롯된 오해이다.

인검을 만드는 이유는 결코 호랑이의 용맹함이나 ‘무(武)’의 기운 때문이 아니다. 음양상 문은 양(陽), 무는 음(陰)에 해당됨으로 만약 음인 무의 기운을 얻으려 한다면, 순양(純陽)인 사인의 시기는 절대로 해당될 수 없다. 인은 오행의 오신수(五神獸)에 적용하여 분류할 때 군신 간의 도리인 의(義)를 뜻하며, 많은 인검이 공신의 하사용으로 쓰인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인검은 재앙을 막고 사귀를 베는 벽사용 칼로서 주술적인 의기에 속한다. 따라서 권위를 나타내는 의장용 칼이 결코 아니며 왕의 칼, 또는 출정하는 장수에게 주는 부월(斧鉞)과 같은 칼이 아니다. 왕이 하사한 칼 중 인검이 있을 수는 있으나, 출정 장수를 위하여 인검을 제작하지는 않았다.

인검은 왕실의 안녕과 군신 간의 도리를 이루어 국태민안을 기리는 주술적·의기적 목적으로 만들어진 칼이다. 사인검은 천간지지와 오행의 총합을 통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순양검이다. 원래 순양검은 ‘요귀를 베고, 마를 물리치며(斬妖除魔), 간사함을 제거하고 악을 없애는(除奸鋤惡)’ 능력을 담고 있다. 「실록」에 기록된 사인검, 삼인검 관련 기록인 ‘재앙을 물리치는 도구(연산군7년)’, ‘재앙을 물리치기 위한 것(중종37년)’, ‘사귀를 물리칠 수 있다(숙종12년)’는 내용처럼, 인검을 만든 목적과 용도가 순양검의 그것과 일치함을 알 수 있다.

03 전통야철도검 부문 기능전승자 고려왕검연구소 이상선 소장의 사인검 04 국립고궁박물관 내 사인검  인검은 순양의 기운으로 벽사의 의미를 깃들인, 조선을 대표하는 신령한 위력의 칼로서 군신 간의 의리를 묵시적으로 상징함과 동시에 나라 다스림의 궁극적 귀결인 국태민안과 태평성대의 구가를 바라는 염원을 담고 있는 칼이다.

 

상생과 조화의 철학이 서린 조선의 검

사인검의 힘은 순양의 시기에 타조(打造)하여 칼에 순양의 기운을 깃들이게 함으로써 얻어진다. 인시에 철정을 두드려 칼날형태를 다듬기 위해서는 일정한 자격을 갖추고 특정한 의식을 거친 준비된 도공이 해당 시간에 달궈진 쇠에 타조해야 하며, 이를 통해 순양의 기운을 깃들게 한다. 인년·인월·인일·인시의 취합은 사주팔자가 양의 기운으로만 이루어진 속칭 ‘양팔통’이 되어 순양의 시점이 이루어진다. 인시(寅時, 새벽 3~5시) 동안 도공이 쇳덩이에 열을 가하고 두드려 대략적인 칼날 윤곽을 잡는 것이다. 결코 현대의 도검제작자들처럼 미리 만들어둔 완성된 칼날을 화로에 올려 열처리하는 시간이 아니며, 이런 식으로 제작한 현대의 사인검에는 벽사의 힘이 깃들 수 없다.

인검 제작은 국가사업 수준의 일이었고 소요물량은 재정의 큰 부분에 해당할 정도였다. 조선 시대 도검은 통상 송아지 한 마리에 해당하는 비싼 기물이었다. 인검처럼 금은, 비철, 어피, 정교한 장식, 화려한 수술들을 사용하여 만든 칼은 더욱 비싼 귀물이었다. 인검을 제작하기 위해 재료와 재원을 마련하고, 군사와 야장을 포함 수백 명이 넘는 인원이 궁궐에서 수개월 이상 동원되었다는 기록에서도 그 규모를 알 수 있다.

또한, 인검이란 명칭의 칼은 조선에만 존재한다. 인검, 사인검, 삼인검은 「사고전서(四庫全書)」에도 등장하지 않는 칼의 명칭이며 이는 진검, 사진검, 삼진검도 마찬가지이다. 중국에는 순양검이 존재하지만, 인검(또는 진검)처럼 순양의 힘이 깃드는 구체적인 철학적 원리와 근거가 제시가 된 예는 부재하며 일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우리 민족의 특별한 칼이다.

인검은 조선 시대의 철학과 공예를 총합한 기물이기도 하다. 인검은 검신에 입사(入絲)된 북두칠성과 이십팔수(二十八宿) 천문도에 담겨진 북두의 구궁과 오행의 사신수, 27자 검결이 수행하는 천신, 지신의 강림과 신력(神力)을 이용한 벽사와 수호 등이 서로 상호보완적 관계를 위한 배치를 이루고 있다. 이외에도 인검은 벽사를 위한 불가의 길상문양, 검두·검패의 연화문이나 애자문양, 천지간 신력을 얻고자 검신에 입사한 주문, 불가의 범어와 실담어가 담긴 경문을 새겨 천지간의 운행과 만물의 조화를 이루도록 배치했다. 이들은 어느 것 하나도 간과하거나 생략할수 없는 요소들이며 이를 조화시켰다.

결론적으로 인검은 순양의 기운으로 벽사의 의미를 깃들인, 조선을 대표하는 신령한 위력의 칼로서 군신 간의 의리를 묵시적으로 상징함과 동시에 나라 다스림의 궁극적 귀결인 국태민안과 태평성대의 구가를 바라는 염원을 담고 있는 칼이다. 이러한 요소들은 심오한 고대의 과학과 철학의 이치 하에 의도적으로 구성된 현묘한 우주관의 반영이다. 이 요소들을 한데 모아 상생(相生)과 조화를 이루고 총제적인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의도한 인검은 우주와 천지 만물에 대한 선조님들의 철학과 세계관을 확고히 대변해주는 결정체인 것이다.

 

글‧이석재(경인미술관 관장, 전통도검연구가) 사진‧연합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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