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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 민족의 심성에 담겨있는 은근과 끈기
작성일
2015-11-02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6687

우리 민족의 심성에 담겨있는 은근과 끈기, 정보화 시대, 스마트 시대인 현대는 불과 몇 십 년 전에는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변화와 격동의 시대이다. 오랫동안 우리 민족의 정체성이던 정주定住농경사회, 산업사회에서 새로운 정보 유목사회, 신新노마드Nomad 사회로의 변화이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마누라만 빼고 모두 바꿔야 살 수 있다”는 어느 대기업 회장의 선언처럼 우리가 믿고 의지하던 기존의 상식과 믿음은 변화와 격동의 거센 파도 속에 모두 가라 앉아 버렸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오랫동안 우리 민족이 가져온 ‘은근과 끈기’의 심성과 문화는 우리 자신을 세계사에 우뚝 설 수 있는 큰 빛이 되게 해주었으며, 또한‘헬조선’과 같은 부정적인 인식을 극복하고 우리의 앞길을 열어주고 밝혀줄 ‘바꿀 수 없는’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다.

 

은근과 끈기의 민족

우리는 은근과 끈기의 민족이다. “‘은근’이 한국의 미요, ‘끈기’가 한국의 힘”이라는 것을 국문학적 관점에서 밝힌 조윤제 선생의 말과 같이, 우리가 은근과 끈기의 민족이라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별의 아픔을 울며불며 애원하지 않고, “날러는 엇디 살라하고 버리고 가시리잇고”라는 애이불비哀而不悲의 은근함“, 일백 번 고쳐죽어, 백골이 진토塵土되어”도 버릴 수 없는 일편단심一片丹心의 끈기. 우리 민족의 마음 깊숙이 알알이 박혀있는 은근과 끈기의 정체성은 아름다운 전통문학에서 분명히 볼 수 있다. 또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라하는 김소월의 시에서,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도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나고…”라는 현대 시인 김수영의 시 「풀」에서도 은근과 끈기의 심성을 가진 우리민족의 모습은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한 민족의 원초적인 자화상을 잘 보여주는 건국신화에서도 우리는 은근과 끈기의 민족이었다. 자신들이 신에게서 사랑받는 민족임을 보여주기 위해 신의 사랑을 받는 건국영웅의 치열한 투쟁을 보여주는 대다수의 건국신화와는 달리,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라’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고상한 미덕과 가치의 건국신화인 단군신화에서 우리 민족의 어머니는 은근과 끈기의 상징인 ‘곰(웅녀)’이다. ‘마늘과 쑥으로 어둠 속에서 버텨야 하는 삼칠일’이라는 고난과 역경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호랑이의 강력한 힘과 위엄이 아니라, 곰의 은근과 끈기였다.

또한 우리는 강력한 근육과 바람 같은 빠름의 상징인 말이 아니라 느리지만 끈기있게 밭을 가는 ‘소’를 민족 심성의 상징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은근하고 끈기 있는 발효가 필요한 된장, 화려하지는 않지만 매서운 추위를 견뎌내며 길게 피는 우리 꽃 무궁화, 이러한 문화적 정체성의 상징들을 통해 우리 자신을 은근과 끈기의 민족으로 규정짓는다.

01. 병자호란 때 인조가 청나라 군과 대치하여 격전을 벌였던 남한산성(사적 제57호). 숱한 외침과 국난에서 보여준 줄기찬 항쟁과 저항정신은 우리 민족의 끈기와 인내를 대변한다. ⓒ문화재청 02. 화려하지는 않지만 매서운 추위를 견뎌내며 길게 피는 우리 꽃 무궁화. ⓒ이미지투데이

 

끈기와 열정의 한국사

우리 민족의 역사는 끈기와 인내의 역사이다. 그렇기에 우리 역사는 앞으로의 세계사의 큰 빛이 될 수 있다. 국난과 외침과 같은 역사적 고난을 인내와 의지로 극복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중국의 통일제국 수와 당 그리고 세계제국 몽골과의 전쟁,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일제강점과 같은 거대한 외침과 참혹한 국난에서 우리 민족이 보여준 줄기찬 항쟁과 저항은 우리 역사의 자랑이다. 하지만 이처럼 국난과 외침을 극복한 ‘끈기와 인내’를 자랑으로 내세우는 민족은 많다. 일례로 아프가니스탄은 세계사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끼친 거대한 제국들인 알렉산더 대왕, 몽골제국, 무굴제국, 대영제국, 소련의 계속된 외침에도 굴복하지 않고 항쟁하여‘외국군의 무덤’, ‘제국의 무덤’이라 불리며 독립을 지켜낸 민족적 자부심이 매우 크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의 이러한 인내와 끈기는 경탄을 자아내기는 하지만 세계사의 모범이라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놀라움을 넘어서는 탄복과 부러움을 살 수 있을 결과는 아니기 때문이다.

잔악한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식민지로 수탈당하고 원치 않은 분단과 전쟁으로 황폐화된 극빈의 농업국가에서 산업사회와 정보화의 선진국 대열에 올라선 ‘한강의 기적’,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길 바라는 것과 같다”는 조롱에서 세계가 놀랄 민주화를 이룩한 나라. 우리 민족의 은근과 끈기가 단지 우리만의 자긍심을 넘어서, 세계의 모범이 될 수 있음을 자부할 수 있는 근거들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모습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새마을운동, IMF 환난에서 전 국민의 동참을 불러온 ‘금 모으기 운동’, 세계가 놀란 대한민국의 열정을 보여준 월드컵 응원 등 역동적인 한국 현대사는 우리가 활화산 같은 열정을 가진 민족임을 잘 보여주었다.

03. 민주화운동 기록물. 1980년 5월 18일에서 27일까지 전라남도 광주시 (지금의 광주광역시)에서 군사정권의 부당한 독재에 항거하여 일어난 5·18 민주화운동에 관한 기록물들로, 2011년 5월 25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유네스코(UNESCO) 04. 새마을운동은 1970년 대의 한국사회를 특징짓는 중요한 사건으로 이 같은 역동적인 한국 현대사는 우리가 활화산 같은 열정을 가진 민족임을 잘 보여주었다.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끈기와 열정의 변증법

문제는 이러한 열정과 역동성이 은근과 끈기의 민족이라는 우리의 모습과 전혀 다른 것처럼 보이며, 심지어 모순되거나 이율배반적인 것으로 보일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한국 현대사에서 보이는 이러한 열정과 역동성, 그리고 한국인을 세계에 유명하게 만든 ‘빨리 빨리’의 극단적인 속도 추구의 모습은 전통적인 은근과 끈기의 측면에서 본다면 매우 낯설어 보인다. 그래서 어떤이는 은근과 끈기의 민족적 심성이 타락했다거나, 혹은 은근과 끈기의 민족적 심성이라는 관점은 우리를 소극적인 모습으로 왜곡한 것이라고 하기도 한다. 또한 어떤이는 우리 민족의 진정한 성격은 ‘열정과 역동’, ‘은근과 끈기’라는 두 극단極端을 수용할 수 있는 개방성이며 서로 반대되는 것의 ‘뒤섞임과 버무림’이라고 하기도 한다. 이러한 시각은 ‘은근과 끈기’, ‘열정과 역동성’의 두 기질이 마치 쉽게 뜨거워지지만 반대로 쉽게 식어버리는 냄비와 은근하지만 쉽게 식지않는 뚝배기처럼 전혀 다른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이 두 기질은 전혀 다른 것이 아니다. 은근과 끈기의 바닥에는 뜨거운 열정과 역동성이 용암처럼 흘러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열정과 격정은 다른 것이다. 금방 불같이 뜨거워지지만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쉽게 식어버리는 격정에는 결여되어있는것이 바로 은근과 끈기의 일관성이다. 지금까지 우리민족이 보여주었던 ‘은근과 끈기’의 역사, ‘열정과 역동성’의 역사는 모순된 것이 아니라, 빛은 어둠이 있어야 빛나는 것처럼 변증법적으로 투영된 것이다.

05. 유관순 열사 동상. 유관순은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로 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체포되어 옥사하기까지 뜻을 굽히지 않고 끝끝내 일제에 맞서 항쟁했다. ⓒ문화재청 06. 김식의 <어미소와 송아지>. 그림에 등장하는 소들은 순하고 느긋하며 악의 없이 순박한 표정을 짓고 있다. 우리 민족은 바람 같은 빠름의 상징인 말이 아니라 느리지만 끈기 있 게 밭을 가는 소를 민족 심성의 상징으로 생각한다. ⓒ국립중앙박물관 07. 단군기원의 역사의식을 담고 있는『제왕운기』(보물 제418호). 단군신화에서 우리 민족의 어머니는 은근과 끈기의 상징인‘곰(웅녀)’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우리 민족이 완전무결한 민족은 아니다. 지금까지 우리 역사가 세계사의 방향을 결정지은 위대한 역사는 아니었다. 지금의 우리나라가 눈부신 경제력과 강대한 힘을 가진 모두가 행복한 천국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즉 우리나라는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노력해야 한다. ‘은근과 끈기’, ‘열정과 역동성’의 민족이라는 우리의 정체성은 과거가 된 역사의 화석이 아니라, 앞으로 우리가 현재의 고통과 부족함을 극복하기 위해 마음속 깊이 간직해야 할 나침반이 되어야 할 것이다.

 

글.박민관 (한국연구재단 인문학대중화사무국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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