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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모래 위에 남긴 이야기, 바누아투 모래그림Vanuatu Sand drawings
작성일
2015-11-02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4629

바누아투,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들 대부분이 그러하듯 우리에겐 익숙하지 않은 나라이다. 하지만 호주나 뉴질랜드, 유럽인들에게는 휴양지로 꽤 유명하다고 하는데, 흔히 바누아투를 이야기 할 때 지상낙원, 파라다이스라는 말을 자주 쓴다. 푸르디 푸른 바다와 그림 같은 경치도 그러하지만, 무엇보다도 평화로운 사람들을 보면 낙원이 있다면 바로 이런 모습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바누아투는 국민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라고 한다. 사실 바누아투 사람들에게 1등이라는 것이 큰 의미가 있을까 의문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평화롭고 행복한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바누아투는 남태평양의 보물 같은 섬나라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그곳에는 바누아투를 더욱 빛나게 하는 전통 모래그림이 있다

01. 모래그림은 몇 개 의 점과 선을 기본으로 한 손가락으로 그려야 하기 때문에 오랜 시간동안 배우고 연습해야만 그려낼 수 있다. ⓒ유네스코(UNESCO)

 

사람이 행복한 나라 바누아투

바누아투는 지리적으로 호주 동부에서 약 2000km 정도 떨어져있고, 사람이 살지 않는 작은 섬들을 포함해서 약 80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이다. 인구는 20만 명이 조금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1900년대 초부터 영국과 프랑스의 공동 통치를 받다가, 1980년대에 들어서 비로소 독립했다. 우리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는 이 섬나라에 가려면, 한국에서는 우선 호주나 피지로 가야할 것 같다. 호주를 기준으로 비행기로 3시간 여를 날아가면 행복한 섬 바누아투에 닿을 수 있다. 얼마 전에 교육방송에서 바누아투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방송된 적이 있다고 하니, 궁금한 이는 찾아보는 것도 도움이 될 듯하다.

운이 좋게도 2013년에 바누아투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체류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며칠 동안의 방문이었고, 그나마도 바쁜 일정때문에 여러가지를 경험할 시간은 충분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잠시 동안 머무는 손님에게도 바누아투는 매우 다이내믹한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특히 갑작스런 지진이 온몸으로 전해질 만큼 역동적인 자연을 느끼기에 충분한 곳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한편에는 이렇게 투박하고 거친 자연이 그대로 남아있고, 다른 한편에는 관광객들이 북적거리는 세련된 카페가 모여 있는 묘한 매력이 공존하는 곳이었다. 아마도 후자의 모습은 오랜 기간동안 바누아투를 지배했던 영국과 프랑스의 공동지배 역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물론 바누아투에서 유럽의 자취를 찾을 수 있다는 것도 흥미로웠지만, 그보다 더 강렬한 기억은 단연 바누아투 사람들이 지켜온 전통문화일 것이다.

02. 약 80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바누아투는 그림같이 푸른 바다가 있고 행복한 사람들이 사는 지상낙원, 파라다이스라 불린 다. ⓒ아이클릭아트 03. 바누아투 문화센터(Vanuatu Cultural Centre)에서 만난 모래그림 장인은 그림을 그리면서 그림이 표현하고 있는 의미와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쉬지않고 전달했다. ⓒ유네스코아태무형유산센터

 

모래 위에 선으로 이야기 하다

포트빌라를 떠나오기 전, 바누아투 사람들이 자랑스러워하는 모래그림을 직접 볼 기회가 있었다. 본래 모래그림은 일상생활에서 의사소통을 위해서 사용하는 일종의 싸인sign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해변 모래사장에 그림을 그려 ‘내가 곧 돌아올 거야’ 라고 의사를 표시하는 것이다. 바누아투의 모래그림은 주로 각 가정에서 할아버지 같은 웃어른으로부터 아이에게로 전해지는 고유의 전통이다. 문자로 기록된 것이 아니라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었다고 하는데, 모래그림을 구성하는 기하학적인 모습을 직접 보고나면 더 놀랍게 느껴진다.

바누아투 문화센터(Vanuatu Cultural Centre)에서 만난 모래그림 장인은 손가락 하나로 그림을 그리면서 쉬지 않고 이야기를 했다. 그림이 표현하고 있는 의미와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방식으로 모래그림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을 것이다.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 장인의 손끝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바닷게가 완성되어 있고, 바다를 향해 걸어 나갈 것만 같은 바다거북이 모습을 드러낸다.

바누아투 모래그림을 그리는 장인은 하나의 그림에 수십가지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림으로 본인의 의사를 전달하기도 하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다. 모래그림을 그릴 때는 땅바닥이나 모래, 화산재 위에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려 좌우 대칭으로 기하학적인 무늬를 완성한다. 예로부터 실생활에서 유용했던 바누아투 모래그림 전통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공동체들 사이에 소통을 위해서 발전해 왔다고 한다. 실제로 바누아투는 백가지 이상의 언어가 사용되고 있는 국가이고, 북부와 중부지역의 사람들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어 의사소통이 어려웠다. 그래서 그림으로 이야기하면서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 발전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비록 언어는 달랐지만 모래그림을 통해서 신화나 역사에 대해 알려주고, 친족 체계나 건축 기술, 공예, 무용 등에 대해 기록해 전달하는 방법으로 모래그림을 사용했다. 또한 바누아투 인구의 80%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농업기술을 전승하는데도 활용되었다고 한다. 모래그림은 몇 개의 점과 선을 기본으로 한 손가락으로 그려야하기 때문에 오랜 시간동안 배우고 연습해야만 그려낼 수 있다. 종이에 기록하는 것과 달리 쉽게 지워질 수 있지만, 누구나 어디서든 의사 전달을 할 수 있도록 하는데 모래그림은 제 역할을 해냈을 것이다.

04. 바누아투의 시장 풍경. 2013년 방문했던 바누아투는 투박하고 거친 모습과 세련된 모습이 공존하는 곳이었다. ⓒ유네스코아태무형유산센터

 

전통을 이어나가려는 노력

복잡한 선으로 이루어진 모래그림을 그리는 것은 그 안에 내재된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고 있어야 가능하다. 그래서 그림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가지고 그 의미를 깊이 이해할 수 있어야 비로소 모래그림 장인이라고 불릴 수 있고, 장인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림의 의미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모래그림을 자유롭게 그리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실제로 도시화가 많이 진행된 지역에서는 집에서 모래그림을 배우는 아이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본래 가정에서 구전되던 전통이 더이상 이어지지 않고 있어 전승에 어려움이 커지는 것인데, 다행인 것은 바누아투문화센터 같은 전문기관에서 특별활동 등을 통해서 모래그림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바누아투의 어린아이들은 원한다면 장인으로부터 모래그림을 직접 보고 배우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그리고 박물관 등 사람들이 많이 찾는 기관에서는 관람객을 위한 모래그림 전시도 진행한다.

바누아투의 모래그림은 2008년에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대표목록에 등재되었고, 이 목록은 인류 공동의 유산인 전통문화를 함께 보호하는데 노력을 기울이고자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대표목록으로 등재가 결정되면 해당 국가는 등재된 유산을 보호하기 위해서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는지를 국제사회에 보고해야하는 의무가 생긴다. 바투아누에서는 유네스코의 지원으로 학교 교육 커리큘럼 개발, 모래그림 데이터베이스 구축 등 보호 사업이 진행되었고, 2004년부터는 모래그림 축제도 개최한다고 한다

05. 06. 완성된 모래그림. 복잡한 선으로 이루어진 모래그림을 그리는 것은 그 안에 내재된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고 있어야 가능하다. ⓒ유네스코아태무형유산센터

모래그림의 기하학적 무늬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덕분에 모래그림을 모티브로 장식품이나 기념품 등을 제작해 판매하는 등 상업적인 이용도 많아지고 있다. 전통의 적극적인 활용은 환영할만한 일이겠지만, 현지에서는 모래그림이 의미를 잃어버리고 단순히 디자인으로만 활용되는데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의미를 모른다면 그저 아름다운 무늬로만 보이겠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와 이야기들을 알면 모래그림은 언어이고, 문화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림 속에 담긴 상징과 본래의 기능도 함께 알리기 위한 노력도 이루어지고 있다. 모래그림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바누아투의 문화를 이해하는 일 인 동시에 인류 공동의 유산인 모래그림의 전승에 기여하는 것이기도 하다.

 

글.차보영 (유네스코아태무형유산센터 연구정보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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