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조선 왕릉에 차 한 잔 올리며
- 작성일
- 2015-11-02
- 작성자
- 문화재청
- 조회수
- 2375
지난 해설을 보낸 뒤, 아직은 추위가 한창이었지만 털옷과 목도리로 완전무장을 하고 깨끗한 물 끓여 보온병에 담고 헌다잔과 우전 한 봉지를 챙겨서 태조릉(건원릉)이 있는 동구릉으로 향했다. 다시 가슴이 뛰었다. 물론 왕릉투어에 앞서 인터넷을 뒤져 조선왕계도, 조선왕조일람표와 왕릉 명, 역대 왕의 재위기간 등을 꼼꼼히 알아봤다
잎을 다 떨구어 낸 떡갈나무, 오리나무 숲길을 지나면 붉은 홍살문이 기다리듯 다가오고, 참도 끝에 당당하게 자리 잡은 정자각은 내집 같은 정겨움으로 반긴다. 그 뒤로 우아하고 웅장하고 정갈한 능이 보이고 푸른 소나무는 변함없이 능을 기품 있게 보듬어 안고 있다.
어느 한 시대에 한 나라를 통치하며, 만백성이 그 앞에서 엎디어 높임을 받던 왕과 왕비들. 재위 시의 역사며 일화, 왕으로서의 삶과 인간으로의 삶 등에 대해서 앞뒤 없이 시공을 넘나들며 생각이 분주하다. 이럴 땐 복잡하게 생각 말고 단순해지자. 왕이 누린 권력과 시시비비는 역사에 맡기고, 인간 왕으로서 마주하고 싶다. 왕이 지켜야 하는 많은 법도와 그 무거운 짐과 고뇌에 대해서….
왕이기에 못한 것들, 아니 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연민이 생긴다. 능이 잘 보이는 곳에 차석 깔고 정성스레 차 한 잔 우린다. 찻잔에 향이 피어오른다. 정성껏 차 한 잔 올린다. 맑은 차향 흠향하시고 영혼을 맑히소서.
40기의 왕릉 중, 현재 비공개릉 3기가 있다. 3기 중 서삼릉의 휘릉은 처음엔 들어가지 못하고, 두 번째 학술팀에 합류하여 참관하였고, 나머지 2기, 온릉(중종의 원비, 단경왕후)과 장릉(인조, 인조왕비, 인열왕후)은 공개릉으로 공시가 되길 기다리거나, 다시 학술팀과 연계가 되면 참관할 예정이다.
38기를 석 달 동안 투어하면서 우리 부부는 참으로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많은 길을 달렸고 또 걸었다. 우리의 대화는 더욱 풍부해졌고 행복했다. 찾아 가는 길을 의논하고, 왕릉과 관련된 또다른 볼거리를 찾고, 덤으로 그 지역의 먹거리도 한 몫 하면서 연속극 기다리듯 항상 그 다음이 기다려지는 행복한 시간들은 가슴에 꼭꼭 와 박히며 꽃으로 솔솔 피었다.
그동안 찾아 뵌 왕과 왕비들을 다시 만나 뵙게 되는 5월 4일, 종묘대제에서 제례를 지켜보는 것으로 조선 왕릉 투어의 마무리를 하였다. 그날 그분들은 편안한 모습으로 오시어 다시 따뜻한 차 한 잔을 드시었다. 해질녘, 종묘의 너른 마당에 싱그러운 바람이 불었다. 나의 왕릉투어는 그렇게 끝났다.
글.김순희 (경기도 김포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