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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소통과 공감의 시대, 대중은 소탈한 사람을 동경한다
작성일
2015-09-01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4477

소통과 공감의 시대, 대중은 소탈한 사람을 동경한다. 높은 지위에 있거나 유명인들 가운데서 솔직하고 소탈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는 사회적 현상이 생겨나고 있다. 그동안 우월한 지위나 많은 부富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흔하게 권위주의적인 태도를 보여 온데 대한 식상함이, 이제 소탈한 모습을 보이는 공인들에 대한 반가움으로 연결되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너도 나도 자신의 소탈함을 부각시키려는 현상도 나타난다. 하지만 진정한 소탈함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만을 의식하여 꾸며진 것 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의 변화와 함께 이루어질 때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받을 수 있다.

 

소탈한 '백선생'이떴다

주부들 사이에서 '백선생'으로 불리는 백종원 씨의 인기가 예능인들을 뛰어넘었다. 수많은 시청자들이 그에게 빠져들었던 비결에는 '소탈함'이라는 콘셉트가 자리하고 있었다. 요리를 끝내고 "참 쉽쥬?" 하는 한 마디는 평범한 누구에게나 나도 요리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곤 했다. 비싸고 화려한 재료 없이 냉장고나 주방 구석에 있던 소박한 재료들로도 그럴듯한 요리를 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충청도 말투를 섞어가며 시청자들과 실시간으로 허물없는 대화를 나누고, 때로는 요리가 실패하더라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뜻밖의 모습까지 보여주는 백종원. 시청자들은 그를 보며 요리라는 것이 셰프나 부유한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라 자신도 할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것임을 발견하는 기쁨을 맛보았던 것이다. "하프 마요네즈를 먹을 거면 뭐 하러 마요네즈를 먹어요?", "설탕 안넣어서 맛없는것보다 설탕 많이 넣어서 맛있는 게 낫잖아요." 이런 '금기어'들을 주저 없이 쏟아내는 그의 솔직한 모습은 마치 이웃 아저씨가 밥상을 준비하는 장면 같았다.

기억을 떠올려보면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해 한국을 방문했을 때 보여주었던 소탈한 모습도 신자들 뿐 아니라 국민 전체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교황이 된 이래 권위를 내려놓고 낮은 곳으로 임해온 교황의 얘기는 잘 알려져 있었지만, 한국 방문 기간동안 보여준 그의 모습은 상상 이상의 것이었다. 방한 일정의 대부분을 소외되고 어려운 약자들을 만나는데 쓰는가 하면, 이동 도중 차에서 내려 세월호 유가족의 손을 잡아주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소형차를 타고 다니는가 하면, 숙소도 교황청대사관을 이용하고 식사도 검소하게 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몸을 낮추는 교황을 우리는 만날 수 있었다. 당시 국민들 사이에서 만들어졌던 '교황 신드롬'은 우리가 얼마나 그런 리더십을 반겼는지를 드러내는 현상이었다.

 

왜 소탈함에 열광하는 것일까

우리는 왜 이렇게 소탈함을 반기고 있는 것일까.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소탈하다는 말은 덕담처럼 널리 사용되고 있다. 언론에서 고위공직자나 CEO 등의 인물평을 할 때면 가장 많이 등장하는 표현 가운데 하나가 '소탈하다'는 것이다. 사실 소탈하다는 것이야 대단히 주관적인 평가이니 얼마나 그 사람만의 장점인지를 알 수 없지만, 그만큼 소탈함을 개인의 미덕으로 간주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다. 특히 지위가 높은 사람의 소탈함이 이렇게 환영을 받는 현실은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소탈하지 못한, 즉 권위주의적인 문화가 팽배했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는 오래 전부터 권위적 위계에 따라 사회가 편성되고, 문화적으로 이런 권위 관계를 당연시하는 전통이 있어왔다. 우월한 집단에 속해있는 개인은 권위주의 사회에서의 사회화 과정을 통해 권위적 태도를 갖게 되고, 자기보다 약한 사람들에 대해 우월적 의식을 드러내곤 한다. 그래서 권력을 가진 고위공직자나 정치인들은 지위가 낮은 사람들을 호령하는 듯한 모습을 흔하게 보여왔고, 경제적으로 부를 누리는 사람들은 '갑甲'의 위치에서 약한 '을乙' 위에 군림하는 모습을 또한 보여 왔다. 비행기 안에서 사무장을 내리게 했던 항공사 부사장, 법정에서 나이 많은 피고인에게 막말을 해대는 판사, 아파트 경비원에게 모멸적인 언행을 하는 주민, 걸핏하면 "내가 누군 줄 아느냐"고 하는 정치인 등 곳곳에서 '갑질'을 하는 권위주의적 태도에 젖은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절제되지 못한 권위의 단면들이다.

03. 지난 4월 한 백화점 지하주차장에서 모녀 고객이 주차요원을 무릎 꿇리고 폭언을 한 사실이 알려지며‘갑질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연합콘텐츠 04. 전북대 무용학과 학생들이 외부 공연행사에 학생들을 강제 동원하고 고액 과외를 받도록 강요하는 등 학생의 인권을 무시한 전공교수의 수업을 거부하며 퇴출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콘텐츠 05. 경남 창원에서 활동하는 한 변호사가 창원지방법원 정문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 피켓에는‘ 자백하면 벌금형으로 하겠다'고 막말한 판사의 징계를 요구하는 문구가 적혀 있다. ⓒ연합콘텐츠

특히 우리 사회에서 눈에 띄는 것이 사회적 체면을 중시하는 관행이다. 우월적 지위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흔히 자신의 서열적 신분이나 지위에 따르는 사회적 체면을 강조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 한다. 그러나 이같이 사회적 체면을 통해 자신을 확인하려는 모습은 자기의 내면이 그만큼 허약하거나 비어있다는 얘기이다. 자신의 내면이 차있는 사람은 겉치레식의 사회적 체면에 집착하지도 않고 결코 다른 사람을 우습게 알거나 차별하지 않는다. 자기가 내세울 것 이 외형적인 권위 밖에 없는 사람이 자기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을 하대하는 모습을 드러내는 것 이다. 알려진 사람들의 소탈함이 오늘 반갑게 받아들여지는 현상은, 역설적으로 그런 모습이 그동안에는 그만큼 귀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소탈함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소탈함이 갖는 힘은 공감능력에 있다. 솔직하고 소탈한 태도는 사람들 관계 사이에서 존재하는 벽을 허물고 서로의 마음을 보다 쉽게 통할 수 있게 해준다. 권위로 가로막아 왔던 마음의 벽이 무너지면 사람들은 소통을 하고 공감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보면 소탈함은 단지 개인의 태도를 넘어 소통과 공감이라는 우리 시대의 화두와도 맞닿아 있다.

다만 여기서 소탈함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장자』내편의 '소요유逍遙遊'를 보면 전설적인 새 이름인 붕鵬의 이야기가 나온다. "북극 바다에 고기가 있는데 그 이름을 곤鯤이라 하였다. 곤의 길이는 몇 천리나 되는지 알 수가 없다. 그것이 변하여 새가 되면 그 이름을 붕鵬이라 하는데, 붕의 등도 길이가 몇 천 리가 되는지 알 수가 없다. 붕이 떨치고 날아오르면 그 날개는 하늘에 드리운 구름과도 같았다. 이 새는 태풍이 바다 위에 불면 비로소 남극의 바다로 옮아갈 수 있게 된다. 남극 바다란 바로 천지天池인 것이다." 여기서 가장 낮은 곳인 깊은 바다에 사는 곤鯤이란 물고기가 가장 높은 곳을 나는 붕鵬이란 새로 변화한다. 현재의 구속된 나로부터, 가장 높은 곳에서 세상을 조망할 수 있는 자유로운 나로 변해가는 과정을 장자는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아마도 진정한 소탈함이란 이같이 자신에 대한 구속에서 벗어나 절대적인 자유를 추구함으로써 가능한 것일지 모른다.

06. 빈센트 반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 고흐를 위대한 화가의 반열에 오르게 한 걸작으로 노동으로 정직하게 수확한 양식을 나누는 농부 가족의 모습이 감동적으로 그려졌다. ⓒ반 고흐 미술관 07. 빈센트 반 고흐는 벨기에 탄광촌 보리나주에서 목격한 광부들의 어려운 실상을 목격한 뒤 하숙집을 나와 오두막에서 지내며 짚더미에서 잠을 자는 생활을 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담은 그림들을 많이 그렸다. ⓒ위키백과

1878년 겨울, 빈센트 반 고흐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성경을 들려주기 위해 벨기에 탄광촌 보리나주로 간다. 그가 탄광촌에서 목격한 광부들의 어려운 실상은 충격적인 것이었다. 그래서 고흐는 이렇게 말했다. "광부들과 친해지려면 광부의 성품과 광부의 기질을 가져야 한다. 위선적이거나 권위적인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된다." 그러고서 고흐는 편한 하숙집을 나와 오두막에서 지내며 짚더미에서 잠을 자는 생활을 했다. 그리고 고흐는 가난한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담은 그림들을 많이 그렸다. 다른 사람들, 특히 자신보다 어려운 환경에 있는 사람들과 격의 없는 관계가 되는 일은 겉으로만 위선적인 모습을 보인다고 해서 되는 것 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의 변화가 있어야 가능함을 말해주는 얘기이다.

진정한 솔직함과 소탈함은 타인을 의식해 의식적으로 만들어내는 외형적인 형상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 포장된 소탈함은 결국에는 허상만을 남기고 자기를 더 소외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 권위나 격식 같은 세속적인 가치들에 지배당하고 구속받지 않고 자기 내면의 자유를 이룰 때만이 진정으로 소탈한 자기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소탈함이란 '나'의 자유를 찾는 일이기도 하다.

 

글. 유창선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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