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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품격과 예술혼이 집결된 기록문화, 디자인의 결정체. 편액·주련·기문
작성일
2015-09-01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4829

품격과 예술혼이 집결된 기록문화, 디자인의 결정체. 편액·주련·기문. 우리는 옛집에 들어서면 집의 모양과 크기, 기둥의 형태 등 건축물을 살피곤 한다. 그러나 잠시 눈을 들어보면 거기에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하던 세계가 펼쳐져 있다. 선조들은 뜻을 공유하고자 하는 바를 나무판에 글로 쓰거나 새겨서 건물의 필요한 위치에 걸어두었다. 현판懸板이 그 것이다. 건물의 이름을 새겨 건 편액, 아름다운 풍광을 읊은 글이나 선현의 가르침 등을 2연 또는 4연 의 댓구對句로 써서 기둥柱에 걸어둔 주련, 건축과 관련된 기록이나 스승의 덕과 학문을 칭송한 기문 등 현판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가장 일반적인 것이 편액과 주련으로 궁궐, 사찰, 사대부가에는 필수요소로서 오늘날까지도 많이 남아있다. 01. 강릉 선교장(중요민속문화재 제5호)의 정자인 활래정에는 ‘활래정’이라 새긴 편액이 판의 형태와 각자체를 달리하여 여 섯 개가 걸려있다. ⓒ장명희

 

철학과 정신세계를 담아 품격 있게 소통하다

현판에 대한 기록은『삼국사기』에도 등장하고 있으니 그 역사가 깊다. 고택이나 정자에 의례히 몇 점씩은 걸려 있기 마련이지만 장소의 사회적 의미가 깊은 곳, 풍광이 아름다운 곳일수록 서까래 아래로 온통 돌아가며 각종 현판들이 빼곡히 걸려있기도 하다. 잘 알려진 남원의 명소 광한루(보물 제281호)는 1419년 명재상 황희가 건립하였는데 뛰어난 경관에 삼신산으로 일컬어지는 상징물 등이 장소의 신비함을 더하여 문인 명필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오랜 세월 전란이며 세파를 겪었음에도 현재 남아있는 것들만 200여 점에 이르니 얼마나 많은 휘호가 남겨졌을지 짐작이 간다. 현판에 각인된 이름만 살며보아도 송강 정철, 점필재 김종직등 시대를 대표하던 이름이 즐비하여 광한루가 얼마나 대중의 사랑을 받아 온 장소인지 알 수 있다. 춘향과 이도령의 사랑의 배경 장소가 된 것에는 다 그런 연유가 있는 것이다.

안동에 있는 조선 후기 학자 대산 이상정 선생의 종택에 걸린 당호 편액은'폐려弊廬'다. 누추한 오두막집이라는 의미이지만, 타원형 판에 세로로 새긴 전서체는 유연하면서 당당해 보여, 오히려 스스로 선택한 안빈낙도의 자신감과 시속時俗의 틀을 벗은 자유가 느껴진다. 그런가하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강릉 선교장(중요민속문화재 제5호)의 정자 활래정에는 똑같은'活來亭'이 쓰인 6개의 편액이 각기 서체와 글자색을 달리하여 걸려있다. 왜 같은 이름을 새긴 편액을 여섯 개나 걸었을까 의아할 수도 있겠으나 이는 선교장이 당호에 '장莊'을 붙일 정도의 부를 갖춘 지방의 호족이었다는 것과 금강산 관람의 관문에 해당하는 곳에 자리 잡아 당대 문화예술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02. 봉선사 큰법당의 한글편액과 주련. 대웅전에 해당하는 법당에는‘큰법당’이라고 쓰인 편액이 걸려있을 뿐 아니라 법당 네 기둥에도 한글 주련이 걸려있다. ⓒ장명희

수많은 과객들이 선교장 곳곳에 휘호를 남겼으니 그 이름은 추사 김정희, 흥선대원군, 해강 김규진, 농천 이병희 등 화려하기 이를데 없다. 여 섯 개의 편액은 각기 판의 형태, 글 새김의 정도, 각자체, 색깔 등이 저마다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어 과연 드높은 문화향유의 결정체임을 느끼게 한다.

03. 안동 영호루의 중신기문. 정도전, 이황, 김종직 등이 휘호를 남겼다. ⓒ장명희

활래정에는 편액뿐 아니라 주련도 18점이나 걸려 있다. 주련의 내용(일부)은 이러하다. '山明神境悟林肅道心高(산이 수려하니 정신의 경지가 깨우쳐지고, 숲이 엄숙하니 도심이 높아진다)' 연세대 국학연구원의 김영봉 교수는 '수려한 산수 자연 속에서 정신적인 수양을 하면서 도를 닦는 은자의 생활을 묘사하였다'고 풀이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김제 남강정사(전라북도 시도기념물 제64호)의 주련은 그 내용과 형식이 우리가함께 새길만하여 일부를 소개한다. '勤爲無價寶愼是護身符(부지런함은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배고, 삼가고 조심함은 자신을 보호하는 부적이다) / 澹泊以明志寧靜以致遠(욕심 없이 마음이 깨끗해야 뜻을 밝힐 수 있고, 마음이 평안하고 고요해야 원대함을 이룰 수 있다)' 남강정사는 산연공山淵公 장한두張漢斗가 1800년대 초에 지은 것으로 전해지는데 정면 4칸의 소박한 초가집이다. 주련을 판에 새겨 걸지 않고 기둥에 직 접 새긴 것이 독특한데 글귀는 『명심보감』등에서 발췌하여 산연공이 직접썼으리라 짐작된다.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바라는 삶의 자세를 현학적인 치장 없이 담백하게 담고 있어 마음을 울린다. 이런 가르침을 일상에 새기며 자랐기에 그 아들 장태수가 1910년 일제의 경술병탄에 항거하여 단식으로 순절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04. 4칸의 소박한 초가집인 남강정사(전라북도 시도기념물 제64호)의 주련은 기둥에 직접 새긴것 이 독특하다. ⓒ장명희 05. 강릉 선교장(중요민속문화재 제5호)의 정자인 활래정의 편액과 주련. 활래정에는 편액뿐 아니라 주련도 18점이나 걸 려 있다. ⓒ장명희

 

내용과 틀이 조화된 디자인의 결정체

현판의 서체는 용도와 글의 내용에 따라 극히 절제되고 단정하기도 하고, 한없이 자유분방한 호기를 담고 있기도 하며, 때로는 섬세하고 유려한 모습으로 그 뜻을 담아낸다. 편액은 건물의 얼굴이기에 그 의미가 잘 전달되어야 하므로 별도로 액체額體라 하여 필획이 굵고 뚜렷한 강건한 서체를 발전시켰으며 해서楷書가 많이 쓰였다. 주련은 서정적이거나 철학적 내용을 선대의 훌륭한 글씨를 집자集字하거나 당대의 명필이 직접 써서 새겼는데 행서나 초서로 쓰이는 경우가 많았다. 형태는 네모나거나 둥근 판재에 글씨를 써서 장식 없이 담백하게 붙이기도 하지만 장식을 할 경우에는 변죽, 즉 테두리를 기하문, 당초문, 동·식물, 길상문 등의 다양한 무늬를 단청으로 장식하여 두르기도 하며 더 나아가 가로갓이나 세로갓을 봉황문, 당초문, 구름, 용 등의 초각으로 장식하는 등 그 의미에 맞게 형태와 색깔, 무늬를 두기도 하였다. 현판은 글의 내용과 서체와 판의 디자인이 종합적으로 어우러진 품격 높은 예술품이 아닐 수 없다.

06. 안동 이상정 선생의농암종택에 걸린 편액과 뒷면의 기문. 타원형 판에 세로로 새긴 전서체(篆書體)가 유연하면서 당당해 보인다. ⓒ장명희

 

당대의 생생한 역사 기록물

판에 글씨를 써서 걸어두었다는 것은 다른 이들에게 보여 알리고자 함이니 현판은 '매체'였다. 교류하는 인사들이 학문과 철학을 나누며 그 감상을 남긴 것 또는 집주인의 철학, 희망, 자연관의 기록, 각종 건물의 역사나 유래를 기록하거나 신축·중건을 한 과정과 그 일을 위해 애쓴 사람들 및 비용을 십시일반 부담한 이들의 이름을 기록한 기문, 상량문 등도 있으며 심지어 건물의 기와를 바꾸며 일 의 전말을 기록한 것도 있다. 그러니 그 내용은 당시의 풍습, 예법은 물론 물가까지도 추적이 가능한 생생한 역사기록일 뿐 아니라 가문의 학문과 교류의 수준을 드러내는 증거로써 자부심의 근원이기도 하다.

07. 광한루(보물 제281호)에는 200점 이 넘는 현판들이 걸려 있다. ⓒ장명희

 

현대인이 되살려 누려야 할 삶의 품격

이처럼 현판은 소중한 가치를 지니는 기록물이지만 한문인데다가 조형성에 치중하여 이체異體로 쓰거나 흘려 쓴 경우가 많아 웬만한 한문 실력을 가진 이들조차도 읽기 어려운 정도니 일반인들은 아예 쳐다볼 엄두도 내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현판에 담긴 역사와 풍류, 해학, 문화, 예술세계를 이해하기는 커녕 순서가 바뀌거나 댓구對句가 맞지 않는 짝이 걸려있어도 집주인조차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이 현실이다. 아무리 좋은 것이어도 사람들과 더불어 소통하고 향유될 때 비로소 생명력을 가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무척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중 요즘은 드물게나마 한글 현판도 보게 된다.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봉선사는 절 입구 일주문에 걸린 편액은 '운악산 봉선사'이고 대웅전에 해당하는 법당에는 '큰법당'이라고 쓰인 편액 뿐 아니라 네 기둥에 걸린 주련도 한글이다. 이는 한자에 서툰 현대인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편하게 다가가려는 의지의 발현이라 하겠다. 또 주로 상업공간에 걸려 있는 문구로 '네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는 성경구절을 쓴 현판을 보았을 때는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는 누군가에게는 큰 위로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글현판이 한문이 가지는 풍부한 함의含意를 담기에 부족하다는 견해도 있겠으나 일단 명확한 소통과 공감이 가능하다는 면에서는 가능성을 기대할 만하다는 생각이다. 오늘의 우리는 자신의 철학이나 서정을 종합적인 디자인 감각으로 품격 있게 담아 전달하는 방법을 잊고 있다. 한옥이 좋겠지만 아파트면 어떤가. 한문도 좋지만 한글이면 어떤가. 전하고 싶은 뜻을 적절한 틀에 담아 삶의 품격과 문화의 향기를 풍기며 살아볼 일이다.

 

글. 장명희 ((사)한옥문화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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