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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전통의례, 지금의 예술로 되살아나길. 국악인 박은영
작성일
2015-09-01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4264

전통의례, 지금의 예술로 되살아나길. 국악인 박은영. “우리 전통문화에 관심 가져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여전히 뜨거운 햇볕이 쨍쨍 내리쬐던 지난 8월. 연구실에서 만난 박은영 국악인 겸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는 이마의 땀을 닦는 와중에도 고마움을 표시했다. 사람들에게 관심 받기 힘든 전통문화를, 그것도 가장 클래식한 궁중의례 이야기를 들으러 와줘서 마음이 즐겁다고 했다. 그녀의 인사를 통해, 전통문화를 알리고자 하는 박 교수의 간절함이 얼마나 큰 지 느낄 수 있었다. 궁중무용을 발굴하고, 더 나아가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는 박은영 교수.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전통을 복원하고 그것을 계승하는 것 이 얼마나 찬란하고 아름다운 과업인지 알 수 있었다. 지금부터의 이야기는, 그 소중한 사명에 관한 것이다. 01.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던 지난 8월, 연구실에서 만난 박은영 교수는 이마의 땀을 닦는 와중에도 ‘사람들에게 관심 받기 힘든 전통문화를, 그것도 가장 클래식한 궁중의례 이야기를 들으러와줘서 마음이 즐겁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김병구

 

경상도 산골 소녀, 우리 춤을 만나다

경상남도 산청의 한 산골에서 나고 자랐다. 있는 것이라고는 산과 논, 개울과 시원한 바람 뿐이던 곳. 그곳에서 날마다 자연을 벗 삼던 소녀 박은영은 어느 날 진주 개천에서 예술제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호기심 반 설렘 반으로 지원을 하게 됐다. 막상 예술제에 참가하겠다고는 했지만 무엇을 보여줘야 할까 싶었다. 고민 끝에 바구니 춤을 추기로 한 그녀. 조금은 어색하지만, 그래도 그녀만의 수줍음과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사람들 앞에서 사뿐 사뿐 춤을 췄다. 수줍은 소녀의 몸사위가 모두를 감동시켰는지, 그녀는 첫 무대에서 동상을 받고 괜스레 가슴이 쿵쾅거렸다. 춤이 좋아진 거다.

이후 서울로 이사를 온 그녀는 집에서 가까운 예원중학교에 진학하게 되고, 그곳에서 춤의 기본을 다진 후 서울예고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춤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화여대 무용과에 입학하고, 졸업을 앞둔 4학년에 그녀 삶에 큰 영향을 미친 고故김천흥 선생으로부터 <처용무>를 배우기 시작했다.

"당시 선생님 연세가 73세였어요. 지금도 기억에 남는 건 노쇠한 선생님께서 연습실 한 켠에서 혼자 계속 연습하시는 모습이었어요. 저희와 함께 수업을 해도 혼자 끝없이 연습하셨죠. 어린마음에 참 특이한 분이다, 싶기도 했어요. 당시 선생님께 처용무를 익혔어요. 그러다가 4학년 때 취업을 고민하는 시기가 왔죠. 한 선배가 국립국악원을 가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해서 시험을 봤는데 떨어졌어요. 심사위원인 김천흥 선생님께서 보법에 수정할 부분이 있다고 하시더군요. 그리고 직접 알려주신다며, 댁에서 <춘앵전>을 가르쳐주셨어요. 이후 국악원에 합격해 단원이됐죠."

02. 연구실 한쪽에 곱게 놓여있는 궁중무용 의상. ⓒ김병구 03. 공연 사진과 이수증(중요무형문화재 제40호) 등이 책장 위 에 놓여있다. ⓒ김병구

 

많고 많은 춤 중에, 가장 돋보이지 않는 궁중무용

그 때부터 고故김천흥 선생과의 작업이 시작됐다. 궁중무용도 배우고논문 지도도 받았다. 논문 주제는 <춘앵전>에 대한 것이었다. 이후 박은영 교수는 '네 논문대로 <춘앵전>을 공연해보면 어떻겠냐'는 스승의 제안을 따라 오랜 시간 연구한 그대로 <춘앵전>을 무대 위에 선보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선생님께서 기특하게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궁중무용은 사람들의 관심 밖에 있었죠. 무용수가 돋보이지도 않고, 그저 지루하다고 여겨졌으니까요. 하지만 그때 저는 선생님이 알려주시는 것들을 묵묵히 다 소화했어요. 글로 정리해야 할 내용들이 있으면 현대식으로 쓰지않고 선생님의 옛 표현을 그대로 활용했죠." 국악원에 들어간 후 그녀는 중요무형문화재 제40호 <학연화대합설무(학무)>를 전수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처용무>와 <학무>를 모두 배운 후 고故김천흥 선생으로부터 다시 <춘앵전>을 사사받았다. 이번에는 좀 더 깊이 있게 배웠다. <춘앵전>은 문화재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훗날 국가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할 날이 올 것이라는 스승의 권유 때문이었다. 실제로 그녀에게 궁중무용을 배우려고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이 <처용무>와 <춘앵전>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인다는게 박 교수의 설명이었다. 그렇게 <처용무>와 <학무>, <춘앵전>을 모두 배우게 됐다. 박은영 교수는 "그 좋은 춤을 다 두고, 10년 넘게 궁중무용만 하게 된 것"이라며 당시를 떠올렸다. '그 좋은 춤' 이란, 무용수가 돋보이고 움직임이 많으며 보는 사람들에게 매혹을 느끼게 하는 우리의 모든 춤을 일컫는다.

04. 2005 올해의 예술상(전통예술 부문) 수상 트로피. ⓒ김병구 05. 지난 4월 23일 국립극장 해오름에서 개최된 ‘2015 우리 춤 전시회’ 포스터. ⓒ한국예술종합학교

사실 궁중무용을 계속 배우는 게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힘들 때마다 그녀가 다시 마음을 다잡을 수 있 던 것은 그녀의 스승 고故김천흥 선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선생님께서 너무나 많은 사랑을 주셨다"며, "하루는 제게 '네가 열심히 하면 좋겠다. 내가 그동안 갖고 있던 모든 자료를 다 주겠다'고도 하셨다"며 고故김천흥 선생과의 추억을 떠올렸다. 저를 정말 많이 챙겨주셨어요. 제가 바빠서 선생님을 못 찾아뵐 때면 오히려 선생님께서 제게 찾아오셔서 자료들을 주고 가시기도 했죠. 아마 저희 아버지와 같이 식사한 횟수보다 선생님과 함께 식사한 횟수가 더 많을 걸요?"

 

<학연화대처용무합설> 복원… 우리 것 정확히 알기 위한노력

"우리 문화의 발전에 대한 사명의식이 없으면 궁중무용을 오랫동안 하기 힘들어요. 제가 궁중무용을 선택한 이유는 이 것이 진짜 전통이기 때문이에요. 클래식이잖아요. 맛을 알기만 하면 누구나 즐길 수 있죠. 궁궐이 없어진 이 시점에 계속 궁궐을 주장할 수는 없어요. 시대에 맞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춤으로 변화하는 것이 이 시대, 제가 할 사명이라고 생각했죠."

그 사명을 업고 그녀는 올해 광복 70년을 맞는 자리에서 <학연화대처용무합설> 속 동연화관을 발굴하며 『악학궤범』속 유산을 복원했다. <처용무> 때의 동연화관 무동 가면 10개를 최초로 복원한 것이다.

<학연화대처용무합설>은 독특한 조합을 이루고 있다. 말 그대로 학 춤과 연화대 춤, 그리고 처용무를 한 무대에서 공연한다는 의미인데, 학무가 도교적이고 처용무가 유교적, 동연화관을 쓴 10인이 불교적이라는 점에서 이 안에 유불선 모두를 품고 있는 셈이다.

06. 시대에 맞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춤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는 박은영 교수. ⓒ김병구

궁중무용은 현대인들에게도 아주 유익합니다. 바쁜 삶에 평화로움과 여유, 바른 자세를 심어주죠.

"광복 70년에 발굴작업이 잘 이뤄져서 정말 기뻤어요. 하지만 여기서 멈추지 말고 더 고전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2년 전부터 『악학궤범』을 깊이 들여다보고 있어요. 무용수로서 복원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되살려야겠다고 생각했죠. 이번 복원에서 음악은 재현하지 않았어요. 이건 아마 10년은 해야 할 과제이지 않나 싶어요. 함께 연구할 파트너를 구하는 것도 시급하죠"

연구할 파트너를 만들기 위해, 더 나아가 궁중무용을 계승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국내 궁중무용 분야의 유일한 교수인 그녀는 학생들에게 더 많은 것들을 알려주고자 애를 쓴다.

"처음에는 궁중무용이 재미없다며 힘들어하던 학생들도 지금은 관심을 갖고 의궤를 공부한다"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 박은영 교수. "살아있는 궁궐에서 궁중무용을 상시 보여주고 싶어요. 봄, 가을에 정기적으로 한 번씩, 대중들에게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아무래도 창경궁이 좋겠죠? 궁중무용은 현대인들에게도 아주 유익합니다. 바쁜 삶에 평화로움과 여유, 바른 자세를 심어주죠. 초등학생부터 노년층에 이르기까지 모두 부담 없이 배울 수 있어요. 우리 전통문화도 이해하고 정신도 평화롭게 해주는 이 경험들을 많은 사람들이 함께 느끼기를 바라죠. 우리 전통의례가 지금의 예술로 생동감 넘치게 되살아났으면 합니다."

 

글. 황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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