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전통의례, 지금의 예술로 되살아나길. 국악인 박은영
- 작성일
- 2015-09-01
- 작성자
- 문화재청
- 조회수
- 4264
경상도 산골 소녀, 우리 춤을 만나다
경상남도 산청의 한 산골에서 나고 자랐다. 있는 것이라고는 산과 논, 개울과 시원한 바람 뿐이던 곳. 그곳에서 날마다 자연을 벗 삼던 소녀 박은영은 어느 날 진주 개천에서 예술제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호기심 반 설렘 반으로 지원을 하게 됐다. 막상 예술제에 참가하겠다고는 했지만 무엇을 보여줘야 할까 싶었다. 고민 끝에 바구니 춤을 추기로 한 그녀. 조금은 어색하지만, 그래도 그녀만의 수줍음과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사람들 앞에서 사뿐 사뿐 춤을 췄다. 수줍은 소녀의 몸사위가 모두를 감동시켰는지, 그녀는 첫 무대에서 동상을 받고 괜스레 가슴이 쿵쾅거렸다. 춤이 좋아진 거다.
이후 서울로 이사를 온 그녀는 집에서 가까운 예원중학교에 진학하게 되고, 그곳에서 춤의 기본을 다진 후 서울예고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춤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화여대 무용과에 입학하고, 졸업을 앞둔 4학년에 그녀 삶에 큰 영향을 미친 고故김천흥 선생으로부터 <처용무>를 배우기 시작했다.
"당시 선생님 연세가 73세였어요. 지금도 기억에 남는 건 노쇠한 선생님께서 연습실 한 켠에서 혼자 계속 연습하시는 모습이었어요. 저희와 함께 수업을 해도 혼자 끝없이 연습하셨죠. 어린마음에 참 특이한 분이다, 싶기도 했어요. 당시 선생님께 처용무를 익혔어요. 그러다가 4학년 때 취업을 고민하는 시기가 왔죠. 한 선배가 국립국악원을 가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해서 시험을 봤는데 떨어졌어요. 심사위원인 김천흥 선생님께서 보법에 수정할 부분이 있다고 하시더군요. 그리고 직접 알려주신다며, 댁에서 <춘앵전>을 가르쳐주셨어요. 이후 국악원에 합격해 단원이됐죠."
많고 많은 춤 중에, 가장 돋보이지 않는 궁중무용
그 때부터 고故김천흥 선생과의 작업이 시작됐다. 궁중무용도 배우고논문 지도도 받았다. 논문 주제는 <춘앵전>에 대한 것이었다. 이후 박은영 교수는 '네 논문대로 <춘앵전>을 공연해보면 어떻겠냐'는 스승의 제안을 따라 오랜 시간 연구한 그대로 <춘앵전>을 무대 위에 선보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선생님께서 기특하게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궁중무용은 사람들의 관심 밖에 있었죠. 무용수가 돋보이지도 않고, 그저 지루하다고 여겨졌으니까요. 하지만 그때 저는 선생님이 알려주시는 것들을 묵묵히 다 소화했어요. 글로 정리해야 할 내용들이 있으면 현대식으로 쓰지않고 선생님의 옛 표현을 그대로 활용했죠." 국악원에 들어간 후 그녀는 중요무형문화재 제40호 <학연화대합설무(학무)>를 전수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처용무>와 <학무>를 모두 배운 후 고故김천흥 선생으로부터 다시 <춘앵전>을 사사받았다. 이번에는 좀 더 깊이 있게 배웠다. <춘앵전>은 문화재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훗날 국가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할 날이 올 것이라는 스승의 권유 때문이었다. 실제로 그녀에게 궁중무용을 배우려고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이 <처용무>와 <춘앵전>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인다는게 박 교수의 설명이었다. 그렇게 <처용무>와 <학무>, <춘앵전>을 모두 배우게 됐다. 박은영 교수는 "그 좋은 춤을 다 두고, 10년 넘게 궁중무용만 하게 된 것"이라며 당시를 떠올렸다. '그 좋은 춤' 이란, 무용수가 돋보이고 움직임이 많으며 보는 사람들에게 매혹을 느끼게 하는 우리의 모든 춤을 일컫는다.
사실 궁중무용을 계속 배우는 게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힘들 때마다 그녀가 다시 마음을 다잡을 수 있 던 것은 그녀의 스승 고故김천흥 선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선생님께서 너무나 많은 사랑을 주셨다"며, "하루는 제게 '네가 열심히 하면 좋겠다. 내가 그동안 갖고 있던 모든 자료를 다 주겠다'고도 하셨다"며 고故김천흥 선생과의 추억을 떠올렸다. 저를 정말 많이 챙겨주셨어요. 제가 바빠서 선생님을 못 찾아뵐 때면 오히려 선생님께서 제게 찾아오셔서 자료들을 주고 가시기도 했죠. 아마 저희 아버지와 같이 식사한 횟수보다 선생님과 함께 식사한 횟수가 더 많을 걸요?"
<학연화대처용무합설> 복원… 우리 것 정확히 알기 위한노력
"우리 문화의 발전에 대한 사명의식이 없으면 궁중무용을 오랫동안 하기 힘들어요. 제가 궁중무용을 선택한 이유는 이 것이 진짜 전통이기 때문이에요. 클래식이잖아요. 맛을 알기만 하면 누구나 즐길 수 있죠. 궁궐이 없어진 이 시점에 계속 궁궐을 주장할 수는 없어요. 시대에 맞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춤으로 변화하는 것이 이 시대, 제가 할 사명이라고 생각했죠."
그 사명을 업고 그녀는 올해 광복 70년을 맞는 자리에서 <학연화대처용무합설> 속 동연화관을 발굴하며 『악학궤범』속 유산을 복원했다. <처용무> 때의 동연화관 무동 가면 10개를 최초로 복원한 것이다.
<학연화대처용무합설>은 독특한 조합을 이루고 있다. 말 그대로 학 춤과 연화대 춤, 그리고 처용무를 한 무대에서 공연한다는 의미인데, 학무가 도교적이고 처용무가 유교적, 동연화관을 쓴 10인이 불교적이라는 점에서 이 안에 유불선 모두를 품고 있는 셈이다.
"광복 70년에 발굴작업이 잘 이뤄져서 정말 기뻤어요. 하지만 여기서 멈추지 말고 더 고전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2년 전부터 『악학궤범』을 깊이 들여다보고 있어요. 무용수로서 복원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되살려야겠다고 생각했죠. 이번 복원에서 음악은 재현하지 않았어요. 이건 아마 10년은 해야 할 과제이지 않나 싶어요. 함께 연구할 파트너를 구하는 것도 시급하죠"
연구할 파트너를 만들기 위해, 더 나아가 궁중무용을 계승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국내 궁중무용 분야의 유일한 교수인 그녀는 학생들에게 더 많은 것들을 알려주고자 애를 쓴다.
"처음에는 궁중무용이 재미없다며 힘들어하던 학생들도 지금은 관심을 갖고 의궤를 공부한다"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 박은영 교수. "살아있는 궁궐에서 궁중무용을 상시 보여주고 싶어요. 봄, 가을에 정기적으로 한 번씩, 대중들에게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아무래도 창경궁이 좋겠죠? 궁중무용은 현대인들에게도 아주 유익합니다. 바쁜 삶에 평화로움과 여유, 바른 자세를 심어주죠. 초등학생부터 노년층에 이르기까지 모두 부담 없이 배울 수 있어요. 우리 전통문화도 이해하고 정신도 평화롭게 해주는 이 경험들을 많은 사람들이 함께 느끼기를 바라죠. 우리 전통의례가 지금의 예술로 생동감 넘치게 되살아났으면 합니다."
글. 황정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