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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같은 책 1억 번 읽은 지독한 독서광, 김득신
작성일
2015-09-01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2476

같은 책 1억 번 읽은 지독한 독서광, 김득신. 조선시대 대표적 문장가로 꼽히는 백곡 김득신(1604∼1684). 그는 김시민 장군의 손자이자 경상도 관찰사를 지낸 김치의 아들로 증평에서 태어났다. 네 아명은 몽담이다. 노자처럼 훌륭한 사람이 돼야 한다. 태몽에 노자가 나타난 터라 대학자가 될 것이라 기대를 한 몸에 받았지만, 어려서 천연두를 앓은 김득신은 뛰어난 조상들처럼 총명하지 못했다. ‘십구사략’첫 단락이 26자에 불과하거늘, 사흘을 외우고도 구두조차 떼 지 못한단 말 이냐! 죄... 죄송합니다. 대대로 학식 높은 우리 집안에 어찌 저런 아이가 났는지 모르겠구만. 자네 걱정이 많겠어. 저리 미욱하면서도 공부를 절대 포기하지 않으니 전 오히려 대견스러운 걸요. 자고로 대기만성이라 하지 않습니까.김득신은 지혜는 부족했지만 외 워 읽기를 몹시 부지런히 했다. 김득신이 열여덟 살 되 던 해 그의 아버지는 경상도 관찰사로 떠나고… 아비가 없는 동안 글 읽기에 더욱 힘써야 한다. 네, 명심 하겠습니다. 그렇게 몇 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 글이 정말 네가 쓴것이냐? 정말 대견 하구나. 아버지께서 못난 저를 믿어주셔서 이렇게 글을 지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장성한 김득신은 참한 규수를 만나 혼례를 올린다. 부인! 혹시 내 책들 못보았소? 누가 다치운 모양인데… …… 여 기 하나 있군 그래. 책력이라… …… 그렇게 김득신은 첫날밤 밤새『책력』을 읽었다 김득신은 끝없는 노력 끝에, 39세의 나이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해 진사가 됐으며, 59세에는 증광문과(增廣文科)에 급제한다. 그동안 고생 많았소. 전 서방님께서 언젠간 과거에 합격 하실 줄 알았어요 성균관에 들어가서도 걸어다닐 때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나, 항상 글을 외웠다고 한다. 아이쿠. 앗! 조심하게 이 친구도 참, 책 좀 그만 보게나. 이처럼 독서에 열중했던 김득신은 독수기(讀數記)에 1만번 이상 읽은 옛글들을 기록했는데, 「 능허대기」는 2만5백 번, 「 목가산기」는2만 번, 그리고『중용』의「보망장」도 2만 번 읽었다. 이처럼 독서에 열중했던 김득신은 독수기(讀數記)에 1만번 이상 읽은 옛글들을 기록했는데, 「 능허대기」는 2만5백 번, 「 목가산기」는2만 번, 그리고『중용』의「보망장」도 2만 번 읽었다. 가장 많이 읽은 글은『사기』의 「백이전(伯夷傳)」으로 무려 11만1천 번 읽었는데, 이를 기념해서 재에 ‘억만재(億萬齋)’라는 이름을 붙였다. 심지어 부인의 상중에 곡을 하다 말고 자신도 모르게「백이전」구절을 읊었다고 한다. 그는 문장으로도 이름을 날 려, 효종도 그의 글을 읽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허 어~ 당송의 시집에 넣어도 부끄럽지 않은 문장이구나. 황공하옵나이다. 40여 년간 꾸준히 노력한 끝에 말년에‘당대 최고의 시인’으로 불렸던 백곡 김득신. 그가 스스로 지은 묘비명에는‘나보다 어리석고 둔한 사람도 없겠지만 결국엔 이룸이 있었다. 모든것은 힘쓰는데에 달려있을 따름이다’라고 적혀있다.

 

글. 그림. 유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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