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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옥죄지 않아야 창의성 나래가 펼쳐진다
작성일
2015-07-02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3627

옥죄지 않아야 창의성 나래가 펼쳐진다. 흔히 선진국에서 자녀를 키운 부모들은 한국 학교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문제점을 꼬집는다. 예를 들면, 미국 교사들은 학생의 개성을 존중하여 엉뚱한 질문을 하더라도 경청하는데 비해 한국 교사들은 “쓸데없는 질문으로 수업 분위기 흐리지 말라!”고 핀잔을 준다는 것이다. 그런 학부모들의 목소리가 높아지다 보면 선진국은 교육천국이요 한국은 교육지옥인 것처럼 고착된다. 그러나 사례별로 냉철히 따져야 한다. 선진국에도 허점은 수두룩하고 한국 교육제도의 장점도 적잖다. 다만 우리 교육이 개개인의 장점과 다양성을 얼마나 고려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사람은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 생산을 위한 도구가 아니다. 거대한 공장의 기계 부품처럼 획일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존재가 아닌 것이다. 물론 놀고 먹을 수는 없다. 뭔가 물건을 만들거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이왕이면 더욱 쓸모 있는 상품이나 예술품을 빚어내려면 창의성이 발휘되어야 한다. 개인이 개성을 발휘하며 사람답게 살 때에야 창의성과 상상력이 극대화되어 인류를 위해 역설적으로 더욱‘생산적’으로 기여할 것이다.

 

피아노, 등산... 획일성의 상징

필자는 1990년대 초에 프랑스에서 4년, 미국에서 1년 가까이 산 적이 있다. 귀국해서 아들은 초등학교 3학년으로 들어갔고, 딸은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했다. 프랑스 파리에서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아들은 몇 년 사이에 프랑스, 미국, 한국의 초등학교 생활을 골고루 경험하게 됐다. 아들녀석은 프랑스에서 쓰던 큼직한 책가방을 메고 한국 학교에 갔다. 그 가방이 한국 아이들 눈에는 기이하게 비쳤나보다. 자기들 가방은 알록달록한 색깔의 자그마한 것인데 외국에서 전학 왔다는 친구의 것은 거대한 풍뎅이 모양이어서 이상했다. 아이들은 ‘풍뎅이 가방’의 주인을 마구 놀렸고 아들의 마음 한 구석엔 작은 상처가 생겼다. 음악 실기시험은 피아노 연주였다. 아이들은 바이엘 교본에서 배운 대로 능숙하게 건반을 두드렸다. 그러나 아들은 피아노를 배운 적이 없어 0점을 받았다. 한국에서는 어린이라면 거의 예외 없이 피아노를 배우는 모양이었다.

01. 기발한 발상, 참신한 아이디어는 자유로운 사고가 허용되는 분위기 속에서 발현된다. ⓒ이미지투데이 02. 프랑스 파리의 소르본느대학. 프랑스는 각 개인의 사고능력과 판단능력을 개발하는데 근본 목적을 둔 교육철학에 바탕을 두고 대학을 포함한 고등교육 과정을 매우 다양하게 운영한다. ⓒ두피디아

미국 인디애나대학교는 음악대학이 유명하다. 그곳 음대 교수가 재능기부 차원에서 지역 어린이들에게 리코더를 무료로 가르쳐준다고 했다. 이 소식을 들은 어느 한국인 학부모는 다음과 같은 반응을 보였다. “리코더? 그거 피리 아냐? 한국에서 초등학교 다닐 때 문방구에서 팔던 싸구려 플라스틱 피리… 그거 배워서 뭐해? 악기라면 피아노나 바이올린을 배워야지.” 전통 깊은 악기인 리코더는 지금도 고급 클래식음악에서 필수적인 악기이다. 인디애나대학교 음대에는 리코더 전공자가 있고 그 교수는 세계적인 대가였다. 그러고 보니 한국인들은 악기 배우는 데에서도 몇몇 악기에 집중하는 쏠림 현상을 나타낸다. 관악기 가운데는 플루트, 클라리넷이 인기를 끄는 반면 바순, 호른 같은 악기는 생소하다. 이색적인 악기를 다루는 연주자는 늘 “하필 왜 그 악기를 선택했느냐?”는 질문에 시달린다. 독특한 취향으로 봐주면 그것까지는 감내하겠는데 이상한 사람으로 간주하면 억울하단다. 국악 전공자도 같은 경험을 한다. 한국인이 한국음악을 하면 당연한 일인데 “여러 음악 가운데 왜 국악인가?”라는 편견어린 시선을 던지는 이가 수두룩 하단다.

‘획일劃一’이라는 말은 한 줄 그은 선을 뜻한다. 여기에서 벗어나면 불안해진다. 어릴 때부터 친구 따라 강남 가다보니 어른이 돼서도 취미생활이 비슷해진다. 등산 아니면 골프다. 골프를 배우지 않은 어느 기업인은 늘 주변 지인들에게서 “왜 골프를 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아 곤혹스럽다고 한다.

03. 휴일을 맞아 산행에 나선 등산객들. 요즘 어른들의 취미는 등산 아니면 골프다. 주말만 되면 등산로마다 중년 등산객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연합콘텐츠

 

개성 존중, 다양성 인정... 상상력의 원천

한국의 대학에서 1980년대 이후 경영대 규모가 갈수록 비대해지고 있다. 규모가 큰 사립대학교에서는 경영대 입학 정원만도 300명이나 된다. 고교 문과 졸업생 가운데 성적 상위권 학생들은 너도나도 경영대에 들어간다. 과거에 출세의 지름길인 판사, 검사 지망생들이 지원하던 명문대 법대가 문을 닫으면서(로스쿨이 생기면서 상당 수 법학과가 사라졌음) 경영대 쏠림 현상이 더욱 두드려졌다. 경영대 커리큘럼을 보면 기업경영과 관련한 다방면의 지식을 가르치지만 뭔가 뚜렷한 특징은 모자란다. 중국이 여러 분야에서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다. 중국과 한판 멋진 비즈니스를 벌이고 싶은 젊은이가 있다면 경영학과 보다는 중어중문학과에 가는 것 이 나을지도 모른다. 중국어, 중국문학 등 문화적 바탕을 튼튼히한 다음 비즈니스를 배우는 게 훨씬 유용하리라. 인터넷 출현이후에 외국어 학습 분야에서 영어가 다른 언어를 압도하고 있다. 대학에서 불어, 독일어, 스페인어를 가르치는 학과가 존폐위기에 놓인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러나 역발상을 해보자. 이런 언어를 구사하면 활동영역이 더 넓어질 수 있다. 네덜란드어, 스웨덴어를 익혀두면 그곳 관련 업무 기회를 얻을 수 있다.

푸코, 라캉, 부르디외, 알튀세르, 데리다.... 현대 철학의 대표적인 석학들이다. 공교롭게도 모두 프랑스에서 활동한 인물들이다. 이들은 개인의 삶과 인간사회에 대해 새로운 사고의 틀을 만들었다. 고도의 정신적 산물인 철학을 프랑스인들이 주도한다는 사실을 살펴보면 프랑스가 여전히 문명, 문화의 원천 역할을 하고 있음을 간파할 수 있다. 개성을 존중하는 프랑스인의 의식구조 덕분일까.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프랑스에는 치즈와 와인 종류가 수백 종이나 돼 각자 취향에 따라 먹는다. 프랑스 학교 교육 사례를 소개하자면 유치원 아이들이 그림을 그릴 때에도 수십 가지 색깔로 마음대로 그리게 한다. 사물의 형체를 그리기보다는 다양한 색감을 익히는게 더 중시된다. 잘 그리고 못 그리고 하는 평가도 없다. 개성 존중이 엿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학생들이 멋대로 하게 방치하는 게 아니다. 보들레르, 발레리 등 거장 시인의 작품들을 암송해야 하고 알파벳과 숫자는 또박또박 쓰도록 엄격히 훈련 받는다.

리코더 이미지

 

자유로운 사고와 실험이 인정되는 사회

유태인 가정에서는 자녀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부모가 “오늘 선생님께 뭘 질문했니?”라고 묻는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뭘배웠니?”라 묻는 부모가 대다수이다. 질문은 자유로운 사고의 뿌리이다. 의문, 호기심, 궁금증 등이 새로운 진리를 발견하는 원동력이다.

필자는 중학생 때 수학을 싫어했다. 기계적인 계산을 반복해서 답을 내는 과정이 따분했기 때문이다. 하루는 수학 선생님께 “수학을 왜 배워야 하나요?”라고 물었다가 “건방진 녀석!”이라며 불같이 화를 내는 선생님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 이유도 모르고 공부하자니 답답했고 수학에 대한 흥미는 더욱 떨어졌다. 그러다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된 후 미적분학 이론을 정립하기 위해 뉴턴과 라이프니츠가 벌인 뜨거운 경쟁에 관한 이야기를 읽고 수학은 세상의 비밀을 밝히는 훌륭한 수단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수학에 마음이 끌리기 시작했다.

요즘 대학교육의 여러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파워포인트 화면을 띄우고 내용을 설명하는 교수의 강의방식이 대세를 이룬다. 칠판에 백묵으로 일필휘지 글씨를 쓰면서 가르치는 재래식 방식이 수강생에게 더 기억에 남는다는데.... 수식을 풀어야 하는 과목은 더욱 그렇다고 한다. 중간고사, 기말고사 문제는 강의 내용을 암기해서 답안지에 재현하는 유형이 주를 이룬다. 교재를 보면서 답안을 작성하는 오픈 북 방식의 시험이 창의성을 더 자극할 것이다.

04.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창의력을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그는 <개 미>, <뇌>, <제3인류> 등 인간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작품들을 통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있다. ⓒ연합콘텐츠 05. 프랑스의 한 학교에서 개최한 가장행렬 퍼레이드. 학생들이 일상의 압박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하도록 매 년 개최하는 행사로, 프랑스 학교 교육의 방향은 학생의 흥미와 개 성 존중에 맞춰져 있다. ⓒ연합콘텐츠

한국의 대표적인 어느 대기업이 한때 경영난에 빠졌을 때 그 원인으로 계열사 임원들의 과도한 골프 탐닉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그룹 회장이 “골프 잘 치는 사장이 일도 잘 하더라”고 발언한 이후 대다수 임원들이 골프에 혼을 빼앗겼다는 것이다. 사장이 등산광인 어느 회사에서는 걸핏 하면 등반대회를 벌이는데 체력이 약해 정상에 오르지 못하는 임직원은 무능한 사람으로 비친다. 취미, 회식에서 획일적인 행태가 드러나는 게 한국 기업의 조직문화이다. 직장상사는 건배사를 말할 때도 본인이 새로 만들어볼 시도는 하지 않고 “요즘 유행하는 건배사 뭐 없나?”하고 부하에게 물어본다.

한국은 ‘문화 융성’을 이룩할 수 있는 좋은 상황을 맞았다. 경제난, 청년실업, 고령화 등 문제점이 한꺼번에 불거지고 있지만 이런 위기를 돌파하려 뛰다보면 더 큰 도약을 할 수 있으리라. 중국, 미국, 일본, 러시아 등 강대국과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특이한 처지이지만 이것도 한류의 국제화를 촉진할 수 있는 추동력으로 활용할 수 있다. 창의력과 추진력으로 무장된 한국인들이 지구촌 무대 곳곳을 뛰면 한국은 진정한 문화선진국, 강국, 부국으로 부상하지 않겠는가.

 

글. 고승철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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