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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춤, 사람, 이야기 그 생동하는 기록 - 이찬주 무용평론가
작성일
2015-07-02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5503

 

춤, 사람, 이야기 그 생동하는 기록. 이찬주 무용평론가 예술에 있어서 장르나 양식은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 지역이나 시대 구분의 기준은 어느 지점이 합당한 것일까? 크로스오버나 퓨전 같은‘탈장르’ 영역마저 또 다른‘장르’로 인식하는 걸 보면, 그 애매함은 인간본성의 연장선에서 어느 정도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 대전역사박물관에서‘옛 그림 속 춤 세상’ 공연이 열렸다. 사군자화와 풍속화 등 고전회화 작품에 그려진 옛 춤을 무대 위에 재현한 공연이었다. 미술 속에서 무용을 만나고 옛 것을 통해 새로운 감흥이 일어나는, 장르와 시대를 가로지르는 크로스오버 무대였다. 01. 대전에 위치한 춤자료관에서 만난 이찬주 관장. 그는 고문헌은 물론 풍속화까지 춤에 대한 다양한 자료를 수집하고 이론과 실제를 오가며 폭넓게 연구하고 있다. ⓒ김병구

 

그림 속의 춤, 춤 속의 이야기

무대 위 크고 작은 족자簇子화면에 신윤복, 김홍도의 풍속화 영상이 나타나더니 그림 속의 무용수들이 포착된다. 그리고는 실제 무용수들이 무대 위에 등장해 직접 춤사위를 펼쳐 보인다.

‘옛 그림 속 춤 세상’은 박접무撲蝶舞를 시작으로 검무劍舞, 사당패놀음까지 풍속화를 통해 우리 춤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조상들의 풍류를 즐길 수 있는 공연이었다.

이 공연을 기획하고 해설도 맡은 이찬주 관장은 춤과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러 프랑스 파리에 방문했다가 우연히 김홍도의 [사당패놀음]을 발견하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청계천 다리와 그 위에 가지를 늘어뜨린 버드나무가 있고, 다리 앞쪽에는 빙 둘러 모여 한바탕 놀고 있는 사람들이 보여요. 치마를 질끈 묶어 올리고 사뿐사뿐 발을 내딛는 여사당, 한쪽 다리를 번쩍 들어 올린 남사당…, 한 명 한 명 표정과 움직임이 살아있죠. 사람들의 흥까지 살아있는 듯이 생생하게 느껴졌어요.”

18세기 조선 사람들의 풍류가 생생하게 담겨 있는 [사당패놀음]을 목격한 이찬주 관장은 옛 그림을 통해 옛 춤의 아름다움을 소개하면 어떨까, 생각했고 한국에 돌아와 그 구상을 실행에 옮겼다. 춤에는 인간의 모든 감정, 희로애락의 발로發露이며 몸짓 하나하나에 세밀한 감정이 녹아있다.‘옛 그림 속 춤 세상’ 공연을기획한 건 사람들과 그림을 통해 춤에 담긴 이야기를 재미있게 나누기 위해서였다.

02.‘옛 그림 속 춤 세상’ 공연에서 풍속화 속의 다양한 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이찬주 관장. ⓒ이찬주 03. 이찬주 관장이 크고 작은 족자(簇子) 화면에 나타난 신윤복, 김홍도의 풍속화 영상 보여주며 우리 춤의 아름다움과 조상들의 풍류를 소개하고 있 다. ⓒ이찬주

 

흩어져 있는 이야기, 사라져가는 이야기의 기록

2년 전 ‘이찬주춤자료관’을 만들어 춤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이론과 실제를 오가며 폭넓게 연구하고 있는 이찬주 관장. 그는 1999년 ‘춤이론연구소’라는 온라인 자료실을 만들어 국내외 안무가와 무용가, 작품, 공연 등 춤에 대한 다양한 자료들을 소개해왔다. 그러던 중 대전으로 이사하면서 수집과 연구를 좀 더 지속적으로 하기 위해 자료관을 연 후, 책과 신문, 그리고 강연이나 공연 등을 통해 자신이 수집하고 연구한 춤에 대한 지식을 대중에 알리는 일도 바쁘게 해왔다. 춤 전통의 중요성을 느끼는 만큼 소실에 대한 걱정도 점점 더 진지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얼마 전 대전의 한 공연장 곁으로 자리를 옮긴 춤자료관. 계단부터 모든 벽면에 50~60년대 공연 팸플릿들, 최영란, 한상근, 김백봉 등 역대 무용수들의 사진이 걸려있었다. 커다란 창을 통해 숲이 보이는 이찬주 관장의 공간. 이곳에서 그녀는 한국무용의 계보와 흐름을 정리한 책의 마무리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옛 그림 속 춤의 모습

 

깊이 알수록 빠져드는 한국인의 몸짓, 우리 춤

지금은 글 쓰는 일이 주업이 됐지만, 그녀는 원래 발레를 전공한 무용수였다. 대학시절에만 해도 당연히 발레리나가 될 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석사과정 때 이론을 배운 교수님의 작은 칭찬이 길을 바꿔놓았다. “어쩌면 교수님은 진지하게 한 얘기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어요. 작은 칭찬에 우쭐했던 거죠. 그래서 열심히 논문준비를 하다 보니 춤을 추는 것만큼 춤을 연구하는 것도 재미있더라구요.” 연구를 하면 할수록 춤의 영역이 너무나 방대하다는 걸 알게 됐고 파고들수록 새로운 주제가 나타났다. 발레 계보, 현대무용 계보, 춤 예술의 미학, 무용제작 기법 등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구의 폭을 넓혀나갔다.

특히 한국무용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박사과정을 밟을 때였다. 발레를 전공했으니 당연히 한국무용의 원리는 잘 몰랐다. 당연한 일인데도 한쪽 다리를 못 쓰는 불구 같았다. 알고 싶었다. 텍스트로 접한 한국무용은 그의 정서에 깔려있던 한국인의 흥을 봇물처럼 솟아나게 만들었다. “발레나 현대무용 같은 서양 무용의 동작은 명칭이 거의 같아요. 그런데 한국무용은 동작의 가짓수도 많고 명칭도 지역마다 각기 다르죠. 그래서 어렵지만 그만큼 재밌는 거예요.” 그는 전통 춤의 계보를 통해 지역문화를 고찰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양대에서 첫 번째 한국무용 박사학위이기도 하다.

그 후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무용평론가로도 활발하게 활동했다. 그리고 강의실이나 지면에서 못 다한 이야기들을 모아 책으로 펴냈다. 온라인 자료실을 만든 이유도 같았다. 무용의 계보, 무용의 역사를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사명감, 그리고 그것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이다.

 

잊혀져가는 사람들, 간절해지는 소중함

“재작년에 대전시립무용단 예술감독님 부탁으로 원로 무용수부터 젊은 신예들까지 단원들을 전부 인터뷰했었어요. 보름 가까이 밀접취재하면서 정말 가까이에서 공연을 보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죠. 감독님께도 인터뷰를 요청해서 그분의 춤 인생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어요. 그런데 한 달 뒤에 감독님이 갑자기 돌아가셨고 안타까운 마음 한편으로 다행스러운 마음도 들더군요. 전에도 무용을 기록하는 일을 해왔지만 그때 기록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깨달았어요.” 지금 남겨놓지 않으면 잊혀져버릴 사람들, 그 사람들의 이야기가 얼마나 소중한지, 이찬주 관장에게 기록의 소중함은 점점 더 진중하게 다가온다.

우리 춤에 실려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사람들을 같이 울고 웃게 한다. 어깨를 들썩이게 하고 결국 함께 춤을 추게 만든다. 그 공감의 코드가 점점 희미해져 가는 것이 안타까운 이찬주 관장. 그는 점점 더 한국 춤이 고프다. 사람들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너무 많다.

지금 남겨놓지 않으면 잊혀져버릴 사람들, 그 사람들의 이야기가 얼마나 소중한지, 이찬주 관장에게 기록의 소중함은 점점더진중하게 다가온다. 04.얼마 전 대전의 한 공연장 곁으로 자리를 옮긴 춤자료관. 이찬주 관장은 이곳에서 한국무용의 계보와 흐름을 정리한 책의 마무리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김병구

 

글. 성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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