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추억이 살아 있는 선운사
- 작성일
- 2015-07-02
- 작성자
- 문화재청
- 조회수
- 2547
선운사를 처음 찾은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이다. 학교는 읍내에 위치하고 있으니, 선운사까지의 거리는 근 백여 리나 된다. 그러니 중학생에게는 조금 먼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중학교에 다니던 그 시절에는 교통이 아주 불편하였다. 소풍은 원적이라 하여 걸어서 다니던 시절이었다. 중학교 2학년이나 되었으니 선운사까지도 걸어서 갔다. 도시락을 준비하고 길을 건너고 강을 건넜다. 방장산에서 기원하여 모인 물들이 강을 이루어 선운사를 지나 바다로 흘러간다. 임내 강을 건너 또 다시 산 고개를 넘어야 도착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선운사다.
학교에서 출발하여 중도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선운사에 도착하니 오후 4시가 다 되었다. 그 때는 가을이어서 빨간 감이 유난히도 눈에 많이 들어왔었다. 감의 유혹에 빠져 몰래 따다가 들켜 모자를 빼앗긴 추억도 살아 있다. 마침 선운사에 들른 누나 덕분에 모자를 찾을 수 있었다. 그 때의 애타던 마음도 지금도 생생하다. 어린 눈에 들어온 선운사의 웅장함은 참으로 감동이었다. 절집에서 잠을 자고 다음 날에 도솔암으로 향하였다. 암자의 풍광에 마음을 뺏긴 것은 그리 오래가지 못하였다. 암자를 돌아서니, 거대한 마애석불(보물 제1200호, 고창 선운사 동불암지 마애여래좌상)의 웅장함에 마음을 빼앗겼다. 동학혁명이 일어났을 때 부처의 배꼽 부분에 있던 예언서를 가져갔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말발굽 바위를 지나 정상에 오르면 서해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때의 기억이 살아가는데 많은 힘이 되었다.
그 뒤로 선운사는 마음의 위안처가 되었다. 친구와 함께 찾기도 하고, 사랑하는 애인과 함께 데이트를 하는 장소이기도 하였다. 물론 하얀 머리를 날리고 있는 지금도 찾고 있는 곳이다. 마음이 우울할 때면 저절로 선운사를 찾게 된다. 선운사를 한 바퀴 돌아나오게 되면, 마음이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다. 묵은 친구가 오랜만에 찾아오게 되어도 선운사를 찾는다. 갈 때마다 넉넉한 마음으로 반갑게 맞이해주는 선운사는 마음의 고향이 되었다.
선운사가 있어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선운사는 내 삶과 함께 해왔다고 생각한다. 오직 한 마음으로 그 자리에서 본디 마음을 지키고 있기에 마음의 중심이 되 어 주었다. 선운사를 찾게 되면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 기쁠 때나 우울할 때 선운사를 찾게 되면,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있어 좋다. 문화재의 보고寶庫, 선운사가 내 고향에 있어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다.
글·사진. 정기상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