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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의료선교사 알렌과 알렌의 검안경
작성일
2015-06-01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6107

의료선교사 알렌과 알렌의 검안경 2009년 에 등록문화재 제446호로 등록된‘알렌의 검안경’은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동은의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렌이 사용했던 검안경이다. 이 유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측면에서 이해가 필요하다. 첫째는 의료기구로서 검안경에 대해 이해하야 하며 둘째는 검안경을 사용했던 알렌이라는 의사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한다. 01. 알렌의 검안경.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병원인 제중원의 책임을 맡았던 알렌이 사용하던 검안경으로 미국 뉴욕에 있는 GALL & LEMBKE OpTICIANS社에서 제작한 것이다. ⓒ박정훈

 

우리나라 근대의료의 역사를 간직한 의학유물

먼저 검안경에 대해 살펴보자. 검안경(檢眼鏡, ophthalmoscope)이란 한자 뜻 그대로 눈의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도록 고안된 안과용 검사도구이다. 암실 내에서 일정한 광선을 안저(眼底: 동공을 통해 안구의 안쪽에 보이는 부분)에 보내 반사광을 렌즈를 통해서 망막과 시신경, 혈관의 상태, 근시 원시의 정도 등을 검사하는 것이다. 의사는 이 검안경으로 눈의 상태를 정확하게 판단하고 그에 따라 환자를 치료하게 된다. 지금도 안과에 가면 의사가 검안경을 사용한다.

알렌이 사용했던 검안경은 크기는 42×180㎜로 손잡이 끝부분을 검안경 본체와 조립하게 되어 있다. 이 검안경은 가로 64, 세로103, 두께 24㎜의 나무상자 안에 들어 있다. 미국 뉴욕에 있는 GALL & LEMBKE OpTICIANS社에서 제작한 것으로 1870년대 이후 미국에서 상용되었던 것이다.

이 검안경이 한국의 근대의료 분야의 등록문화재로 선정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알렌이란 의사가 사용했던 의료기구라는 점 때문이다.

02. 고종이 하사한 당나귀를 타고 왕진을 가고 있는 알렌. ⓒ동은의학박물관

 

한국에 파견된 최초의 서양의사, 알렌

알렌(Horace Newton Allen, 한국 이름 안련, 1858~1932)은 1858년 4월 23일 미국 오하이오주 델라웨어의 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고향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1881년 오하이오주의 웨슬리안대학교(Wesleyan University)에서 신학을 공부하였다. 이후 1883년 3월 신시내티에 있는 마이애미의과대학(Miami Medical College)을 졸업하여 의사면허를 취득하였다. 알렌이 의학 공부를 하던 당시 미국은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기독교 해외 선교에 대한 열풍이 불고 있었고, 알렌도 졸업 직전인 1883년 3월 북장로회 해외선교부에 선교사로 지원하였다. 이후 중국을 거쳐 1884년 9월 20일 조선에 입국하였다.

알렌이 미국 공사관의 의사로 활동하던 중 1884년 12월 4일 갑신정변이 일어난다. 이 과정에서 민비의 조카였던 민영익이 심한 자상을 입어 위태로운 상태였다. 당시 푸트 공사의 왕진요청을 받고 알렌 은정성을 다해 치료했다. 그 후 3개월 정도의 치료기간을 거쳐 민영익은 완치되었다. 그 후 알렌은 고종의 시의侍醫로 임명되었다. 이후 알렌은 조선정부에 서양식 병원의 건립을 제안하였고, 그의 제안을 받아들여 1885년 4월 한국에서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제중원濟衆院이 설립되었다. 제중원은 현재 재동의 헌법재판소 자리에 있었는데, 갑신정변 당시 우정국 책임자로 정변을 주도했다가 참살당한 홍영식의 저택을 병원으로 개조해서 사용한 것이다. 당시 40병상 수준의 병실을 갖추고 있었으며 하루에 100명 정도 외래환자를 치료했다고 한다.

1887년 알렌은 선교의사 헤론에게 제중원의 진료를 맡기고 자신은 참사관에 임명되어 주미 전권공사 박정양의 고문으로 활동하였으며, 1890년에는 주한 미국공사관의 서기관을 맡았다. 1897년 주한 미국공사 겸 총영사, 1901년에는 주한미국 전권공사로 활동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 체결 후 귀국하여 의사로서 여생을 보냈다.

03. 검안경은 눈의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 게 만든 안과용 기구로 우리나라 근대 서양의학 도입사와 관련하여 사료적 가치가 크다. ⓒ박정훈

 

알렌은 한국에 파견된 최초의 서양의사였다. 그의 제안으로 설립된 근대 서양식 병원인 제중원을 통해 한국에 서양의학이 본격적으로 수용될 수 있었다. 비록 짧은 기간 한국에서 의사로서 활동하였지만 한국사회에 끼친 영향력은 매우 컸다. ‘알렌의 검안경’은 단순한 의료기구가 아니라 제중원에서 한국 최초의 서양의사였던 알렌이 직접 사용했던 것이기에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당시 한국에서 사용되었던 의료기구가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점에서도 알렌의 검안경의 의미는 클 수밖에 없다.

이 검안경은 연세대학교 100주년을 기념하여 1985년 알렌의 손자인 카레이 알렌이 기증한 것이다. 올해는 제중원의 뒤를 이은 세브란스병원과 연세대학교가 설립된지 13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런 뜻깊은 해에‘알렌의 검안경’을 지면으로 소개할 수 있어서 더욱 기쁘게 생각한다.

 

글. 박준형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동은의학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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