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트위터 페이스북
제목
놀이와 연희가 어우러진 의식
작성일
2015-05-07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6149

놀이와 연희가 어우러진 의식. 연등회. 의식과 놀이는 먼 것 같으면서 가깝다. 모든 종교의 의식에는 신을 위한 오신娛神적 놀이가 포함되지만 신도와 일반인을 즐겁게 하기 위한 각종 놀이와 연희도 포함된다. 사찰에서 이루어지는 의식과 행위는 일종의 수행의 과정이지만, 연등회가 사찰만의 행사가 아니기 때문에 민간의 다양한 놀이가 삽입된다. 따라서 후대에 오면서 점차 종교 의식과 놀이는 엄격한 구분이 이루어지지 않고 혼재되는 양상을 보인다. 특히 연등회는 신라시대부터 석가 탄신을 기념하는 불교적 의식에서 출발하지만, 시대에 따라 다양한 놀이와 연희를 수용했다. 특히 고려 후기에 오면 궁중이나 민간의 가무악희와 결합되어 매우 복합적 양상을 나타낸다. 연등회에도 일찍이 불과 등, 그림자, 물 등을 활용한 다양한 놀이가 이루어졌다.

 

관등과 불놀이의 결합

연등회에 대한 기록은 고려시대부터 나타난다. 화려한 장식을 한 무대에 각종 등을 산처럼 켜 놓고 나무에도 불을 밝혔는데 대낮처럼 밝았다고 한다. 이 시기에는 등만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불놀이도 함께 이루어졌다. 공민왕 때에는 4월 연등회에 궁중에서 승려를 다수 초청해 음식 공양을 하고, 화산火山이라 해서 연등을 산처럼 걸고 각종 불을 붙였으며 음악에 맞춰 춤과 놀이를 했다.

조선 후기에 오면 민간에는 사월초파일에 줄불, 또는 낙화落火놀이 형태인 불놀이가 자주 나타난다. 민간에서는 시가지의 다리 난간에 화려한 장식을 하고, 사람들이 등과 줄불 형태의 불구름 속을 다니며, 물 위에는 유등을 띄우거나 화약을 터뜨리기도 했다. 이 당시 줄불은 지금의 하회의 줄불놀이처럼 화약을 종이에 싸서 줄 위에 매달아 불을 붙여 비가 내리 듯이 불꽃이 쏟아지게 한 것이다. 이런 줄불과 낙화놀이는 일제강점기에 남한산성, 평양의 대동강가, 개성 등에도 행해졌다. 특히 탈놀이가 전승하는 양주 고을에는 초파일에 양주별산대놀이를 하고, 그날 마을 앞 개천가에 줄을 매고 참나무 껍질로 만든 숯가루 봉지와 등불을 매달고, 숯봉지에 일제히 불을 붙여 불꽃을 내며 타게 했다. 이런 식으로 조선 후기부터 다양한 등을 구경하는 관등觀燈과 함께 불 관련 놀이가 이루어졌다.

 

포교를 위한 그림자극

연등회 시기에는 그림자극도 나타난다. ‘만석중놀이’는 음력 사월 초파일에 이루어진 인형을 활용한 그림자극이다. 이 놀이는 고려시대에 개성지방에서 초파일에 독립적으로 연희되는 무언의 인형극으로 만석중, 사슴, 노루, 잉어, 용 등의 인형이 등장한다. 무대 중앙에 만석중이 소리를 내며 움직이고, 오른쪽 무대에 용과 잉어가 등을 가지고 서로 희롱하고, 왼쪽 무대에는 노루와 사슴이 서로 싸움을 한다. 이것은 승려와 동물이 등장하여 불교의 깨달음을 다루는 포교적 그림자극이라 할 수 있다. 이 놀이는 1920년대까지 초파일날 개성에서 사찰과 인근 마을에서 불교의 포교 수단으로 연희되었으며, 서울에서도 그네뛰기와 함께 행해졌다.

‘영등影燈’은 공중에 매단 다양한 형태의 등이 바람에 빙빙 도는 것을 그림자로 보는 방식이다. 이것은 본격적인 그림자극은 아니지만, 등의 이중 장치를 통해 다양한 형태의 그림자가 비치게 한 것이다.

연등회 일러스트

연등회 속의 어린이 놀이

연등회 때의 어린이 놀이에 ‘호기呼旗놀이’가 있다. 이것은 고려 말에 어린이들이 초파일날 사용할 연등 제작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모금놀이 형태이다. 공민왕 때에 처음 나타나는데, 어린이들이 초파일 수십 일 전에 긴 장대에 종이로 깃발을 달고 성안을 다니며 쌀과 포布를 추렴한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모금을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호기呼旗라는 말에서 보듯, 불자와 어른들이 아이들의 깃발을 보고 모금에 적극 호응해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부처님께 봉양한다는 의미를 지닌 어린이들의 시주 형태이다. 이 놀이는 궁중에서 왕이 관람하면서 사대부나 민간에 적극적 참여를 권유했다는 점에서 어린이들이 초파일 연등에 적극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기능을 했다.

조선 후기에는 초파일에 어린이들의 물장구 놀이 형태인 ‘수부水缶놀이’, 또는 ‘수포락水匏樂’이 이루어졌다. 물동이에다 물을 담은 다음, 바가지를 엎어 놓고 돌려가면서 두드리는데, 이때 각종 등을 매단 긴 장대 아래에서 느티떡과 볶은 콩을 먹기도 했다. 이날 ‘파일빔’으로 새 옷을 입고, 물장구로 질장구(질화로 모양의 아악기) 소리를 내며 노래하고 춤을 춘다. 초파일에 바가지 물장구를 하는 것은 불교의식에서 법고의 두드림을 통해 중생에게 깨달음을 준다는 의미와 서로 통한다.

연등회는 단순한 불교의식에서 벗어나 일찍이 고려시대부터 관과 민이 참여하는 종합예술적인 축제의 성격을 지녔다. 위로는 왕부터 신하, 불교 신도와 일반인, 전문 예인에 이르기까지, 또한 어른부터 어린이까지 등과 불, 물, 그림자와 인형을 통한 놀이와 연희가 행해진다. 따라서 연등회는 불교 행사이면서 모든 국민이 참여하는 축제의 형태였다.

 

글. 정형호 (문학박사) 일러스트. 박근홍 

만족도조사
유용한 정보가 되셨나요?
만족도조사선택 확인
메뉴담당자 : 대변인실
페이지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