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석공의 혼이 담긴 고달사지 흔적
- 작성일
- 2015-05-07
- 작성자
- 문화재청
- 조회수
- 3217
신라 경덕왕 23년에 창건되어 고려 광종 1년에 중건되어 또 다시 원종 1년인 1260년에 지금의 사찰 터를 확장되었다고 전하고 있으나 지금은 그 흔적으로 석조물과 발굴과정에서 드러난 건물터가 증명해 주고 있을 뿐이다.
넓은 절터를 바라보면 고려의 융숭했던 불교의 흔적을 잠시나마 생각할 수 있는 시간과 되돌려줄 수 있을 만큼의 감동까지 담을 수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건물터 샛길로 걷다 보면 옛 스님의 손맛을 창조해내었던 2기의 석조는 사찰음식의 출발지가 아닌가, 느껴진다. 주초석 마저 남기지 않는 건물지에는 발굴과정에서 드러났던 흔적을 소개해 두어 그나마 사찰의 구조적 특징을 얻을 수 있는 교육의 현장이기도 하다.
원형을 잘 유지해온 석불 대좌는 쉽게 볼 수 없는 거대한 석조물이다. 사방으로 둘린 연화문과 이를 보호하기 위한 금당지의 흔적은 고달사의 규모를 가늠할 수 있는 잣대로 볼 수 있다.
지난해 이곳을 찾았을 때는 귀부와 이수만이 남아 있던 원종대사탑비(보물 제6호)는 이제 비몸을 갖춘 완전한 모습으로 복원되어 우뚝 섰다. 무거운 비몸을 등에 얹고 매우 험상궂은 얼굴에 격동적이고도 사실적인 발톱은 금방이라도 앞으로 나가려는 기세다. 소용돌이 구름을 장식한 비좌는 무거운 비를 공중에 띄워놓은 듯한 느낌을 주며, 구름 속에서 용트림치는 용의 기상의 머릿돌까지 격동적이고 사실에 가까운 감동을 준다.
머리가 잘려나가고 몸만 남아 있는 귀부는 누구의 탑비로 사용되었던 것인지 알려지지 않지만, 한때는 고달사를 만들어냈던 스님의 흔적이었다. 발가락은 금방이라도 앞으로 나갈 것 같지만, 방향을 잡을 수 없는 몸은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문다.
산으로 가는 길은 듬성듬성 짝을 맞춘 돌계단이다. 계단이 끝나는 지점에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승탑이 오롯이 자리하고 있다. 팔각을 기본으로 하여 쌓아 올린 승탑은 국보 제4호인 고달사지부도이다. 두 마리의 거북은 사실감이 느끼는 입체감을 느끼게 하고 각 거북을 사이에 두고 네 마리의 용이 구름 속에서 용트림하는 모습으로 채웠다. 특히 추녀 아래에는 새겨져 있는 구름무늬와 천상의 여인이 손에 든 기물과 옷, 몸의 곡선이 유연하고 아름답게 표현되었다.
또 다른 계단을 내려서면 원종대사탑(보물 7호)이 자리하고 있다. 탑비와 함께 거의 완전한 형태로 잘 보존되어 오고 있다. 원종대사는 통일신라 경문왕 9년에 태어나 고려 광종 9년에 입적한 고달사를 중건한 고승이다. 기단부의 가운데 받침돌 밑은 아래·위로 피어오르는 구름무늬를 조각하고, 그 사이에는 거북이가 몸을 앞으로 두고, 추녀 아래에는 위쪽의 승탑처럼 구름무늬와 천상의 여인이 아름다운 선으로 표현되어 있다.
고달사지는 고려시대의 불교문화를 간직한 소중한 유산이다. 종교적 의미가 갖는 가치와 불교의 예술적 가치가 함축되어 있어 현대에 이르기까지 식지 않는 전통문화를 여과 없이 보여주는 현장이다.
겨울의 하루해는 짧기만 하지만 긴 역사 속에 빠져들어 해지는 것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답사는 또 다른 문화유산을 찾을 수 있는 충전의 기회가 되었다.
글·사진. 정진해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