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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연과 습성이 만들어낸 걸작의 진미 ‘고창 풍천장어’
작성일
2015-04-01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7489

자연과 습성이 만들어낸 걸작의 진미 ‘고창 풍천장어’ 어느 지역이든 그 지역의 정서와 문화를 대변해주는 맛과 멋이 있다. 한 지역사회에서의 음식이란 그들만의 고유하고 독창적인 삶의 문화를 알 수 있게 해주는 문화적 지표 역할을 하기도 한다. 몸의 원기元氣를 북돋아주는 보양식만 하더라도 처음부터 작정하고 부엌에서 만들어져 이어오고 있는 지금의 음식이 아니라, 지역의 고유한 삶의 형태나 자연환경 등의 조건에 따라 스스로 나고 자란 먹을거리를 자연스럽게 활용하게 된 고유한 식재료가 지역의 오래된 전통음식으로 우연하게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삼계탕에 이어 한국인의 대표 보양식으로 손꼽는 장 어長魚 역시, 이 뜻에 따라 전북 고창을 대표하는 고유한 음식에서, 한국인의 대표 보양음식으로 사랑받고 있는 것이다.

생김새 때문에 오랫동안 버림 받았던 장어

지금이야 장어長魚하면 으뜸의 보양음식으로 손꼽지만,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처음부터 장어류를 보양식이나 식재료로 즐겨 먹지는 않았던 것같다. 그 이유가 바로 뱀의 모양을 한 흉측스러운 장어의 모습 때문이었는데, 20여 년 전 만해도 동해안 어부들이 그 생김새가 뱀을 닮았다 하여 잡지도 먹지도 않았던 ‘장치’처럼 장어도 꽤나 오랫동안 부정적인 이미지의 물고기로 취급받았다. 조선 후기의 문신 정약전(丁若銓, 1758~1816)이 저술한『자산어보玆山魚譜』에 맛이 달콤하고 사람에게 이로워 오랫동안 설사를 하는 사람은 장어로 죽을끓여 먹으면 이내 낫는다.’거 나, ‘어부들은 결핵에 걸렸을 때 갯장어를 민간요법으로 썼다.’고 하는 이야기 등이 이를 뒷받침 한다. 또한 1893년 일본인이 쓴 『조선통어사정朝鮮通漁事情』에서도 ‘한국인들은 뱀을 닮은 모습 때문에 잘먹지 않아 일본인들이 잡는다.’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1908년에 간행된 『한국수산지』에서도 ‘붕장어는 우리나라 전 연안에서 잡히는데 특히 남해안에서 많이 나기는 해도 일부러 잡지는 않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언제부터 갯장어, 붕장어, 뱀장어, 먹장어를 먹게 되었을까. 일제강점기 때 인 1930년 중후반부터이다. 태평양전쟁으로 물자와 식량사정이 어려워진 일본이 부산과 울산의 일부 해안지역에서 한국인들이 잡지도 먹지도 않는 갯장어를 어획하여 피혁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껍질만 가져갔는데, 부두의 노동자들이 이 때 남은 살코기를 조리해 허드레 음식 정도로 먹기 시작했던 것. 이 후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부산 자갈치시장 근처의 포장마차촌에서 곰장어(먹장어)양념구이를 팔 기 시작하면서 대중적인 음식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후로 뛰어난 맛과 월등한 효능의 영양성분이 알려지게 되면서 바다에서 나는 장어이든, 민물에서 나는 장어이든 구분 없이, 부정적 시각보다는 몸에 좋은 음식으로 사랑받게 된 것 이다.

장어구이 사진

풍천에는 풍천장어가 없다

장어는 민물장어인 뱀장어를 비롯해 갯장어, 붕장어, 먹장어가 있는데, 저마다 조리용도는 물론 맛과 먹는 시기도 다르다. 남해안에서 여름에만 잡히는 갯장어는 담백하고 순수한 맛이 특징이고 우리나라 전역의 바다에서 잡히는 붕장어(아나고)는 횟 감, 구이, 탕으로 좋으며 부산을 대표하는 곰장어(먹장어)는 구이용으로 제 맛을 낸다. 대한민국 최고의 장어로 손꼽는 고창 풍천장어는 민물장어인 뱀장어로, 장어류 중에서 유일하게 바다에서 태어나 강으로 올라가 생활하는 회유성 어류이다. 이들은 필리핀 서쪽 마리나 해구 근처의 심해400m에서 산란한 후 부화된 댓잎모양의 새끼들은 어미 고향으로 회귀하다 강 가까이에서 실뱀장어로 몸을 바꿔 제주도와 영산강, 그리고 고창의 풍천으로 올라와 성장을 한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풍천장어의 풍천風川은 고창의 지역명이 아니라 선운산 부근을 흐르며 바닷물과 민물이 합해져 흐르는, 길이 31km 인천강의 기수역汽水域을 일컫는 명칭으로, 이 수역은 조수간만의 차가 크고 밀물과 썰물에 따라 물의 흐름이 변하며 해풍과 육풍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바로 이곳에서 잡은 장어를 ‘풍천장어’라고 한다.

한편 인천강은 조선 영조 36년에 편찬된 목판본 지도첩인『여 지도輿地圖』에 처음 등장하는데, 조선 명종 때 퇴계이황선생 문하에서 수학했던 유학자 변성진(卞成振, 1549~?)의 호號인 ‘인천仁川’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01.『동의보감』에는 장어에 대해 ‘강한 양기의 효능이 있어 허해진 폐와 대장을 돋우는 좋은 식품’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문화재청 02. 고창의 특산물인 풍천장어는 민물장어인 뱀장어로, 장어류 중에서 유일하게 바다에서 태어나 강으로 올라가 생활하는 회유성 어류이다.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이렇듯 바닷물과 강물이 만나는 하구에서 뭍으로부터 유입되는 부유영양분과 담수종과 해수종의 풍부한 플랑크톤, 큰 수온차, 들물과 날물에 의한 물의 흐름 덕분에 탄력적인 육질에 최고의 영양 성분을 가진 풍천장어가 민물장어 중에서도 최고로 손꼽히는 것이다.

하지만 풍천에서 잡히는 자연산 뱀장어는 이제 거의 보기 힘들뿐 아니라, 돌무더기를 쌓아 놓고 잡는 전통방식으로는 수요를 따라갈 수 없어 안타깝게도 자연산 풍천장어 맛을 보기가 어렵다. 다만 자연산 풍천장어의 본래 맛을 만들어내기 위해 실뱀장어를 잡아서 양식을 하는데, 이렇게 민물에서 키운 뱀장어를 6개월 정도 자연상태의 바닷물에 두게 되면 몸집은 반으로 줄어들고 사료성분이 싹 빠진 상태의 자연산에 가까운 ‘갯벌풍천장어’가 만들어지는 것 이다.

03. 풍천장어구이. 선운사 어귀 인천강에서 나는 장어에 양념을 발라 구운 고창 지역의 향토음식이다. ⓒ두피디아 04. 장어구이는 포 뜬 장어살을 석쇠에 초벌구이 한 후장어의 뼈와 머리를 삶은 육수에 양념장을 발라 다시 구워 만든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풍천장어 맛은 자연과 습성이 만들어 낸 걸작품

좋은 풍천장어라 할지라도 지금과 같은 대중적인 별미나 별식 같은 구이나 탕으로 먹지는 않은 듯하다. 지역주민들의 이 야기를 들어보아도 풍천장어를 푹 고아서 보양식 정도로 먹었다는 것이다. 신재효(申在孝, 1812∼1884)의『퇴별가(토끼전)』완판본에서도 미뤄 짐작 할 수 있는데 ‘용왕이 병이 나서 임금 자리에 높이 누워 여러 날 신음하여 용의 소리로 우는구나. 수중의 온 벼슬아치들 이 정성으로 구병할 때… 양기가 부족한가 해구신도 드려보고 폐결핵을 초잡는지 풍천장어 대령하고’라는 대목을 보면 풍천장어를 약리음식 정도로 먹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약리음식이던 풍천장어가 장어의 대명사로 명성을 얻게 된 것은1970년대부터로 동백나무 숲이 병풍처럼 감싸 안은 천년고찰 선운사禪雲寺덕택이라 할 수 있다. 당시 선운사 연기교 옆의 ‘연기식당’과 길 건너 선술집 형태의 ‘신덕식당’ 등에서 장어구이를처음 팔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풍천장어를 구이나 탕 같은 전문메뉴로 판 것도 아니고 ‘끼워넣기’식의 메뉴 정도여서 이 때만해도 풍천장어의 풍미와 진가가 알려지지 못했다. 풍천장어에 대한 본격적인 명성은 1990년 대 들어 장어가 스테미너 식품으로 각광받기 시작하고 선운사가 전국적인 관광지로 알려지면서 국민보양음식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05.장어구이 양념장은 간장, 고추장, 설탕, 물엿, 생강즙, 다진 마늘, 계피를 넣고 푹 끓여 청주를 섞어 만든다. ⓒ우듬지 06. 고창 선운사. 풍천장어가 장어의 대명사로 명성을 얻게 된 것은 선운사 덕택이라 할 수 있다. 1970년 대 선운사 인근 식당에서 장어구이를 팔기 시작하면서 점차 유명해졌기 때문이다. ⓒ문화재청

장어요리는 지역별로 조금씩 다른 조리법으로 각각의 별미를 선보이고 있는데, 풍천장어 요리는 고추장 소스를 발라 세 번 굽는것이 전부이다. 특별할 것도 없어 보이는 조리법이지만 풍천장어 요리의 맛을 결정하는 것은 양념장이 아니라 풍천장어 고유의 육질 맛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맛볼 수 있도록 하는데 있다.

민물장어인 풍천장어는 그 맛도 맛이지만 불포화 지방산과 EDA등을 함유하고 있는 고단백 강장식품으로 영양적 효능도 뛰어나다. 『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도 강한양기陽氣의 효능이 있어 허해진 폐와 대장을 돋우는 좋은 식품이라 기록하고 있다. 민간에서는폐 결핵, 요통, 신경통, 폐렴, 관절염, 몸의 기를 돋우는 약리음식으로 복용하거나 먹어왔다는 기록들이 전해진다. 풍천장어의 유명세는 영양가나 맛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풍천장어가 한국을 대표하는 장어구이 브랜드로 인식되게 된 것은 인간의 삶보다더 기구할 만큼 천신만고의 자연환경을 극복한 풍천장어의 강인한 모태母胎습성과 풍천風川이라는 독특한 자연환경이 합合을 이루고, 여전히 바람과 물은 풍천장어를 살찌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글. 황영철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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