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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뱅슈Binche 카니발, 세계를 초대하는 유쾌하고 떠들썩한 봄맞이
작성일
2015-02-11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7717

만물이 잔뜩 웅크려 있던 겨울을 보내고 활기찬 봄을 맞는 벨기에 뱅슈의 카니발 준비는 다른 곳보다 요란하다. 뱅슈 시민들은 본격적인 카니발이 시작되기 6주 전부터 바빠진다. 마을 사람들이 축제에 쓸 의상을 함께 준비하고 악기 연주와 춤 연습에 나선다. 북과 비올라, 클라리넷 등을 들고 삼삼오오 모여 소리를 맞춰 본다. 세상이 겨울잠에서 깨어나야 할 때가 오면 이 작은 중세의 도시는 마치 축제를 위해 존재해 온 듯, 그렇게 화려한 팡파르를 준비하며 세상에서 가장 화사한 봄을 맞이한다.

 

01. 하늘 높이 솟아 오른 타조 깃털 장식을 하고 벨기에를 상징하는 검정과 빨강, 노랑의 사자문양이 들어간 옷을 입고 카니발을 즐기는 사람들. ⓒ연합콘텐츠 02. 질(Gille)로 변장한 뱅슈 사람들. 얼굴에는 익살스런 초록색 작은 안경과 콧수염이 그려진 밀랍 가면을 쓰고 있다. ⓒ연합콘텐츠

 

신성로마제국황제를위해시작된축제와봄맞이의식의결합

벨기에 뱅슈 카니발은 그 기원이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뱅슈를 통치하던 이는 헝가리의 마리(Mary of Hungary,1371~1395) 여왕. 합스부르크 가문 출신으로 1515년 헝가리와 보헤미아, 크로아티아의 왕이었던 루이 2세Louis Ⅱ와 결혼했으나 1526년 남편을 전장에서 잃은 마리는 헝가리와 보헤미아의 여왕이 되어 이 지역을 다스렸다. 당대의 화가와 문인, 음악인들을 아낌없이 후원하던 예술 애호가로 문화적 조예가 깊었다.

마리는 1549년 8월 22일 멀리 스페인에서 온 자신의 오빠, 신성로마제국 황제이자 스페인 국왕이었던 카를 5세Charles Ⅴ와 조카인 펠리페 2세Felipe Ⅱ를 맞아 뱅슈에서 성대한 축제를 베풀었다. 당시 스페인은 제국으로서 최전성기에 있었다.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하고 페루까지 식민지배하기에 이르렀다. 마리는 오빠가 페루를 식민 통치하게 된 것을 축하했다. 그리고 성대하게 펼친 축제에서 스페인의 페루 지배를 축하하는 의미로 잉카 제국의 복장을 흉내 낸 타조 깃털 장식을 선보였다.

지금도 뱅슈 카니발에서 유독 눈에 띄는 타조 깃털 장식은 이때의 축제 참가자들이 잉카 제국의 복장을 흉내 냈던 데서 비롯됐다. 일주일간 계속됐던 당시의 축제는 유럽에서‘최고의 축제’라는 명성을 얻었다. 원래 뱅슈에는 14세기부터 봄을 맞이하는 ‘질Gille의 축제’가 있었다.

마리가 오빠를 위해 개최한 축제는‘질의 축제’에 영감을 주었고, 이 축제가 또 가톨릭의 카니발 문화와 결합하면서 서서히 뱅슈 카니발로 자리잡아갔다.

03. 카니발은 사흘 동안 진행되는데, 질은 카니발 마지막 날 도시에 들어선다. ⓒ김진경

 

04. 05. 새벽부터 옷을 차려입고 거리로 나온 질들이 가두행진을 하고 있다. ⓒ연합콘텐츠

 

오렌지 던지고 발 구르며 나쁜 기운 몰아내고 좋은 기운을 맞아라!

뱅슈 카니발에는 단연 눈에 띄는 존재가 있다. 전설 속의 인물에서 유래했다는 질Gille이다. 카니발 때가 되면 뱅슈 사람들은 질이 되어 봄을, 그리고 손님들을 맞는다. 하늘 높이 솟아 오른 타조 깃털 장식을 하고 벨기에를 상징하는 검정과 빨강, 노랑의 사자 문양이 들어간 옷을 입는다. 윗옷 안쪽에는 짚을 넣어 상체를 한껏 과장되게 부풀어 오르도록 만든다. 상의와 허리띠 주변으로 종을 매달아 움직일 때마다 소리가 나도록 한다. 얼굴에는 익살스런 초록색 작은 안경과 콧수염이 그려진 밀랍 가면을 쓴다. 한손에는 오렌지 망을, 또 다른 손에는 나쁜 기운을 쫓는 나무막대를 들고 나막신을 신는다.

카니발은 참회 주일Shrove Sunday부터 마르디 그라Mardi Gras까지 사흘 동안 진행된다. 질Gille은 카니발 마지막 날 도시에 들어선다. 1천여 명에 이르는 질들은 새벽부터 옷을 차려입고 옛 농부 복장, 그리고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어릿광대 아를레키노arlecchino, 피에로 등으로 분장한 행렬과 함께 가두행진을 시작한다. 가두행진을 할 때면 북과 비올라, 클라리넷 등의 악기 연주가 어우러진다. 가두 행진을 할 때 질들은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오렌지를 꺼내어 던진다. 오렌지를 맞은 사람은 따뜻하고 밝은 행운의 봄을 맞는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서 질들이 던지는 오렌지를 서로 맞으려드는 풍경을 연출한다. 질들은 나막신을 신고‘질들의 스텝(pas deGille)’이라고 하는 춤을 선보인다. 질들의 나막신은 겨우내 잠든 대지를 두들기며 겨울을 쫓아낸다.

뱅슈 카니발에서 질들이 음산한 기운을 쫓기 위해 땅을 힘껏 밟는 대목은 자연스레 우리 전통 문화 지신밟기를 연상시킨다. 우리도 예부터 음력 정초가 되면 마을에서 풍물패들을 앞세워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지신을 밟고 노래를 부르고 춤도 추는 등 떠들썩하게 잔치를 벌이며 마을의 평안과 풍년을 기원하고 집안의 복을 축원하지 않았던가.

뱅슈 카니발이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시기의 행운을 비는 행사라면 지신밟기는 묵은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으며 벌이는 행사다. 비슷한 시기 땅을 밟으며 사악한 기운을 몰아내고 좋은 기운을 받아들이려는 방식이 동서양에서 이렇게도 닮아 있다.

카니발축제 복장

 

06. 밀랍 가면을 만드는 모습. 질이 쓰는 독특한 디자인의 가면은 뱅슈에서만 쓰일 수 있고 그들의 공동체에서만 질에게 판매할 수 있다. ⓒ유네스코

 

마을 주민에 의한, 마을 주민들의 카니발

뱅슈 카니발은 오랜 역사와 더불어 카니발이 지역 주민들의 높은 자발성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명성이 높다. 유네스코는 뱅슈 카니발에 대해 특히 ‘주민들이 큰 자부심을 갖고 전통의상, 장신구, 춤, 음악과 관련된 귀중한 기술과 지식 보전에 애쓰고 있다’ 는 점을 높이 사고 있다. 뱅슈 주민들은 축제 의상을 자신들의 비용으로 마련하고 있다. 축제 의상과 머리 장식은 별도로 전문가가 관리하며 해마다 카니발 때가 되면 주민들에게 대여해준다.

카니발의 제사장격인 질에 대한 자부심 또한 높다. 뱅슈 지역 가문의 출신으로 5년 이상 뱅슈에서 사는 사람에게만 질이 될 자격이 주어진다. 뱅슈 카니발의 자랑인 질의 의상은 카니발 때에만 입을 수 있으며 다른 지역에 가져가는 것도 금지하고 있다. ‘질은 절대 뱅슈를 떠나지 않는다’는 전설을 지키기 위해서다. 질이 쓰는 독특한 디자인의 밀랍 가면도 1985년 유럽 특허국에 등록되었다. 이 가면은 뱅슈에서만 쓰일 수 있고 그들의 공동체에서만 질에게 판매할 수 있다. 카니발 참여와 카니발 상품의 남용에 대한 엄격한 제한이 뱅슈 사람들에게는 카니발에 대한 자긍심과 더불어 강한 연대감을 심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뱅슈는 인구 3만 2천 명의 작은 도시. 하지만 주민들이 주축이 되어 개최하는 카니발 때가 되면 이곳 인구의 10배가 되는 30여만 명의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뱅슈를 들썩인다.

관광객들은 카니발 때가 되면 질들과 함께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조용하던 도시는 생동감과 활력을 얻는다. 경쾌한 스텝은 질과 가장행렬들에게서시작되어몰려든관광객들에게로전해진다. ‘타~타닥 두웅~둥’ 도시 전체에 울려 퍼지는 경쾌하고도 웅장한 음악 소리와 발소리. 이쯤 되면 제 아무리 나쁜 기운이라도 버틸 재간 없이 도망가지 않겠는가. 해마다 봄은 그렇게 희망의 메시지를 가지고 당도한다. 이곳 뱅슈에선.

 

글 김진경 (세계인형전시관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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