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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창경궁에서 외로운 왕과 만나다
작성일
2015-02-11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3612

“엄마, 창경궁이 어디에 있어요? 창경궁을 창경원이라고 불렀다면서요? 나도 한 번 가보고 싶어요.”라는 아들말에순간, 어릴적일이생각났다.‘ 창경원’이라불리던시절, 한40년전쯤일까? 창경원에 놀러갔다가 부모님을 잃어버려서 울면서 찾아 헤맸던 기억이 흑백필름이 되어 생각났다..

 

01. 왕의 생활공간이자 연회 장소로도 사용했던 통명전(보물 제818호). 궁궐 안 내전 중 가장큰 건물로 옛 격식을 잘 보존하고 있다. 02. 사도세자와 순조가 탄생한 집복헌과 정조가 독서실로 사용했던 영춘헌.

 

세월은 유수와 같이 흘러 이제는 원래 이름인 창경궁을 되찾았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엄마가 아주 어렸을 적에 창경원에 갔었다고 아들에게 얘기하니“으악, 대박”이라며 나를 빤히 올려다본다. 하긴 어린 녀석의 입장에서는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느낌으로 다가오겠지.

창경궁 가는 일이 뭐 어려운 일이랴. 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창경궁에 입성하니 뿌듯한 마음에 절로 두 어깨가 펴졌다. 마치 오래전 밀린 숙제를 끝내는 느낌으로 한발 들어 궁의 정문인 홍화문 안쪽으로 들여놓으니 흑백 필름이 총천연색 칼라 필름으로 바뀌는 느낌이었다. 왜 가까이 있는 우리의 궁을 지금에서야 찾게 된 것일까? 일제에 의해 식물원과 동물원으로 변해 있었을 때는 사람들로 북적였는데 지금 궁 안은 오히려 한산하다. 우리의 아름다운 궁을 식물원과 동물원으로 만든 일제의 만행에 굴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아예 창경원을 찾지 말고 구경조차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왜 아버지는 내 어린 손을 잡고 동물 구경시켜 주겠다고 하셨을까? 지금 생각하니 억울한 마음에 괜스레 아버지를 탓하는 내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났다.

창경궁은 조선 9대 임금인 성종이 1483년 창덕궁 동쪽에 세운 궁궐로 창덕궁이 좁아 세 명의 대비를 위한 공간으로 수강궁을 확장보완하면서 공사 도중에 창경궁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창건초기에는 쓰임새가 많지 않았지만 임진왜란 이후 창덕궁이 정궁 역할을 하면서 이궁으로서의 활용 빈도가 높아졌다고 한다.

그리고 창경궁은 임진왜란 때 불에 탔다가 1616년(광해 8)에 재건되었는데 이 때 재건된 명정전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정전 건물이라고 한다. 하지만 일제에 의해 1907년부터 창경궁 안의 건물들을 헐어내고 동물원과 식물원을 설치하여 일반에 공개하였으며, 1911년에는 창경원으로 격하시켰다고 한다. 이에 1983년부터 동물원을 이전하고 본래의 궁궐 모습을 되살리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한 쪽에서 부지런히 공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루라도 빨리 복원되어 창경궁의 옛 명성을 되찾았으면 좋겠다.

명정전을 지나 문정전에 들어서니 사도세자가 우리를 맞는다. 당시 집권세력이었던 노론과 세자의 처가와 누이 화완옹주에 의해 문정전 앞뜰에서 뒤주에 갇혀 28세의 짧은 생을 비참하게 마감한 사도세자. 세자의 죽음 후, 영조는 그를 애도하는 의미로‘사도’라는 시호를 내렸다고 하는데 아들이 죽은 후 애도해야 무엇 하겠나싶어 마음이 아팠다. 뒤주에 갇혀 죽은 아버지의 삶을 본 정조의 원통하고 애달픈 마음이 생생하게 전해지는 것 같아 눈길이 떠나지 않았다.

다시 발걸음을 옮겨 숭문당을 지나 올라가 어디로 갈까 두리번거리는데 문정전 뒤쪽 길가 안쪽에 서 있는 주목이라는 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왔다. 어찌된 일인지 죽어있는 주목나무 한 쪽 가지에서 잎이 돋아나고 있었는데 죽은 나무에 꽃이 핀다더니 사도세자의 영혼이 깃든 것 같아 엄숙한 마음이 들었다.

왕비의 침전으로 사용된 통명전에서는 인현왕후를 저주하다가 사약을 받은 장희빈의 이야기가 들려오는 것 같았고, 사도세자와 순조가 탄생한 집복헌과 정조가 독서실로 사용했다는 영춘헌에서는 아기들 웃음소리를 떠올리며 잠시나마 행복한 웃음을 지었을 왕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성종태실로 올라가려고 계단을 오르는데 영춘헌 뒤쪽에 있는 소나무의 모습이 남달라 보였다. 소나무 가지 위에 다정하게 앉아있는 두 마리의 까치가 사도세자와 정조, 정조와 순조가 부자간의 다정한 모습을 보이는 것 같았고, 소나무가 이를 껴안고 보호하고 있는 듯 두 팔을 영춘헌 쪽으로 기울이고 있어 애잔한 마음이 들 었다.

성종태실을 지나 왕이 농정을 살피던 춘당지를 둘러보며 왕의 고심을 느낄 수가 있었고, 나무 한 그루 한 그루 마다 조선 왕조의 역사가 느껴져 마치 살아있는 듯한 혼이 전해오는 느낌이었다. 나무가 살아서 말을 하는 것 같았고, 나를 지켜보는 것 같아 범접할 수 없는 위엄과 경이로움이 느껴져 고개를 들어 나무꼭대기까지 올려다 보고있는데함께있던아들이한마디한다.“ 엄마, 왕은무서웠을 것 같아요. 낮에는 괜찮은데 밤에는 전깃불도 없는데 어두워서 무섭고 외로웠을 것 같아요. 왕을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속으로는 겁이 많이 났을 것 같아요.”그래, 어쩜 왕은 외로움이라는 짐을 한 평생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 숙명을 타고난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겉으로는 부귀영화를 다 누리고 사는 것 같지만 마음속으로는 언제나 누군가의 칼끝이 자신을 향하고 있지나 않는지 노심초사하며 외롭고 힘들지 않았을까. 창경궁에서 외로운 왕과 만나고 돌아오는 길, 그 깊은 고뇌의 흔적을 느끼며 왕의 발자국 따라 걸었던 창경궁 안에서의 하루가 뜻 깊게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03.‘왕이 농정을 살피던 춘당지. 창덕궁을 둘러싼 언덕에서 흘러내리는 작은 냇물을 모아 만들어진 연못이다.

 

코너는 독자 여러분이 만드는 코너입니다. 여행에서 만난 문화재, 내가 가장 사랑하는 문화재, 우리 역사의 흐름을 알 수 있었던 박물관 등 문화재와 관련된 독자 여러분의 기고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정해진 주제는 없으며 문화재에 관한 소중한 이야기,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언제든지 보내주시면, 기쁜 마음으로 지면에 싣도록 하겠습니다. 아래 양식에 맞는 원고와 사진을 연락 가능한 전화번호와 함께 보내주세요. · 원고분량 : A4용지 기준 1장(10pt) · 사진 : 해당 여행 관련 사진 5매 이상 · 보내실 곳 : 문화재청 대변인실 김수현(nicosia@korea.kr)

 

글·사진 박남수 (경기도 시흥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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