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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정의사회의 해법과 체득體得의 인성교육
작성일
2015-01-09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3995

정의사회의 해법과 체득體得의 인성교육. 원래 동양 고전에서는‘정의正義’라는 말보다‘의義’라는 말이 주로 사용되었다. ‘선善’이나‘미美’라는 다른 주요가치 개념들도 그러하지만‘의義’라는 용어도 유목시대적인 흔적을 가진 말이다. ‘의義’는‘양 양羊’자 아래에‘나 아我’자를 붙여 합성한 것으로, 집단을 이루어 양치기를 하는 가운데 각자의 양을 나타내는 푯말을‘의義’라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의義’는 나의 양과 너의 양을 구분하여 표시하는, 따라서‘각자의 몫’을 나타내는 것으로, 서양에서 건너온 분배적 정의라는 말과 그 의미에 있어서 상통하는 것이다.

정의 문제의 본질은 무엇인가?

정의(justice)에 대한 서양의 고전적 정의에서 볼 수 있듯 정의는 ‘각 자에게 그의 몫을 주는 것(to each his own)’ 이라 할 수 있다. 각자가 자신의 몫을 향유하는 사회가 정의사회라고 할 때, 우리 사회처럼 일부가 타인의 몫까지 탐식하고 다른 일부는 자신의 몫도 누리지 못 해 허덕인다면 이는 분명 부정의 한 사회임이 틀림없다 할 것이다. 필자가 수십여 년 간 정의론에 골몰하면서 얻은 결론은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한 가지 정답을 찾기가 어렵다는 사실이다. 정의를 바라보는 다양한 정의관이 있으며, 하나의 정의관에 대한 사람들의 합의를 도출하기는 쉽지가 않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인간이 날 때부터 불평등하게 태어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정의의 문제는 이 같은 원초적 불평등(original inequality)을 우리가 인간적으로 시정하고 재조정하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인생이라는 경주에 있어서 원초적 불평등은 태어난 사회적지위(social status)와 같은 인생경기의 시발점과 관련된 우연과 타고난 자연적 능력(natural ability)과 같이 경기력과 관련된 우연에 의한 것이 며, 이러한 우연들은 그럴 이유도 없이, 우리가 책임질 수도 없이, 단지 주어진 운명이요, 그런 의미에서 운運, 혹은 복福이라 할만하다. 따라서 정의의 문제는 이 같은 운이나 복에 대해 어떻게 해석 하고 재조정할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이같이 운이나 복의 결과로서 주어진 원초적 불평등은 도덕적으로 정당성을 얻기 어려운 것인 까닭에 운이나 복을 그대로 방치한 ‘복 불복’ 의 사회는 부정의한 사회라 할 수 있다. 정의론자 존 롤즈John Rawls는 운과 복을 도덕적 관점에서 중립화(neutralize)하고 사회적 약자를 위시한 모든 사회 성원의 공동운명체 의식을 갖는데서 정의 사회에로의 해법이 찾아질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정의사회로 가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우리가 정의문제를 논의할 때면 의례히 ‘구조적 비리’ 나 ‘구조적 부조리’ 등 거대담론을 들먹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이미 잘 알고 있듯 구조의 변혁이나 개혁을 기대한다는 것은 백년하청에 가깝다. 우리가 혁명을 통해 구조를 뒤집지 않는 한 구조는 서서히 바뀌고 점진적으로 개혁될 수 있을 뿐이다. 물론 거대담론도 중요하기는 하나 그것에만 몰두하다보면 세월만 공전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이 글에서 좀 더 소박한데서 정의사회로의 해법을 찾아보고자 한다.

01.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가 서울시 직원들을 대상으로‘정의, 시장 그리고 좋은 사회’란 주제로 특강을 하고 있다. ⓒ연합콘텐츠 02. 재판관이 판결을 내릴 때 사용하는 법봉. 재판관은 어느 상황, 누구를 대상으로 하든 공정한 판결을 내려야 한다. ⓒ이미지투데이

정의로운 사회를 향한 근본적인 문제

근래에 미국 하버드대학의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가 130여만 부 이상 팔리면서 우리 지성계를 쓰나미처럼 강타하였다. 그러나 그로 인해 우리가 배운 게 무엇이고 샌델 신드롬 이 우리에게 남긴 것이 무엇인가. 그것이 진정 한낱 신드롬에 불과하다면 우리 지성계는 얼마나 천박하고 우리의 지적 내공은 또한 얼마나 빈약한 것인가? 명품대학 명교수에 대한 쏠림이고 유행심리에 불과했던 것이 아닌가?

사실 정의로운 사회를 향한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가 정의가 무엇인지 모른다는 사실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즉 정의에 대한 인식의 문제라기보다 아는 그만큼이나마 실행하고 실천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너무도 식상한 이야기이겠지만, 뉴스에서 세월호 사건에 대한 보도를 볼 때마다 가슴 아픈 장면이, 속옷바람으로 부들부들 떨면서 도망가는 선장과 선원들의 비굴한 모습이다. 지금도 필자는 그 장면이 던져준 숙제와 고민으로부터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나 자신도 그런 처지에 있었다면 선장과 달리 행동했으리라는 보장이 있는가. 선장과 선원들은 그 순간 자신이 해야 할 저마다의 몫을 내팽개친 채 양심의 가책으로 부들부들 떨면서 도망질했을 것이다.

앞서 우리는 정의가 각자의 몫이라 했다. 각자의 몫은 사회에 대해서 각자가 요구하고 주장할 ‘권리로서의 몫’ 이기도 하고 사회에 대해 각자가 부담하고 져야 할 ‘의무와 책임으로서의 몫’ 이기도 하다. 권리와 의무는 서로 상관적 개념이다. 당당히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기 위해서는 그 반대급부인 의무와 책임을 성실히 이행해야 할것이 전제된다. 대체로 우리는 정의를 명분으로 각자에게 주어진 권리와 의무가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다. 문제는 우리가 대체로 자신의 권리에 대해서는 예민한 반면 자신의 의무에 대해서는 둔감하다는 데서 비롯된다. 정의로운 사회로 가기 위한 해법은 바로 여기에서 찾아야할 것이라 생각된다. 자신의 권리를 소리 높여 주장하기 이전에 정의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자신의 의무와 책임을 다했는지 스스로 성찰해 볼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다.

흔히 말하듯 우리 사회가 초위험 사회인 것은 우리가 정의의 이름으로 자신의 권리만 내세우고 자신의 의무와 책임을 챙기지 않는 부정의한 사회이기 때문이 아닌가. 인생이란 매사에 있어서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것이 단지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몸속에 내면화되고 체득體得되어 자신의 것이 되어야 한다. 세월호의 선장은 그 순간 선장이 해야 할 책임과 책무의 매뉴얼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체득되어 자기화 되지 않은게 분명하다.

03. 세월호 침몰사고 당시 허겁지겁 탈출하는 선원들. ⓒ연합콘텐츠 04. 광화문광장에서 인성회복국민운동본부 회원들이 인성교육을 강조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연합콘텐츠

정의로운 사회를 향한 실천적인 해법

공자(孔子, BC 551~BC 479)의 어록인『논어論語』서두에서 공자는 성공 적인 인생이란 매뉴얼을 배우고(學) 그래서 단지 아는 것(知)에 그치지 않고 반복 훈련(習)해서 습관화되고 자기화되어 실행(行)할 수 있어야 하며 그래야 비로소 생활이 도덕적으로 합당하고 또한 즐거운(悅)삶이 보장된다고 강조한다.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은 매뉴얼을 단지 알고 있었지만 부단히 연습하여 자기 체내에 습득하지 못 해 몸에 익혀진 매뉴얼이 아니었기에 자신의 임무를 파기한 실패한 인생이 된 것이다.

뇌과학에서도 알고 있는 것은 지속적으로 반복해야 그것이 기억이 되고 자기화된다고 한다. 심리학에서는 인간이 위기상황에 당면했을 때 표출되는 것은 그의 지식이 아니라 체화된 버릇, 습관이라 한다. 아는 것이 오랜 반복적 행위를 통해 우리의 몸에 익어 버릇이 되고 습관이 되면 그것이 무의식, 잠재의식에 내장되어 비상시에 우리를 지켜주게 된다는 것이다.

국회 윤리위원회에서도 세월호 참사 이후의 대책으로써 인성교육을 강조하고 예산도 지원할 생각이라 한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기는 하나 반가운 소식이다. 그러나 문제는 어떤 종류의 인성교육을 할 것인가이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그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매뉴얼을 반복적인 행동을 통해 내면화, 내재화, 습관화, 자기화, 생활화하는 일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유덕한 행위를 강조하면서 한 마리의 제비가 난다고 해서 봄이 온 것은 아니라고 했다. 지속적인 반복학습 그것이 우리가 정의사회로 나아가는 해법으로써 요구되는 인성교육의 핵심이다.

인성교육은 사고교육으로 시작해서 덕성교육으로 완성되어야 한다. 매뉴얼을 익히는 반복학습 그것은 모든 전문직 종사자의 필수 커리큘럼이 되어야 할 것이다. 다른 나라들에서는 위험부담이 큰 선박이나 항공 등 종사자는 매일같이 매뉴얼과 관련된 행위들은 반복해서 연습하고 점검한다고 한다. 행위는 우리의 의도를 시행하고 실행하는 수행적(performative)기능도 있지만 그런 행위 결과는 다시 피드백되어 행위 주체의 성품과 성격을 공고히 해주는 형성적(formative)기능도 있다.

매뉴얼을 익히는 데에도 반복학습이 필요하겠지만 위험부담이 있는 직종에는 담력이나 용기 등의 덕목을 익히는데도 반복학습이 요구된다. 비굴하고 무책임한 선장의 모습을 보고 우리는 인성교육의 실패를 실감하게 된다. 물론 이같이 전문직 종사자의 인성교육을 강조한다해서 법적, 제도적 조치가 소홀히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자신의 역할을 방기한 책임은 중형으로 다스려야할 것이다. 일벌백계라는 말이 있듯 자신의 책임을 방기한 자를 중형으로 다스리는 것은 인성교육의 당위성과 심각성을 깨닫는데도 큰 파급효과가 있다.

흔히 우리는 정의로운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전략으로써 구조개혁 이나 제도의 혁신을 말하기도 하고 인간개조나 의식개혁을 거론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상 제도개혁과 의식개조는 부정의한 사회를 바꾸기 위한 해법의 두 가지 핵심요소로서 이 두 가지는 서로 보완하고 서로 요청하는 수레의 두 바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제도개혁의 필요성을 깨닫고 혁신의 의지를 갖는 것이 사람의 생각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면 결국 열쇠는 인간이 쥐고있다 할것이다.

 

글 황경식 (서울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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