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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초심과 뚝심의 숙명, 전통기와의 맥을 잇다
작성일
2019-12-27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970

20여 년. 뭉툭해진 장인의 손길에 나무와 불, 쇠와 바람이 살갑게 곁을 내어준다. 흙은 이들을 품고 조화롭게 여물어간다. 인고의 순간을 오롯이 버텨낸 전통 기와가 은은하고 오묘하게 빛을 내는 순간, 제와장 분야 우리나라 유일의 국가무형문화재인 그는 담담하게 초심으로 돌아간다. 그에게는 여전히 할 일이, 갈 길이 멀다.



옛스러움. 그대로를 담아내다

갓 7년쯤 되었을 터. 누르스름 빛바랜 나무문을 열고 작업장에 들어서자 가지런히 늘어서 있는 기와들 옆으로 숭례문 복원 당시 제작됐다는 잡상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옛스럽다기보다 그 시대 그대로라 여겨질 정도로 옛 숨결을 고이 간직했다.


“옛날부터 저 자리에 있었던 기와 같아요.”


몇 년 전 기와 복원작업에 참여했던 국보 1호 숭례문에 점검차 들렀던 어느 날, 누군가 그리 말하는 걸 우연히 곁에서 들었다. 전통건축 양식 그 모습 그대로를 재현해내야 하는 이에게 이보다 더한 찬사가 있을까. 다 내려놓고 싶을 정도로 힘든 순간도 많았고, 경제적인 여건을 고려해야 할 만큼 녹록지 않은 과정을 겪어왔지만, 그 한 마디가, 한 장 한 장 정성스레 쌓아 올려진 기와지붕의 고풍스러운 자태가, 그를 다시 원점으로 불러세운다.





초심과 뚝심의 숙명, 전통기와의 맥을 잇다 1. 전통방식으로 조각된 용문양 암막새와 만자문 수막새 ⓒ김창대


흙과 맺은 연(緣), 숭례문에 숨결을 불어 넣다

제와장 김창대. 그는 우리나라 최초 제와장 분야 국가무형 문화재였던 고(故) 한형준 선생으로부터 제와 기능을 전수받아 현재 그 맥을 잇고 있는 유일한 제자다.


** 제와장(製瓦匠) : 『경국대전(經國大典)』「공전(工典)」 ‘공장’ 조에 기록된 와장(瓦匠, 기와 기술자)과 잡상장(雜像匠, 잡상 기술자). 이를 아우르는 장인을 오늘날 제와장이라 일컫는다. 일반적으로 전통 수제기와를 만드는 장인으로 통칭된다 .


“1998년 MBC에서 방영된 선생님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무작정 찾아갔었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재직 중이던 부산디자인고등학교 아이들 실기 교육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였어요. 그러다 가마 앞에서 혼연일체로 불을 다루시던 모습에 감명을 받았고 이후 틈만 나면 부산에서 장흥까지 5시간 되는 거리를 뛰어다니게 됐지요.”


그와 흙과의 인연은 좀 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산공예고등학교 도자기과를 전공한 그는 만 18세 나이에 전국기능경기대회 도자기 종목에서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그를 눈여겨본 학교 관계자가 교육공무원을 제의해왔고 고교 졸업과 동시에 실기교육 담당 공무원으로 일하게 된 것이다. 이른 나이에 승승장구한 탓에 하늘 높은 줄 몰랐던 그의 기를 단번에 꺾어버린 것이 바로 한형준 선생이었다. 이후 학교를 그만둔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스승의 곁을 지켰고, 한국전통문화대학에서 흙 작업 전반을 비롯해 전통공예, 고고학 등 전통문화 전반을 익히는 과정까지 수료하게 되면서 그의 세계는 좀 더 견고해지고 단단해졌다.


기와를 배운 지 13년이 되던 2009년, 그는 스승을 필두로 한 10여 명의 복원팀과 함께 ‘숭례문 기와 복원’이라는 대규모 프로젝트에 투입된다. 숭례문이 지어질 당시와 가장 비슷한 기와를 만들기 위해 등요 기와가마가 복원됐고 흙 배합 등 전 과정이 철저한 고증을 거쳤으며, 낮밤 없이 혼신을 다한 끝에 마침내 2013년 성공적으로 복원을 완성하게 되면서 복원 기간 내내 맴돌았던 주위의 우려를 단번에 불식시켰다. 그리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창덕궁 부용정과 취운정, 창경궁의 숭문당, 대전 동춘당 등 20여 차례의 문화재 복원 현장을 직접 지휘해왔다.


“숭례문 복원 완공식 참여하신 직후 선생님께서 병원에 입원하셨습니다. 워낙 여러모로 고생하시고 원래도 몸이 안좋으셨던 터라… 이후 한 달 만에 별세하셨습니다. 선생님의 귀한 기법을 전수받은 장본인으로서 어깨가 참 무겁습니다. 그 뜻 그대로 저도 다음 세대에 잘 전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해야지요.”


01. 수키와 성형 마무리 중 미구 부분 정형

기다림으로 잉태되는 전통 수제기와

흙을 반죽하는 작업에서 건조에 이르기까지 한 장의 기와가 완성되는 데 소요되는 기간은 35~45일. 고단한 인내와 기다림의 연속이다. 경주와 부안, 영암과 하동, 장흥에서 각각 공수된 흙으로 기와 원토를 만들고 기와 흙편을 만드는 담무락 과정과 암키와 수키와 성형, 문양을 새기는 막새, 건조와 가마까지 17단계의 공정, 세부적으로는 36단계를 거친다. 날씨에 민감한 데다 일일이 수작업으로 진행되다 보니 일주일에 만들어낼 수 있는 최대치가 500여 장이다. 20여 년을 한결같이 작업 현장을 지켜왔지만, 그 역시 초심과 뚝심이 없이는 힘든 과정이라고 말한다.


“작업장을 좀 더 안정적으로 재정비해서 기와 연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편히 작업할 수 있도록 공동작업장 형태로 사회에 기부하는 것이 제 몫이라 생각합니다. 후배들도 그렇고 사람들이 무형문화 전수에 무관심하다면 그건 오롯이 기성세대와 남아 있는 사람들이 이끌어주지 못한 탓일 겁니다. 직접 경험해보고 능동적으로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겠지요. 물론 단순한 작업자가 아니라 장인이 되기 위해서는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깨닫고 성장해나가는 부분도 필요하고 또 중요하지만, 저도 여러 힘든 과정을 겪으며 여기까지 온 터라 후배나 다음 세대들은 좀 더 안정적인 여건에서 작업했으면 하는 마음이 큽니다.”



02. 국보1호 숭례문 잡상 (대당사부) ⓒ김창대 03. 전통방식으로 제작 중인 경복궁 향원정 보수용 암키와 건조 모습 04. 2013년 5월 준공기념식 직후 국보1호 숭례문 전경 ⓒ김창대 05. 계승된 전통제와법으로 수키와를 성형 중인 국가무형문화재 제91호 제와장 보유자 ⓒ김창대


불을, 사람을 다독이다

섭씨 1,000도가 넘어야 비로소 기와의 모양새가 완성되는 가마 앞. 그는 ‘불’을 한결같이 그 속을 헤아려주고 다독여야 하는 벗이라 표현한다. 그리고 지금 현장을 함께 지켜주고 있는 제자들 역시 ‘동료’라 칭했다. 그는 전통문화가 현시대와 공존하고 사람과 자연, 사람과 사람이 어우러지고 더불어 상생하는 세상, 누군가는 구닥다리 기술이라고 할지 모를 무형문화가 찬찬히 여유롭게 뿌리내리고 그 가치를 꽃 피워낼 수 있도록 기다려주고 함께 바라봐주시면 좋겠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전했다.


“가마 문을 여는 순간이 되면 저는 지금도 여전히 궁금하고 설레며, 노심초사 걱정도 되는 등 만감이 교차합니다. 어려움도 있지만 남몰래 한 번씩 제가 올린 기와들을 보러 갈 때면 그 자부심과 뿌듯함은 정말 말로 표현하기 힘들지요. 제가 끝까지 이 현장을 지키게 될 이유입니다. 여전히 여러모로 부족한 사람입니다. 할 일도 많고요. 앞으로 더 정신 바짝 차리고 갈고 닦아 나가야지요.”



글. 김은섭 / 사진. 김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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