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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담백한 화법으로 빚어낸 절제미
작성일
2019-07-02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1470

담백한 화법으로 빚어낸 절제미 화가 채용신의 작품세계 채용신(蔡龍臣, 1850~1941)은 호가 석지(石芝), 석강(石江), 정산(定山)으로 어려서부터 그림을 잘 그려 15세 무렵에는 이미 그림으로 이름이 알려졌다. 1900년, 창덕궁 선원전(璿源殿)에 봉안할 태조어진을 모사(摹寫)할 주관화사(主管畵師)로 발탁되어 어진화사로 이름을 알렸다. 그가 그린 태조어진이 화재로 소실되자 다시 어용을 모사하게 되었고, 이어서 숙종, 영조, 정조, 순조, 익종, 헌종의 진영을 모사하였다. 또한 고종의 어진도 그리게 되었는데 채용신은 이때 그린 고종 어진의 초본을 바탕으로 이후에도 여러 차례 모사했다. 현재 고종의 어진이 여러 점 현존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그는 어진 도사의 공을 인정받아 고종에게‘석강’이라는 호를 하사받았고, 가선대부 종이품으로 승진하였으며 칠곡도호부사(漆谷都護府使)와 정산(定山) 군수를 지냈다. 그러나 1905년 을사보호조약(乙巳保護條約)으로 일본에 의해 외교권이 박탈되자 관직에서 물러나 낙향한 후 그림에 전념하였다. 1917년에는 도일(渡日)하여 일본의 유명 인사들의 초상화를 그려준 적도 있으나 대부분의 시간은 주로 호남 지역에서 활동한 우국지사들의 초상화를 제작하였으며 때로는 다른 지역에서도 주문을 받아 초상화와 성현상을 제작했다. 말년에는 아들, 손자와 함께 ‘채석강도화소(蔡石江圖畵所)’라는 공방을 차려 상업적 목적의 주문 초상화를 제작하였다. 그는 초상화를 제작할 때 전통양식을 계승함은 물론 당시 새롭게 등장한 사진을 활용하는 등 서양 화법의 수용에도 적극적이었다. 그의 초상화는 어진 상을 비롯해 사대부와 유학 자상, 성현상과 종교인물상, 부부상과 여인상 등 그 신분과 대상이 매우 다양하다. 01. 국보 제1510호 <최익현 초상>. 굳게 다문 입술에서는 깊게 주름잡인 노년에도 결코 꺾이지 않는 의기가 서려 있다. 결코 과장되거나 꾸미지 않는 표현법은 대상의 본질을 드러내고자 한 작가의 의도가 잘 살아 있다. ⓒ문화재청 02. 채용신이 그렸거나 그린 것으로 전해지는 <고종어진>은 정면관이 특징이다. 정면관은 군주의 위엄과 근엄함을 보여줄 수 있는 수단으로 어진제작 때 선호하는 방식이다. ⓒ국립중앙박물관

궁궐에서부터 개인의 서재에까지 모셔놓은 고종 황제의 어진

채용신은 태조어진의 이모(移模)를 위해 궁궐에 입실한 후 그 실력을 인정받아 1901년에 고종 어진을 그렸다. 그 후 어진초본을 가지고 여러 차례 모사했는데 이것은 어진에 대한 개념이 변화되었음을 의미한다. 즉 진전에 근엄하게 모셔 놓는 용도로만 제작되었던 어진이 여러 사람이 개인적으로 모셔놓을 수 있는 대상으로 바뀌었다는 뜻이다. 많은 사람들이 고종황제의 어진을 모셔두고자 한 저변에는 한일합방 이후 고종황제로 상징되는 조선에 대한 충성심과 충정심도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채용신이 그렸거나 그린 것으로 전해지는 고종어진은 정면관이 특징이다. 정면관은 군주의 위엄과 근엄함을 보여줄 수 있는 수단으로 어진제작 때 선호하는 방식인데 채용신은 어진 뿐 아니라 다른 신분의 인물초상화를 그릴 때도 특히 정면관을 선호했다. 국립박물관 본 <고종어진>은 채용신의 전칭작인데 그가 그린 고종 어진 중 가장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다. 어진의 형식은 익선관에 곤룡포를 입고 두 손은 무릎 위에 올려놓은채 정면을 바라보고 앉은 전신교의좌상(全身交椅坐像)이다. 정면관에 옥대가 가슴 위로 올려져 있고 무릎에는 호패가 달린 술이 늘어져 있는 점과 돗자리가 표현된 점은 채용신 초상화의 특징이다.


고종의 안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육리문의 붓선이 살아있고 눈동자에는 반사광이 표현되어 있다. 그는 초상화를 그릴 때 사진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황현상(黃玹像)>을 그릴 때 김규진(金圭鎭)이 운영한 천연 당사진관에서 촬영한 초상사진을 참고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입체감과 명암법을 드러낼 때는 서양화처럼 빛의 각도에 따라 빛의 반사광을 표현하는 대신 안면의 튀어나온 부분은 밝게 그리고 들어간 부분은 어둡게 그리는 전통적인 기법을 따랐다. 이를 위해 안면의 주름살을 육리문에 따라 중첩된 세필로 명암을 드러내는 방법으로 양감을 살렸다.


입술의 도드라진 부분과 입술 주변을 밝게 드러냄으로써 입체감을 살리는 요철법은 이미 조선 후기 초상화에서부터 즐겨 그리던 기법이다. 사진에서 자신의 초상화에 필요한 부분만 선택적으로 차용한 점은 동시기 다른 화가들과 다른 채용신만의 특징이라 하겠다. <고종어진>이 어좌 뒤에 배경을 생략한 것과는 달리 원광대박물관 본 <고종어진>에는 일월오봉도가 그려져 있다. 그런데 전북대학교박물관에 소장된 <관우상>이 원광대본 <고종어진>과 양식이 흡사해 주목된다. 관우상은 익선관 대신 면류관을 썼지만 황룡포를 입고 어좌에 앉아 있으며 그 뒤에는 일월오봉도가 둘러쳐져 있다. 증산도의 교조인 강일순(姜一淳)의 초상화도 이와 비슷한 형식으로 그렸다. 채용신의 그림 대상이 어진에서 종교의 대상으로까지 확대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담백한 화법으로 응축된 조선말기 항일의병장의 초상

현존하는 채용신의 초상화 중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작품은 사대부상과 유학자상이다. 특히 채용신이 을사늑약으로 군수직을 그만두고 낙향한 후 1910년대에 그린 유학자상으로는 최익현(崔益鉉, 1833~1906), 기우만(奇宇萬, 1846~1916), 황현(黃玹, 1855~1910), 전우(田愚, 1841~1922), 임병찬(林炳贊, 1851~1916), 김직술(金直述, 1850~1920) 등 우국지사들이 많다. 채용신은 이들의 초상화를 여러 번 되풀이해서 그렸는데 위정척사파의 거두이자 항일의병장인 <최익현상>도 그런 예에 속한다. 채용신이 1905년에 그린 74세의 <최익현상>은 최익현의 초상화 중 가장 이른 시기의 작품으로 그가 생존했을 때 만든 작품이다. 최익현은 초상화가 제작된 다음 해에 의병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유배지인 쓰시마 섬에서 단식 끝에 순절했다. 최익현은 유학자들의 복장인 심의(深衣)를 입고 털모자를 쓰고 있다. 굳게 다문 입술에서는 깊게 주름잡인 노년에도 결코 꺾이지 않는 의기가 서려 있다. 결코 과장되거나 꾸미지 않는 표현법은 대상의 본질을 드러내고자 한 작가의 의도가 잘 살아 있어 마치 빛바랜 사진을 보는듯 가슴을 뭉클하게 해준다.


채용신은 모관본 <최익현상>을 바탕으로 하여 20여 년동안 여러 차례 그의 초상화를 제작했다. 채용신이 그린 <최익현상>은 1909년부터 1925년까지 유복본(儒服本)과 관복본(官服本) 등을 포함해서 10점 정도가 현존 하는데 관복본에는 좌상과 함께 입상도 포함되어 있어흥미롭다. 조선왕조가 패망하고 최익현이 세상을 떠난시점에서 굳이 <최익현상>처럼 관복본 초상화가 제작된 이유는 전직 관료로서의 자부심과 우국충정을 드러내기 위한 방편이었음을 알 수 있다. 동일한 인물초상화를 여러 차례 제작한 원인도 조선말에 의병활동을 한 항일지사에 대해 숭모하는 마음이 매우 컸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그와 더불어 1871년 서원철폐령 이후 금지되었던 사우의 건립으로 인해 초상화의 수요가 많았던 상황도 작용했을 것이다. 최익현을 향사했던 사우(祠宇)만 16곳이나 되어 최익현의 문인들이 사우에 봉안할 목적으로 초상화제작에 나섰기 때문이다.


그의 초상화는 조산시대 초상화법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사진과 서양화법을 참조해 독특한 작품세계를 강조했다. 03. <등록문화재 제486호 <최연홍상(崔蓮紅像)>. 아기를 안고 서 있는 연홍의 모습을 아무런 배경 없이 그렸다. 가운데 가르마를 해서 양옆으로 빗어 내린 머리모양은  단정하고 얼굴빛은 기품이 배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04. 부산 동아대박물관 소장의 <미인도>. <최연홍상(崔蓮紅像)>은 머리모양, 의복 형태 등에서 채용신의 작품으로 전칭되는 이 그림과의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다. ⓒ부산 동아대박물관

이상적인 현모양처로 거듭난 성모자상

채용신은 사대부상과 유학자상 못지않게 여인상과 미인상도 여러 점 남겼다. 그 중 1914년에 그린 <최연홍상(崔蓮紅像)>은 ‘운낭자상(雲娘子像)’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운낭자는 평양 기생이었던 최연홍(1785~1846)의 초명이다. <최연홍상>은 아기를 안고 서 있는 연홍의 모습을 아무런 배경 없이 그렸다. 가운데 가르마를 해서 양옆으로 빗어 내린 머리모양은 단정하고 얼굴빛은 기품이 배어 있다. 연한 황토빛 저고리와 옥색치마는 풍성하고 넉넉해 여인의 자태를 드러내기보다는 아이를 기르는 어머니의 역할이 다 강조되었다. 치마 밑으로 살짝 드러낸 흰 버선발이 그녀의 의기(義氣)를 드러내는 듯하다. 그녀는 쌍가락지를 낀 손으로 포동포동하게 살찐 아이를 안고 있는데 짧은 저고리 밑으로는 젖가슴이 살짝 보인다. 아들을 낳은 조선시대 여인들이 자랑스럽게 젖가슴을 드러내고 다녔던 당시 풍조를 엿볼 수 있다.


최연홍에 관한 내용은 『조선왕조실록』 순조12년, 박사호(朴思浩)의 『심전고(心田稿)』, 유재건(劉在建)의 『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등 여러 자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에 따르면 최연홍은 평안남도 가산의 청기(廳妓)였는데 1811년 홍경래의 난으로 군수와 군수의 아버지가 사망하였다. 그녀가 군수의 첩실이었으니 남편과 시아버지를 한꺼번에 잃은 셈이다. 그러나 그녀는 어지러운 때를 당하여 나졸과 아속들이 전부 도망쳤음에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남편과 시아버지의 시신을 거두어 장사지냈다. 또한 부상당한 시동생을 구해 내 극진히 치료하여 살려냈다. 홍경래의 난이 평정되자 나라에서는 그녀를 기안(妓案)에서 빼주었고 토지를 주고 신역을 면제토록 했다. 왕은 연홍에 대해 ‘미천한 부류이지만 뛰어난 행실을 숭상할 만하다’고 평가한 뒤 후하게 상을 주어 위로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채용신은 기생의 모습을 그리면서도 교태스러움 대신 품위있는 현모양처의 분위기가 느껴지도록 그렸다. 비록 기생이지만 의절(儀節)을 지닌 조선여인의 기백을 드러내고자 함이었다.


그런데 최연홍이 아이를 안고 있는 포즈는 서양의 성모자상(聖母子像)을 떠올리게 한다. 이에 대해 조선미교수는 ‘운낭자가 군수의 첩실이자 아기 엄마였다는 사실을 강조’하여 열녀로서의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한 것 일 뿐 화가 채용신이나 운낭자의 신분과 성향으로 미루어볼 때 그런 연관성은 고려되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태호 교수는 <최연홍상>과 유사한 양식의 <모자상(母子像)> 발굴해냈다. <모자상>은 오스트리아 빈민족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조선말기의 도화서화원 조중묵(趙重黙,1820~1888이후)의 작품으로 1890년에 수집되었다. 따라서 채용신이 <최연홍상>을 그리면서 조중묵의 <모자상>을 모본으로 했거나 혹은 두 사람이 각각 동일한 성모자상을 참고했을 수 있다. 어느 경우든 그 당시 이미 ‘조용한 은자의 나라 조선’에 서양미술의 대표적인 이미지인 성모자상이 여러 작가들에게 알려져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조중묵은 <모자상>에 제시를 쓰면서 아기엄마의 미모를 양귀비에 비유하고 있어 그가 모본으로 삼은 성모자의 종교적인 의미에 크게 얽매이지 않은 듯하다.


마찬가지로 채용신도 <최연홍상>을 그리면서 종교적인 대상으로서의 성모자를 표현했다기보다는 ‘아내이자 아기 엄마’의 도상이 필요해 성모자상의 이미지를 차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도상적으로는 성모자상과 친연성이 있지만 그 안에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전혀 다르다. 이것은 채용신이 사진을 이용해 초상화를 그리면서 빛의 각도에 의한 명암법을 표현하는 대신 요철법에 따른 음영법으로 입체감을 표현한 경우와 같은 접근법이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기법이나 이질적인 도상을 받아들일 때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대신 자신의 사정에 맞게 선택적이고 주체적으로 적용하려는 의지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채용신은 조선시대 화가 중 가장 많은 초상화를 그린작가다. 그의 초상화는 조선시대 초상화법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사진과 서양화법을 참조해 독특한 작품세계를 창조했다. 그의 작품은 극세필의 사실적인 묘사가 특징인데 1910년대에는 전통화법을 바탕으로 육리문의 표현이 두드러진 수작들이 제작되었다. 절제된 필선에 외형적인 묘사뿐만 아니라 정신까지 담아낸 그의 초상화는 그러나 1920년대 후기로 갈수록 선이 짧아지고 면적인 부분이 강조되다가 1930년대 이후가 되면 긴장감이 떨어지면서 빛을 잃게 된다.



글. 조정육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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