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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뛰어난 조형미의 정수,백제 누금기법
작성일
2019-07-02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1105

뛰어난 조형미의 정수, 백제 누금기법 보물 제1991호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와 보물 제1767호 부여 왕흥사지 사리기 鏤金技法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에게 우리나라의 박물관을 관람하고 난 뒤 가장 인상 깊은 것이 뭐냐고 물으면 대부분 정교한 금세공품을 꼽는다. 이집트 등을 제외하고 신라나 백제, 고구려시대의 금세공품에 버금가는 유물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우리의 삼국시대보다 다소 후대로 볼 수 있는 엘도라도(황금의 땅 또는 황금 인간)라는 전설을 만들어낼 정도로 황금이 많았다는 잉카제국이나 마야문명의 금세공품을 보아도 마찬가지다. 한국인들이 가장 아쉽게 생각하는 것은 백제는 신라, 가야보다 절대적으로 유물이 적다는 점이다. 무령왕릉 등의 발굴로 백제가 찬란한 문화 예술의 진원지였음을 증명했지만 백제문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공예품들이 많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전북 익산 미륵사지 서탑(西塔)에서 2009년에 출토된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와 2007년 10월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 의해 부여 왕흥사지 목탑터에서 발굴된 사리기 일괄 등은 이런 아쉬움을 불식시켜주었다. 01. 보물 제1767호 부여 왕흥사지 사리기 일괄. 가장 바깥에 청동제의 원통형 사리합을 두고 그 안에 은으로 만든 사리호와 금제 사리병을 중첩하여 안치한 3중의 봉안 방식인데 금, 은, 동을 순서대로 사용하여 백제 사리 장엄의 면모를 보여준다. ⓒ문화재청



백제 금속공예의 우수성이 깃든 문화재

익산의 사리장엄구는 금제사리봉영기(金製舍利奉迎記)와 함께 금동사리외호(金銅舍利外壺), 금제사리내호(金製舍利內壺), 각종 구슬과 공양품을 담은 청동합(靑銅合) 6점으로 이뤄졌다. 청동합은 구리와 주석을 합금한 것이며 금동사리외호와 금제사리내호는 모두 허리부분을 돌려서 여는 구조로, 동아시아 사리기 중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구조로 알려진다.


왕흥사지의 사리기 일괄은 청동제 사리합(舍利合), 은제 사리호(舍利壺), 금제 사리병(舍利甁) 등 3점이다. 가장 바깥에 청동제의 원통형 사리합을 두고 그 안에 은으로 만든 사리호, 그리고 보다 작은 금제 사리병을 중첩하여 안치한 3중의 봉안 방식인데 특이한 것은 가장 귀한 재질인 금(금 순도 99%), 은, 동을 순서대로 사용하여 백제 사리 장엄의 면모를 보여준다. 특히 왕흥사지 사리기에는 백제왕 창, 즉 위덕왕이 ‘정유년(丁酉年,577년) 2월 15일에 죽은 왕자를 위해 목탑 찰주를 세웠다’는 사찰 창건과 관련되는 내용이 명문(銘文)으로 기록돼 있어 연대가 가장 빠르다.



정밀하고도 특수한 세공술

이들 사리기가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는 것은 제작 기술면에 있어서도 최고급 금속 재료를 사용해 조형미와 조각미가 뛰어나 백제 금속공예의 우수성을 보여준다는점이다. 쌀알보다 작은 유리구슬과 손톱만 한 금공품은 백제인의 정밀한 세공술(細工術)을 엿보게 한다. 금제 귀고리의 방울장식은 가는 선과 금 알갱이를 정교하게 눌러 붙이는 이른바 누금(鏤金)기법이 보이며 탄목(炭木), 즉 나무숯을 타원형으로 깎고 그 테두리에 금판을 감아 장식한 탄목금구(炭木金具) 또한 사람들의 찬탄을 자아낸다. 또한 선형, 나선형, 혹은 사슬 형태를 한 금실은 현미경 조사 결과 시계 반대 방향으로 꼬아서 제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누금기법은 이집트에서 발생한 후 페르시아나 인도, 중국을 거쳐 신라·가야·백제에 직접 전해졌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일부 학자들은 중국을 통한 육로가 아니라 해상으로 한반도에 직접 전해졌을 것으로 추정한다. 한국인들은 외부에서 전래된 누금기법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 아니라, 창조적으로 받아들여 활용했다. 특히 가는 선이나 금알갱이를 만드는 것은 매우 특수한 기술로서 단지 아이디어 차원에서 쉽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땜질의 경우 납과 같은 별도의 땜 물질을 사용하여 접합하는 방식인데, 접합 부위에 땜 물질이 잔류하게 되는 흠이 있다.


반면 화학적 융점을 이용한 접합 방식은 부착 대상인 물질에 구리도금을 한 다음, 순간적으로 고열을 가하여 부착하는 방식이다. 주로 부착 대상이 되는 금·은과 같은 귀금속은 구리보다 융점이 높으며, 접합 시 매개체가 되는 표면에 도금된 구리의 경우는 순간적인 고열을 가할 때 산화되어 접합 흔적이 남지 않는다. 가는 줄을 만드는 방법은 주조된 금이나 은 막대를 두 점의 석판이나 브론즈판 사이에 끼워 압력을 가해 굴리면서 조금씩 가늘게 늘인다. 일정한 굵기가 되면 끝을 가늘게 만들어 마노나 브론즈 덩어리의 구멍에 집어넣어 천천히 당긴다. 이렇게 여러 번 되풀이하여 가는 금줄이나 은줄을 만든다.


02. 보물 제1991호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 청동합은 구리와 주석을 합금한 것이며 금동사리외호와 금제사리내호는 모두 허리부분을 돌려서 여는 구조로,동아시아 사리기 중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구조로 알려진다. ⓒ문화재청

금구슬을 만드는 방법은 가는 금은줄을 지름과 비슷한 길이로 잘라, 탄가루에 늘어놓고 다시 그 위에 탄가루를 덮는다. 탄가루 위에 다시 잘라낸 금은조각을 늘어놓고 그 위에 또 탄가루를 뿌린다. 이런 공정을 몇 번 반복하고 이것을 가열하여 금은줄 조각이 융해될 때까지 열을 가한다. 융해된 금조각은 표면장력에 의해 작은 알갱이가 된다. 이것을 세정하여 다시 석판 등을 겹친 사이에 끼우고 연마 처리하면 금구슬이 완성된다. 마지막으로 땜질하는 방법이다. 이것은 녹청(동록)을 갈아서 풀과 물로 반죽 상태로 만들어 금알갱이나 가는 줄에 묻혀 기판 위에 접착한다.


섭씨 100℃에서 녹청은 산화동이 되고, 섭씨 600℃에서 풀은 숯이 된다. 다시 섭씨 850℃까지 높이면 숯은 산화동의 산소를 빼앗아 순동 피막을 기판 위에 남기고 탄산가스가 된다. 그대로 가열하여 섭씨 850℃에 달하면 피막이 된 동은 기판의 금, 금줄 등과 반응하여 합금되면서 땜질이 완성된다.


이 방식은 높은 수준의 세공 기술을 보유하여야만 가능하므로 한반도에 고난도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었 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로마 세계의 기술이 한반도에 들어온 후 한반도의 문화와 결합되어 빛을 발하는데, 특히 학자들이 주목하는 것은 이들 공양품이나 사리기가 명백히 백제 자체 기술로 제작되었다는 점이다.



글. 이종호 (과학저술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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