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트위터 페이스북
제목
그릇으로 시대를 읽다
작성일
2019-07-02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3325

그릇으로 시대를 읽다 토기와 도자기(동산문화재) 박물관에 가보면 전시된 문화유산 중 대다수가 토기와 도자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토기는 선사시대부터 오랜 시간에 걸쳐 꾸준히 시대별 문화의 특징을 보여주며, 도자기는 사람들이 생활에 직접 썼다는 점에서 중요한 유물이다. 도자기를 잘 들여다보면 그 그릇을 썼던 사람들의 시대가 보인다. 01. 빗살무늬토기는 신석기시대의 대표적 유물이다. 토기를 쓰면서부터 음식을 끓여 먹을 수 있게 됐다. 또한 토기는 잘 깨지지 않고 썩지 않는 중요한 도기였다. ⓒ국립중앙박물관

신석기시대의 상징, 빗살무늬토기

빗살무늬토기는 신석기시대의 대표적 유물이다. 토기를 쓰면서부터 음식을 끓여 먹을 수 있게 됐다. 또한 토기는 잘 깨지지 않고 썩지 않는 중요한 도기였다. 빗살무늬토기는 밑이 길쭉하고 둥근 것이 마치 팽이처럼 생겼다. 이 토기처럼 밑이 둥글고 길쭉한 토기는 중서부 지방에서 출토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서울 암사동 빗살무늬토기는 한강이나 대동강 주변에서 많이발견된다.


빗살무늬토기는 밑이 둥글어서 똑바로 세울 수가 없는데 어떻게 썼을까 궁금할 수 있다. 이 토기는 땅에 파묻고 쓰던 그릇이라 이렇게 만들었다는 설과 운반하기 쉽도록 만든 모양이라는 설이 있다. 빗살무늬토기는 겉면을 삼등분해서 아가리, 몸통, 바닥에 각각 다른 무늬를 장식했다. 무늬를 넣음으로써 그릇이 더 단단해지는 효과도 있었다.

02. 비목어가 그려진 분청사기조화어문편병. 물고기와 모란을 표현한 간략한 선이 무척 자유롭고, 거꾸로 선 물고기 모습은 해학적이다. ⓒ국립중앙박물관 03. 국보 제261호 백자 유개항아리. 분청사기를 거쳐 드디어 백자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을 터득한 조선의 도공들은 눈처럼 하얀자기에 중국 것과 다른 아름다움을 불어넣었다. ⓒ문화재청

독특하고도 뛰어난 도자기

도자기는 우리나라 공예의 꽃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를 처음 만든 것은 중국이지만 우리나라는 그 기술을 이어받아 세계 도자기사에 한 획을 긋는 발자취를 남겼다.


고려 사람들은 청자에 상감무늬를 새긴 상감청자를 개발하여 중국 청자와는 또 다른 도자기의 세계를 열었다.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은 12세기에 만들어진 대표적인 고려청자로, 그릇 선이 매우 날씬한 곡선을 그리면서도 밑부분이 넓어지면서 안정감을 준다. 도 자기 표면의 학과 구름무늬는 율동감이 넘친다. 그 이유는 원 안의 학은 위로, 원 밖의 학은 아래로 엇갈리게 그려 시선을 아래위로 두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상감기법은 무늬를 넣는 방법으로, 초벌구이한 그릇 표면을 원하는 무늬를 새긴다. 그리고 백토나 자토로 그 홈을 메운다. 다 메운 다음 그릇 표면을 매끄럽게 다듬고 유약을 발라 구우면 백토는 흰색으로, 자토는 검은색으로 나타난다. 상감기법은 중국에서 시작되었지만 고려 사람들은 그 상감기법을 도자기에 응용하여 상감청자라는 우리만의 독특한 문화재를 만들었다.


조선시대에는 분청사기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다. 분청사기는 청자에 쓰던 회색이나 회흑색 흙 위에 흰 흙을 덧칠하고 그 위에 유약을 입힌 자기를 가리킨다. 청자에서 백자로 넘어가는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백자를 만들고 싶지만 백자용 흙을 만드는 기술이 부족했기 때문에 이런 기법을 개발했다고 한다. 분청사기를 거쳐 드디어 백자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을 터득하게 된 조선의 도공들은 눈처럼 하얀 자기에 중국 것과 다른 아름다움을 불어넣었다. 조선백자는 대개 아무 무늬가 없는 순백자가 많지만, 백자 표면에 철분 안료를 써서 무늬를 그리면 갈색을 띠는 철화백자도 만들었다. 무늬는 보통 포도와 함께 풀, 꽃 등을 그렸다. 조선 중기부터는 철화기법만 쓰지 않고 붉은색이나 푸른색 안료도 함께 썼다.


시대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도자기의 색이 달랐다.

도자기의 색과 무늬

도자기의 색은 그릇을 구울 때 산소가 있느냐 없느냐, 그리고 흙과 유약에 철분이 얼마나 포함되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도자기를 구울 때 산소가 많이 공급되면 흙이나 유약 내 철분이 모두 산화되고 녹슬어 산화제이철이 된다. 그러면 그릇은 갈색을 띠게 된다. 빗살무늬토기는 땅에 구덩이를 파고 별 특별한 장치 없이 장작불로 구운 그릇이기에 갈색이나 흑갈색을 띠는 것 이다. 원삼국시대에 가면 산소가 들어갈 수 없도록 막아버린 밀폐된 가마를 이용해 높은 온도로 구울 수 있는 기술로 발전한다. 밀폐된 가마는 도자기를 구울 때 산소를 차단하는데 이런 방식을 환원 변조라고 한다. 청자와 백자를 이런 방식으로 만든다.


시대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도자기의 색이 달랐다. 고려청자의 빛깔은 꿈결 같은 아득함, 끝없이 펼쳐진 세계를 생각나게 한다. 고려청자가 보여주는 세계는 고려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불교 세계 그 자체였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흰 백자를 좋아했다. 흰색은 순결함과 검소함을 상징한다. 이것은 그들이 추구하는 성리학의 세계관과 일치한다. 성리학은 무엇보다도 검소하고 질박한 것을 생활의 가르침으로 추구하는 학문이다. 따라서 사대부들은 검소, 질박, 결백을 중요한 가치로 여겼다.

04. 국보 제166호 백자철화매죽문 항아리에서 보이는 대나무와 매화는 난초, 국화와 함께 사군자로 불린다. 사군자는 선비정신을 상징하는 소재라 조선 초기 사대부들이 즐겨 그렸다. ⓒ문화재청 05. 청자상감운학문매병에 보이는 학과 구름 그림을 일컬어 운학무늬라고 한다. 청자의 푸른 하늘을 날아다니는 학과 구름은 고려시대 사람들이 바라는 불교적 이상세계를 나타낸다. ⓒ국립중앙박물관



빗살무늬토기의 빗살무늬는 강렬한 햇살이나 물고기의 뼈 모양을 나타낸 것이기도 하고, 그 밖에 여러 현상을 추상화하여 표현한 것이다.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토기에 그런 무늬를 새기면서 곡식이 잘 자라고 물고기가 많이 잡히기를 빌었다. 청자상감운 학문매병에 보이는 학과 구름 그림을 일컬어 운학무늬라고 한다. 학 자체가 신성한 동물이라는 점에서 많이 그렸을 뿐 아니라 푸른 그릇 표면을 하늘로 생각했다. 청자의 푸른 하늘을 날아다니는 학과 구름은 고려시대 사람들이 바라는 불교적 이상세계를 나타낸 것이다. 연꽃잎 무늬도 불교사상을 나타내는 문양이다. 분청사기조화어문편병의 물고기 문양은 아주 특이하다. 물고기와 모란을 표현한 간략한 선은 무척 자유롭고, 거꾸로 선 물고기 모습은 해학적이다. 물고기와 모란 문양은 분청사기에 많이 나타난다.


물고기는 보통 ‘다산’을 상징하고 모란은 부귀와 번창을 나타낸다. 고려시대 사람들이 미래 세계를 중시했다면, 조선시대 사람들은 현실 세계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백자철화매죽문대호에서 보이는 대나무와 매화는 난초, 국화와 함께 사군자로 불린다. 사군자는 선비정신을 상징하는 소재라 조선 초기 사대부들이 즐겨 그렸다. 조선 후기로 넘어가면 일반 백성들도 문화적인 수준이 높아지면서 그릇의 문양으로 십장생이나 까치, 호랑이 같은 민화를 그려 넣었다.


동산문화재와 관련된 직업 문화재감정위원 Q&A

● 동산문화재와 관련된 직업이 궁금한 당신을 위한 미니 인터뷰


Q. 문화재감정위원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 직업인가요?

A. 문화재감정위원은 국제공항과 항만에서 한국의 문화재가 해외로 불법반출되지 않도록 문화재의 반출 가능 여부를 감정하여 우리 문화재를 보호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문화재감정 업무는 국제선을 이용하는 여행객의 휴대품과 수하물을 주요 대상으로 하지만, 불법적인 도굴 혹은 도난된 문화재가 국외로 반출되지 않도록 철저히 감시하는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Q. 문화재감정위원의 길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A. 미술관, 박물관에서 멋진 작품 보는 것을 좋아했어요. 대학교에서 고고학 발굴이라는 색다른 경험을 하면서 시공간을 견뎌내고 출토된 유물에 애정을 갖게 되었습니다. 오래된 미술품일수록 ‘누가, 언제, 어디서, 왜,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해답을 찾기 어렵고 그러한 궁금증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문화재감정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었습니다.


Q. 문화재보존처리원이 되기까지 어떤 노력을 하셨나요?

A. 저는 대학교에서 인문대-고고미술사학과에 진학하여 고고학, 미술사학, 박물관학을 공부하였고 대학원에서는 불교조각을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대학교박물관에서 문화재에 대한 실무 경험도 쌓고 교수님따라 문화재 현지조사도 많이 다녔습니다. 문화재감정관실에 입사하기 전 2년간 비상근 경력 후에 문화재감정위원이 되었습니다.


Q. 문화재감정위원이라는 직업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A.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오늘도 ‘문화재를 지키는 최전방의 파수꾼’이라는 문화재감정위원으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가집니다. 무엇보다 다양하고 수많은 문화재를 대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재미있고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Q.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A. 모든 미술품은 국외로 반출 가능 여부를 신고하고 확인받아야 합니다. 많은 분들이 이런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현장에서 업무를 진행하면서 이런 사항을 안내하고 홍보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대구공항에서 근무할 때였어요. 출국장에서 만났던 할머니께서 문화재 확인 감정을 마치자 제 손까지 잡으시며 정말 훌륭한 일을 한다면서 우리 역사가 다른 나라와 다르다는 말씀을 해주셨을 때, 가슴이 먹먹했던 기억이 납니다.


Q.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 그리고 바람이 있다면요?

A. 우리나라는 특별한 역사적인 상황으로 문화재가 해외로 상당히 많이 유출되었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문화재감정관실은 지난해 5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많은 분들이 공항, 항만에서 문화재감정이라는 업무를 의아하게 생각하고 잘 모릅니다. 우리 문화재의 보존을 위해 오늘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문화재감정위원은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선배님들이 하신 것처럼 문화재감정위원으로서 자긍심을 갖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Q. 문화재감정위원이 되고 싶은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한 말씀 남겨주세요.

A. 해외로 반출된 문화재를 되찾아오려면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필요합니다. 작은 문화재 하나가 우리 역사의 조각난 퍼즐과도 같습니다. 문화재 감정위원은 본인의 전공별 전문적인 지식을 탄탄히 갖추어야 함은 물론이고 무엇보다 문화재에 대한 사랑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글. 성혜경

 

 

만족도조사
유용한 정보가 되셨나요?
만족도조사선택 확인
메뉴담당자 : 대변인실
페이지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