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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기고

제목
알수록 재밌는 문화재 '명승' 이야기
작성자
이원호
게재일
2018-06-28
주관부서
국립문화재연구소 자연문화재연구실
조회수
3358

  국가지정문화재의 유형 중에는 기념물에 속하는 ‘명승’(名勝)이라는 문화재가 있다. 일반명사로는 “이름난 경치”의 뜻을 지녔고, 문화재보호법에는 ‘경치 좋은 곳으로서 예술적 가치가 크고 경관이 뛰어난 곳’으로 정의하고 있다. 원래 명승은 고려 시대부터 문헌에 등장하는 단어인데 이중환의 『택리지(擇里志)』와 각종 지리지에 전국의 명승이 꾸준히 소개되어 왔다. 또 우리와 중국, 일본, 대만, 북한이 현재 문화재로 보호하고 있기도 하다.

 동북아의 명승은 조금씩 다른 나라마다의 특징을 갖고 있다. 중국의 ‘풍경명승(風景名勝)’은 국립공원과 명승이 합쳐진 복합적 개념이고 북한은 역사적 가치에 주체사상이 포함되어 ‘사회주의선경’이라 불리고 최고지도자와 관련된 유적에 가깝다. 우리와 일본이 의미상 가장 가까운 편에 속한다. 현재 우리나라 명승은 최근에 지정된 군산 선유도 망주봉 일원(명승 제113호)이 추가되어 111건이나 된다.
 
 그러면 옛 명승은 어떠했을까? 조선 후기 채제공(蔡濟恭,1720~1799)의 『번암집』에 보면 명승에 대한 정의가 그럴듯하다. “여러 유명한 노선생들은 거의 모두 몸소 경치 좋은 곳을 점령하여 살면서 글 읽고 학문하는 곳으로 삼고 사후에는 제사하는 곳이 된다. 그러한 땅이 지금에 이르러서는 바둑을 벌여 놓은 것처럼 많다. 그러나 그 사람이 거기에 가지 않으면 명승이 또한 스스로 나타나지는 못한다. 이것은 서로 기다려서 이루어지는 이치이다.”

 여기서 현재는 알려지지 않은 명승지가 예전에는 지금보다 훨씬 많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며 우리는 명승이 되기 위한 조건으로 ‘사람과 자연과의 관계’를 언급한 체제공의 명문장을 통해 우리 명승의 의미를 잘 이해할 수 있다. 명승유람은 유교사상에 입각한 심신수양의 수단으로 양반사회에 깊게 자리매김했고 조선말에는 오늘날 블루마블 게임과 비슷한 ‘청구남승도’ 말놀이로 120여 곳의 전국 명승지를 유람하는 놀이도 유행했었다.

  명승 문화재가 될 수 있는 대상은 무엇일까? 자연경관이 뛰어난 산악이나 해안 등, 동물과 식물의 서식지, 전망지점, 역사문화적 가치가 뛰어난 곳, 저명한 정원도 명승에 걸맞다. 또 세계유산 협약에 따른 자연유산도 명승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 충남에는 명승이 몇 개나 지정되어 있을까? 공주십경의 하나인 공주의 고마나루(명승 제21호), 왕이 앉았던 바위에서 비롯된 부여 구드래 일원(명승 제63호), 해안가의 일몰장관인 안면도 꽃지 할미 할아비 바위(명승 제69호)가 국가지정문화재로 되어있다.

  아직은 명승으로 지정되지 않았지만 송자로 불리던 우암 송시열의 남간정사는 정자 아래로 물이 통과하는 독특하고 아름다운 정원으로 이름나 있고 옛 수도자들의 성지로 손꼽히는 계룡산, 또 공주 마곡사는 천년고찰이며 예산 가야산의 옥양봉과 석문동 계곡에 자리한 가야구곡, 서천 비인만과 월명산의 비인팔경, 임금이 온천욕을 즐기던 온양팔경 등 모두가 우리 선조들이 즐겨 찾았던 우리고장의 대표적 명승들이다.

 명승은 번암의 글귀처럼 사람들이 그곳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충남에는 다른 지방에 비해 명승으로 지정된 곳이 많지 않은 편이다. 우리 고장에 대한 역사를 바로 알고 관심을 갖고 자주 찾다보면 이름을 얻어 그야말로 ‘명승’이 되는 것이다. 명승은 경치가 아름다운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도민들의 지속적 관심과 향토사랑이 명승을 만드는 데 일조할 수 있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원호 국립문화재연구소 자연문화재연구실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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