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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영화 <동주>와 북방식 전통 한옥
작성일
2019-04-02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2112

영화 <동주>와 북방식 전통 한옥 고성왕곡마을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윤동주의 <서시> 도입부다. 한국인의 말과 이름도 허락되지 않던 일제강점기, 시인 윤동주는 암울한 시대에 시인을 꿈꾸는 것을 부끄러워했다. 젊은 나이에 스러져간 청년의 맑은 양심은 시로 남아 해방 이후 질곡의 시대를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이 되었다. 한국인의 정서에 깊게 자리한 시인 윤동주. 영화 <동주>는 그의 짧은 생을 흑백영상으로 회상한다. 영화는 북간도 용정을 배경으로 고등학생 윤동주의 모습을 보여준다.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용정에 살았다. 이 장면을 촬영한 곳은 강원도 고성의 왕곡마을이다. 북방식 전통 한옥이 보존된 지역으로 국가민속문화재 제235호로 지정된 곳이다. 영화 <동주>의 촬영지로 알려지며 왕곡마을을 찾는 발길이 늘어나고 있다. 윤동주가 맑은 시상을 품게 만든 곳은 실제 어떤 모습일까? 북방식 한옥에 서린 소년 윤동주의 꿈을 찾아갔다. 01. 조선 후기 북부 지역 산골 마을의 형태를 간직하고 있는 고성 왕곡마을 전경 ⓒ문화재청 02. 영화에서 윤동주의 집으로 나온 큰상나말집 ⓒ한국관광공사 03. 이름도, 언어도 꿈도 허락되지 않았던 일제강점기. 한 집에서 태어나고 자란 동갑내기 사촌지간 윤동주와 송몽규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동주> 포스터

600년 세월의 집성촌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오봉리 왕곡마을. 속초에서 고성가는 길, 정확히는 송지호를 지나 공현진항에 도달하기 전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지명에서처럼 오봉리는 다섯 개의 봉우리에 둘러싸인 마을이다. 지금이야 도로가 연결되어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하면 어렵지 않게 도착하지만, 과거에는 접근하기 쉽지 않은 마을이었다. 한국전쟁 당시는 봉우리 덕에 전투기가 접근을 못해 폭격을 피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가깝게는 고성산불 당시 산불이 마을 인근까지 내려왔지만 가옥에는 불이 번지지 않았다. 봉우리에 둘러싸인 지형 덕분에 전쟁과 자연재해에도 왕곡마을은 북방식 한옥이 보존될 수 있었다. 산골짜기에 왕곡마을이 자리하게 된 사연은 고려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가 패망할 당시 충절을 지킨 고려 유신 ‘두문동72현(杜門洞七十二賢)’ 중 한 명인 양근 함씨 함부열은 조선의 건국을 반대했다. 하지만 조선은 건국되었고, 함부열(咸傅說)은 고성 간성 지역으로 낙향해야 했다. 그리고 그의 손자인 함영근이 이 마을에 정착하면서 왕곡마을의 역사가 시작됐다. 이후 강릉 최씨가 마을에 들어온다. 14세기부터는 강릉 함씨, 강릉 최씨를 비롯해 용궁 김씨 등이 모이며 집성촌을 이루었다. 후손들은 600년 세월 동안 마을을 지켜왔다. 지금도 마을에는 후손들이 남아 그 명맥을 잇고 있다.

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북방식 전통 한옥

왕곡마을이 영화 <동주>의 촬영지가 된 이유는 북방식 전통 한옥이 유일하게 남아있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왕곡마을의 북방식 전통 한옥은 총 21동이며, 북방식 초가집도 여러 채가 남아있다. 대부분 조선 후기(18∼19세기)에 세워진 건물이다. 또 주택들이 산아래 골짜기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 정답게 느껴진다. 조선 후기 북부 지역 산골 마을의 형태를 고스란히 유지해 윤동주의 고향 마을인 북간도 용정을 표현하기에 최적의 모습이었다.

북방식 전통 한옥은 남방식 한옥과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남방식 한옥은 마당을 통해 대청마루와 방이 연결된다. 마당에서 곧바로 각 방에 출입할 수 있는 구조다. 하지만 북방식 한옥은 부엌을 거쳐 방으로 들어가는 구조다. 겨울이 길고 일조량이 적은 북부 지역의 환경적인 특질이 반영됐다. 안방과 사랑방, 마루와 부엌을 한 건물 내에 만들었다. 그리고 부엌 앞 처마에 외양간을 덧붙인 구조인데, 대부분의 북방식 가옥들은 ‘ㄱ’자형 구조가 많다. 이는 겨울이 긴 지역에서 외부 출입을 하지 않고도 생활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방문 앞에 대청마루가 없다.

또 다른 특이점은 굴뚝이다. 굴뚝 위에 항아리를 올려놓아 색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굴뚝에 항아리를 올려놓은 것은 굴뚝을 통해 나온 불길이 초가에 옮겨붙는 것을 방지하는 전통 방식의 화재 예방법이다. 또 긴 겨울 동안 열 손실을 줄이려는 효과적인 해결책이기도 했다. 굴뚝의 열기를 집 내부로 다시 들여보내 온기를 유지했다.

과거 왕곡마을에는 우물이 없었다고 한다. 기후나 지형이 아닌 미신에 근거한 이유에서다. 마을의 모습이 배의 형상이라 배에 구멍을 뚫으면 배가 가라앉듯 마을에 우물을 파면 마을이 망한다는 전설 때문이다. 왕곡마을 사람들은 우물에서 물을 길어 먹지 못하고, 샘물을 길어다 먹었다고 한다. 우물이 생긴 것은 근대에 이르러서다.

6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유지되어온 왕곡마을에는 여전히 장작불로 난방을 하고 음식을 조리하는 집들이 있다. 마을 주민들 대부분이 수백 년 대를 이어 살아왔기에 전통가옥의 모습을 보존하는 것을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 과거의 원형을 유지해 2000년 1월 7일에는 국가민속문화재 제235호로 지정됐다.

조선 후기 북부 지역 산골 마을의 형태를 고스란히 유지해 윤동주의 고향 마을인 북간도 용정을 표현하기에 최적의 모습이었다.

왕곡마을에서의 하룻밤

영화 <동주>의 배경 왕곡마을을 언급하면 북방식 전통한옥에만 치중하게 된다. 그도 그런 것이 한옥과 초가의 상태가 양호하고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동주>에서는 윤동주의 집 말고도 왕곡마을의 곳곳이 등장했다. 동주와 몽규가 용정을 떠나기 전 가족과 기념촬영을 하는데, 이때 배경이 된 곳은 왕곡정미소다. 영화 속 모습 그대로 유지되어 있다. 왕곡정미소는 어린 동주와 몽규에게는 아지트였다. 동주는 이곳에서 시집을 읽었고, 그들만의 잡지를 만들기도 했다. 왕곡정미소는 마을회관을 지나 남쪽 끝자락에 위치한다.

왕곡마을을 더 깊게 체험하고자 한다면 숙박을 추천한다. 고성군이 매입해 숙박시설로 운영하는 전통가옥이 7채다. 그중에는 초가집도 있다. 한 채당 객실은 2~5개로 가족이 머물기 좋다. 북방식 전통 한옥을 이용할 때 주의 사항이 있다. 취사를 해선 안 된다. 일반 숙박시설과는 달리 오랫동안 보존되어온 문화유산이므로 화재발생 등의 위험에 조심할 필요가 있다. 특히 초가는 화재 위험이 크므로 애정을 갖고 주의해야 한다. 왕곡마을 전통 한옥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마을을 살펴보는 것은 이채로운 경험이 될 거다. 의욕이 있다면 해변에 다녀올 수도 있겠다. 왕곡마을은 해안에서 1.5km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여름철에는 동해안 피서객들이 근거리에 있는 왕곡마을을 방문하기도 한다.

04. 집 뒤쪽에 긴 담장을 둘렀다. ⓒ한국관광공사 05. 영화 <동주>의 촬영 현장 모습 06, 07. 영화에서 동주와 몽규는 용정을 떠나기 전 가족과 기념촬영을 하는데, 이때 배경이 된 곳은 왕곡정미소다. ⓒ한국관광공사

글. 조진혁(아레나 옴므 피처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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