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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기고

제목
남과 북을 잇는 근대문화유산
작성자
박윤희 연구사
게재일
2017-11-30
주관부서
국립문화재연구소 미술문화재연구실
조회수
8934

배운성(裴雲成)의 〈가족도〉라는 그림은 대가족이라는 한국인의 전통적인 삶의 소재와 이미지를 대형의 캔버스 위에 그린 대작이다. 서울의 갑부 백인기(白寅基) 가족을 그린 것으로, 가운데 앉아있는 노모와 주인 내외를 중심으로 17명이나 되는 인물들이 일제히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가족 초상화이다. 원근법을 살려 인물 하나하나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 동양화의 섬세한 선묘를 구사하여 동․서양의 화법을 절충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화가 배운성은 한국 최초의 유럽 미술유학생으로 알려져 있다. 1900년 서울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배운성은 십대시절 백씨 가문에 서생(書生)으로 들어갔는데, 이것이 그의 인생의 큰 전환기가 되었다. 백씨 아들의 말동무 겸 뒷바라지를 위해 일본에 함께 간 배운성은 1919년 와세다대 경제과를 거쳐, 1922년 독일 유학길에 오르는 행운을 얻었다. 유학생활 중 독일에 혼자 남게 된 그는 미술공부를 시작하게 되면서, 베를린국립미술학교에서 미술 수업을 받았으며, 각종 전람회에 입선하면서 화가로서의 명성을 쌓았다.

 

한국의 토속적인 감성과 향수를 담은 그의 작품들은 서양인들에게 이국적인 신비감을 주었다. 베를린과 파리에서 대규모의 개인전을 가지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던 배운성은 2차 세계대전 발발을 계기로 1940년 귀국하였다. 해방 후에는 홍익대 미술과 초대 학장을 잠시 지냈다가 한국전쟁 당시 월북했다. 북으로 간 배운성은 평양미술대 교수를 지냈으며, 1978년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다른 월북인사들과 마찬가지로 종전 후 남한미술계에서 배운성이라는 이름은 잊혀졌다. 그의 작품과 이름을 언급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1988년 월북화가 해금조치를 계기로 비로소 작품 일부가 국내에 소개되었고, 불문학자 전창곤씨가 프랑스 유학시절 입수한 배운성 작품 40여점이 2001년 국립현대미술관에 전시되면서 그의 이름과 작품이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 <가족도> 역시 이때 처음 공개되었다. 자신에게 화가로서의 길을 열어준 백인기 가족을 떠올리며 흰 두루마리 차림의 본인 모습을 가장자리에 그려 넣음으로써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일체감과 고국의 향수를 그림에 담았다.

 

배운성의 <가족도>는 2013년에 등록문화재 제534호로 등록되었다. 근대 문화유산 가운데 보존가치가 높다고 인정되는 것을 문화재로 등록하여 관리하는데, 근대기 회화 작품 15점 가운데 이 그림도 포함되었다. 배운성의 유럽 활동시절 대작 유화라는 점을 인정받았지만 또 다른 중요한 의미를 찾을 수 있는데, 바로 한동안 금기시되었던 월북 작가의 작품이라는 점이다. 분단국가의 이념과 체재의 장벽을 걷어내고 오롯이 작품성을 평가하여 지속해서 보존해야 할 문화유산으로서 가치를 인정을 받았다. 이는 남북 분단으로 인해 분절된 한국 근대 미술사를 복원하는 신호탄 역할을 한 것이다. 앞으로도 근대기 미술 분야 연구가 폭넓게 진행되어 새롭게 가치를 인정받는 작품들이 계속해서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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