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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기고

제목
문화재의 뒤안길(59)-고구려 고분벽화(서울경제, '20.10.5)
작성자
진호신
게재일
2020-10-05
주관부서
대변인실
조회수
4491

문화재의 뒤안길(59) (서울경제, '20.10.5)


바닷속 경주 안흥진 수군 군적부

글/ 진호신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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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군 신진도의 한 폐가에서 발견된 19세기 초 안흥진의 수군 군적부. /사진제공=문화재청

 

[서울경제] 지난 4월 22일, 완연한 봄날의 점심 무렵이었다. 국립태안해양유물전시관이 위치한 충남 태안 신진도 지역주민 정동환씨가 산책 중 발견한 서류뭉치를 잔뜩 들고 찾아왔다.

처음에는 평소 친분이 있던 정 선생께서 ‘커피 한 잔 마시러 오셨나보다’ 생각했는데 오래된 서류뭉치를 들여다보니 빨간 관인이 찍혀있고 수군 이름, 나이, 주소, 아버지 성함이 빽빽이 적힌 것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 즉시 청원 경찰과 신고인을 대동하고 서류가 발견된 신진도 폐가로 출동했다.

 

폐가 위치는 고대로부터 수군이 주둔한 안흥량의 요충 지역이었고, 국가의 동맥인 조운선 사고방지와 통행 관리의 가장 중요한 위치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흥분된 마음을 가다듬고 폐가에 들어서니 대청 바닥에는 오래된 벽에서 떨어진 수군 군적부, 한시, 입춘방, 관공서류가 이곳저곳 나뒹굴고 있었고, 대청 대들보 상량문에는 ‘道光 23년’(1843년) 이라는 문구가 선명하게 보였다.

집안의 구조로 보아 이 건물은 1843년에 신축되고 조선수군을 관리하였던 건물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바닷속 경주 태안 앞바다에서 5척의 보물선이 빛을 본 이래 인근 육상에서 발견된 매우 중요한 성과였다. 특히 수군이 주둔한 현장에서 군적부 문서가 직접 발견되기는 처음이었다.

 

연구결과 수군 군적부는 안흥진 수군 운영을 위하여 군포를 받을 목적으로 19세기 초 당진현에서 작성된 문서로서 당진현감이 확인했다.

당시 안흥진에는 300여 명의 수군과 거북선, 방선, 병선, 사후선 등 군선이 주둔하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직능별로는 사수, 포수, 노군, 조타수, 정수 등으로 임무가 세분화 돼 있었으며 생업으로 어업을 겸하고 있었던 경우가 많았다. 한 줌의 흙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소중한 문화재를 혜안으로 신고해주신 지역주민 정동환 선생님께 다시 한 번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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