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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상체 인형과 어릿광대가 노는 특이한 놀이 발탈
작성일
2009-06-04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4629




발탈이 인형극인가, 가면극인가?

발탈은 어찌보면 인형극 같기도 하고, 또한 가면극 같기도 하다. 우선 발탈이란 명칭만 보아서는 발에 탈을 씌워 논다는 점에서 가면극이지만, 탈을 조작하는 사람이 포장막 뒤에서 조종만 한다는 점에서 인형극으로 볼 수도 있다. 따라서 학자들은 인형극의 성격, 인형극이지만 가면극의 일부 성격 포함, 가면극의 성격, 인형극과 가면극의 혼합 또는 양자적 성격 등의 여러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현재는 발탈의 조종자가 외부에 노출되지 않고, 뒤에서 조종한다는 점에서 인형극으로 분류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나 일제시대에 발탈 연희자인 박춘재는 발에 탈을 끼고, 상체와 한삼을 부착한 상태에서 포장막 뒤에서 직접 춤을 추었다는 점에서 가면극적인 요소도 있다고 볼 수 있다.


발탈이 누구에 의해 어떻게 전승되었는가?

발탈이 언제 형성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대략 관련 증언을 보면, 남사당패를 중심으로 조선 후기에는 확실히 전해졌음을 알 수 있다. 유랑예인광대인 남사당패는 각지를 돌며 연희를 하다가, 여름철에 비가 많이 오거나, 겨울철에 추울 경우에는 실내에서 발탈을 공연했다. 살풀이 보유자였던 김숙자(1927-1991)는 어릴 적에 부친인 김덕순(화성 재인청 출신 악사, 소리와 춤 명인)이 발탈을 연희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또한 20세기 초에 출생한 남사당패 조갑철, 남형우(1907-1978) 등도 발탈을 직접 전수했다. 일제시대에는 박춘재(1881-1948)가 판소리·창극·민속무용 전용극장인 광무대(1907-1930)를 중심으로 발탈을 공연했다. 그는 궁내부 가무별감 출신으로, 경서도 잡가의 명창이기도 하다. 따라서 발탈은 중부지방의 남사당패와 서울의 전문 예인광대들이 전승했음을 알 수 있다.

발탈은 박춘재를 통해 1922년에 이동안(1906-1995)에게 전수되었고, 이것이 후대에 연극인 김응수, 현 보유자 박정임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박해일(1923-2007)은 일제시대 고준성으로부터 재담을 전수받아 발탈에 참여하여, 어릿광대역에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다.


발탈 연희의 전개방식

발탈의 전개방식을 보면, 재담·소리·춤이 서로 결합되면서, 여기에 악사의 반주, 어릿광대와 청관중의 추임새 등이 총체적으로 어울리며 전개된다. 길군악으로 시작하여, 수인사와 얼굴 재담으로 이어지며 여러 연희 요소들이 교차되다가, 뒷놀이인 파연곡으로 끝이 난다. 대략 공연 시간은 약 40∼50분 정도 소요된다. 등장인물을 보면, 발탈이 중심인물이고, 어릿광대가 보조적인 역할을 한다. 두 인물이 놀이판을 이끌어 가며, 그 외에 여자가 잠시 등장한다. 발탈의 외형은 상체만 있으며, 하체는 없다. 얼굴이 직경 40cm 정도로 크고, 험상궂게 생겼다. 팔에는 긴 한삼을 끼고 있으며, 발탈과 팔을 전후좌우로 움직여서 다양한 감정을 표현한다. 발탈 조종자는 포장막 뒤에서 비스듬하게 누워, 내민 발은 발탈을 조종하고, 손은 대나무와 끈을 통해 발탈의 상체를 조정한다. 발탈 인물은 극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는데, 극중 대사로 보아 생선장사로 먹고 사는 인물이다. 그런데 박해일을 대상으로 조사한 조동일 채록본은 각각 생선도가(주인 곧 어릿광대), 생선거간꾼(발탈)으로 설정되어 있다.

발탈의 상대역인 어릿광대는 남루한 저고리와 마고자 차림에 상투머리(또는 머리띠)를 하고, 손에는 부채를 들고 등장하여 발탈 오른쪽 앞에 위치한다. 그런데 이 인물의 역할은 다양한데, 우선 발탈의 보조역으로 재담을 주고받으면서, 적절히 추임새를 넣어준다. 그러면서 극의 상황을 설명하는 해설자, 극의 흐름과 분위기를 조절하는 연출자, 발탈과 청관중을 연결시키는 매개자, 재담으로 상대와 현실사회를 비판하는 비판자의 역할 등을 두루 소화한다. 그런 점에서 꼭두각시놀음의 산받이와 유사한 역할을 한다. 

발탈은 초기에 1인극에서 출발하여, 후에 어릿광대가 참여하는 2인극 형태로 바뀌었다. 곧 일제시대에는 1인의 발탈꾼에 악사가 받쳐주는 형태였으나, 1974년 이후 박해일이 어릿광대를 맡으면서 2인극 형태로 바뀌었다.


발탈의 연희요소의 특징

발탈의 내용은 각기 독립된 여러 에피소드로 구성되어있다. 시작부터 재담을 통해 인물간 갈등을 드러내며, 다양한 연희요소가 서로 어우러져 있다. 이본에 따라 약간 차이를 보이지만,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길놀이수인사얼굴 놀리기 재담만장단(허장단)팔도유람 재담단가(만고강산) → 판소리(춘향가 쑥대머리) → 자진머리춤각종 잡가와 민요(경기소리, 남도소리, 서도소리 등) → 먹고 살기(먹을거리) 재담① → 조기 헤아리기 재담여인 유혹하기먹고 살기 재담②(약타령음식타령집짓기타령세간타령) → 고사소리  파연곡(뒷놀이).

재담은 익살과 해학 위주로 되어 있는데, 크게 4가지로 나뉜다. 첫째, ‘재담 끊어먹기는 상대의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어가는 방식으로, 1인의 연희자가 진행하는 단조로움을 극복하는 기능을 한다. 둘째, ‘말꼬리 잡기는 상대의 말 꼬리를 잡아 시비를 거는 방식으로 갈등을 유발시킨다. 셋째, ‘말 따라 하기는 상대의 말을 그대로 따라 하는 일종의 말장난이다. 넷째, ‘길게 반복 나열하기는 각종 음식 나열, 조기 반복 셈하기, 각종 약재의 열거 등이 해당된다.

구체적 재담을 보면, 첫 부분에 어릿광대가 발탈의 못 생긴 얼굴에 대해 시비를 거는 장면이 나온다. 그는 반어법을 도입해아주 자알 생겼다라고 역으로 말하면서, 상대를 희롱한다. 이어낯짝은 네 어미 볼기짝같이 생겼고, 눈깔은 얼음에 자빠진 쇠눈깔, 코는 생김생김이 꼭 줄병같다. 그리고 이마빡은 꼭 굴러 댕기는 쪽박같은 데다가, 이 아가리는 메기 아가리같이 생겨 가지고 꼭 대부인 뭣 같다.”라며 해학적이고 재치있는 말로 상대에게 시비를 건다. 그러면서 어릿광대는 상대에게 ‘∼한번 해봐라’, ‘∼ 해 볼래?’, ‘∼해볼 거야?’, ‘∼해 볼까?’, ‘∼해 보자등의 명령형, 청유형의 서술어법을 통해 상대를 유도하며 재담을 이어간다.
 
춤은 발탈이 상체만을 드러내기 때문에 비교적 단순하다. 대체로어깨춤이 기본이며, 발탈을 이용해전후좌우치기의 변화를 주고, ‘목놀이라 하여 목을 움직여 춤에 생동감을 불어 넣어준다. 한편 장단이 바로 춤이 되는 경우도 있는데, 굿거리장단춤, 만장단(허튼타령), 자진머리춤, 덧뵈기춤 등이 이에 해당된다. 반주는 삼현육각으로 북, 장구(때로는 꽹과리), 피리2(또는 피리, ), 대금, 해금 등이 맡는다. 노래는 매우 가변성이 크다. 각 시기와 이본에 따라 다양한데, 주로 잡가·민요·단가·판소리·고사소리 등이 삽입된다. 잡가와 민요인 개성난봉가, 진도아리랑, 신고산타령, 밀양아리랑, 한오백년, 파연곡 등이 있고, 단가인 만고강산, 판소리인 쑥대머리 등이 삽입되어 있다. 그 외에 무가와 판소리에 상용적으로 나오는 약타령, 세간타령, 음식타령, 집짓기타령 등이 삽입된다. 그리고 액막이 타령이 들어가고, 고사소리로 마무리 짓는다. 발탈의 채록본은 크게 4가지가 있다. 심우성·정병호·김응수 채록본은 이동안을 대상으로 채록했기 때문에 거의 유사하며, 삽입된 노래에 다소 차이가 날 뿐이다. 다만 조동일 채록본은 박해일을 대상으로 채록했기 때문에 약간 다른데, 어릿광대가 주인으로 등장하며, 처음에 시조창이 삽입되고, 여자 역할이 다소 확대되어 있다.




발탈의 현대적 의미

근래 발탈은 기존의 뛰어난 연희자인 보유자 이동안·박해일이 세상을 떠나면서 전승력이 약화되었다. 주위의 관심이 적고 공연의 횟수가 줄어들면서, 현재 보유자 박정임을 중심으로 가까스로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

발탈 연희는 발탈이란 상체 탈인형과 어릿광대라는 재담꾼이 등장해서, 두 이질적 존재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독특한 방식이다. 그래서 가면극이나 인형극에 비해 등장인물의 수가 적고, 갈등 관계가 단조로우며, 춤사위가 단순하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정적이고, 춤과 몸짓의 역동성도 부족하다. 그러나 이것은 2인극 형태로서, 익살스럽고 재치있는 재담이 풍부하며, 각 지역의 다양한 민요를 중심으로 여러 노래가 삽입되어 있다. 그리고 현장의 가변성이 매우 강하여, 재담과 노래의 즉흥적 삽입이 가능하다. 또한 실내에서 공연되기 때문에, 연희자와 청관중과의 원활한 소통에 의해 상호 교감이 잘 이루어진다는 장점이 있다. 기층민들의 삶을 바탕으로 풍자와 해학이 풍부한 2인 재담 방식의 발탈은 후대에 2인 만담을 거쳐, 현대의 코미디·개그로 변화되어 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글·정형호 중앙대학교 민속학과 교수
사진·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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