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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기고

제목
부엌과 온돌의 변천
작성자
한지선 학예연구사
게재일
2018-01-19
주관부서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
조회수
8736

우리 조상들은 신석기시대 이래로 생활공간 밑으로 온돌이 설치되기 전까지 생활면과 부엌이 한 공간에 공존하고 있었다. 부엌과 난방시설이 어떻게 변천하는지 서울을 포함한 중부지역의 사례를 통해 살펴보자. 신석기시대 이래로 원삼국시대까지 부엌은 주거지 가운데에 화덕을 만들어 토기를 올려놓고 주변에 땔감을 배치하여 사용했다. 화덕 주변이 최초의 부엌이 된 셈이다. 이때 어떤 지역은 화덕이 난방기능을 같이하기도 하였지만 별도로 벽면에 붙여 긴 통로형태로 쪽구들을 만들어 추위를 대비하기도 하였다. 이것이 온돌의 조상격이 되는 셈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조리와 난방시설은 따로따로 존재했다.

이후 삼국시대가 되면 부뚜막이 발달하고 솥과 시루가 조리용기로 등장하게 된다. 긴 연도(고분의 입구에서 유골이 안치된 방까지 이르는 길)를 가진 부뚜막이 주거지 내부에서 화덕을 대체하여 조리공간으로서 설치된 것이다. 또한 난방의 기능도 겸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부엌과 난방이 결합되기 시작한다. 부뚜막은 다양한 구조(l자형, T자형 등)로 발달하게 되지만 공통점은 여전히 생활면과 분리되지 않고 한 공간에서 공존했다는 점이다.

삼국시대 말기 즈음 본격적으로 지상 건물지가 지어지면서 최초로 생활공간에서 부엌이 분리되기 시작한다. 백제의

웅진기부터 확인되는 지상건물지로서 벽주(壁柱)건물이 있다. 방형 공간의 외곽으로 촘촘하게 기둥을 세워 그 안쪽으로 지상식의 생활공간을 만드는 구조인데, 이 벽주건물 생활면의 지하에 판석으로 조립한 한줄의 온돌시설이 확인된다. 국내에서는 아직 발굴 조사된 사례는 없지만 한국에서 전파되어 축조된 일본의 사례(日本

觀覺寺遺蹟,

大津市 穴太遺蹟)에서 보이고 있어 아마도 이 즈음부터는 지하온돌이 축조되기 시작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온돌은 고려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생활면 지하 전면에 설치되기 시작한다. 온돌이 생활면의 지하에 설치되면서 부엌도 자연스럽게 생활면의 옆 공간에 온돌높이에 맞춰 조성된다. 이것이 우리가 볼 수 있는 전통가옥의 부엌 모습이다.

근대이후 우리는 아이러니 하게도 선사시대의 부엌모습이 재현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부엌과 난방시설이 완전히 분리되었다는 점이 첫 번째이고 두 번째는 생활면 속에 다시 부엌이 들어왔다는 점이다. 특히 원룸을 생각해 보면, 난방역할을 하는 온돌은 얇은 판넬형으로 보급되면서 더 이상 부엌과 연결되지 않고 분리 설치되고 있다. 또한 자는 공간과 취사 공간이 모두 한 생활공간에 공존하고 있으니 역사의 수레바퀴라고 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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